통장에 잔고가 950만 원쯤 남아 있을 때 나는 이혼 소송을 시작했다. 변호사 수임료는 550만 원이었다. 남은 돈으로 아이들과 어떻게 생계를 이어갈지는 애써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만큼 내게는 이혼이 절박했다. 나는 살아온 삶과는 다르게 대책 없이 긍정적인 면이 있었고 이번에도 어떻게든 되겠지, 살아지겠지, 더한 일도 겪고 살았는데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사실 이혼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래서 미뤘을까.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이었는지 나는 23년의 결혼생활 중 나머지 3년을 통해 처절하게 깨달았다.
결혼생활과 동시에 남편은 이미 외도 중이었고 성격 장애가 있었으며 폭력적이었다. 나는 여러 번 부셔졌고, 아이들은 행복해야 할 유년기를 잃었다. 이혼을 선택하지 못했던 건 아직 어렸던 아이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건 빌어먹을 신앙 때문이었다. 이렇게 쓰는 것이 아직도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께는 죄송하다. 그러나 이혼이 마치 큰 죄인 것처럼 가정을 지키는 것이 선교라고 그렇게 말해주신 분께는 내 남편과 한번 20년간 살아 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남편이 채팅을 시작한 지 23년쯤 되는 날, 외박을 일삼은지 3년쯤 되는 날, 집을 나간 지 1년쯤 되는 날 나는 이제서야 느닷없이 이혼을 결심했다. 아니, 어쩌면 모든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던 것 같다.
나는 8년 전쯤에 우울증에 걸렸고, 딸아이는 4년 전쯤에, 아들은 2년 전쯤에 우울증에 걸렸다.
나는 남편 앞에서 술과 우울증 약을 함께 먹고 팔을 그었다. 그러나 죽지 못했다. 딸아이는 4년 전쯤 자해를 시작했고 급기야 해열진통제를 과다 복용하고 응급실에 실려 갔다. 나는 그날을 이렇게 기록했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급차는 조용히 달렸고 그 평화가 이상하리만큼 익숙했다.
반면 응급실은 소란스러웠는데, 그제야 조금씩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수면제와 우울증약 과다 복용으로 실려 온 아이는 차분하게 의사의 질문에 답했다.
죽으려고, 살기가 싫어서 먹었노라고.
익숙한 마음이었기에 아이를 다그칠 수 없었다. 아이의 상태에 충격을 받은 건 시간이 좀 더 흘러서였다.
남편은 소란만 피우다 응급실에서 퇴장했다. 주된 내용은 어디서 감히 부모를 우습게 알고 이런 짓을 했냐는 내용이었다.
남편을 조용히 올려다 보았지만, 별다른 반응은 하지 않았다. 아무 의미 없을 터였다.
아이의 우울증을 전혀 몰랐던 건 아니었다. 슬픔을 견디는 아이의 태도가 나를 많이 닮아있다고 짐작했던 터였다.
밤샘 간호에서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엄마 탓이 아니야.. 라고 내뱉었다.
그 소리가 마치 엄마 탓이야 처럼 들렸던 건 나의 착각이었을까.
그날 밤을 떠올리는건 지금부터 숱하게 반복하게 될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했다. 퇴원 후 아이는 계속된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급기야 자해를 했고 상담실에서는 대학병원 입원을 권했다. 그렇게 아이의 정신병동 입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3~4주 정도를 예상했던 입원 기간은 두 달을 넘어가고 있었고 아이는 일반병동에서 폐쇄병동으로 옮겨졌다.
유난히 덥고 습했던 그해 여름, 나도 죽음을 생각했다.
삶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하기만 하단 말인가.
정작 수도 없이 아이를 마음으로 헤쳤던 남편은 평온한 시간을 보냈는데 그것이 아이러니이면서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남편은 평소에도 딸아이를 치우고 싶어 했다.
때때로 울음을 쏟아놓았고, 고통을 호소했지만 아이는 퇴원 후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다루는 법을 배워갔다. 감사한 일이었다.
아이의 우울증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매주 상담을 가고 약을 먹고 운동을 간다. 그리고 새벽에 깨어나 나처럼 운다.
그러나 이때도 내가 이혼을 결심한 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제 정말 끝을 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들까지 목을 맨 이후였다. 그때는 이미 남편은 집을 나간 후였는데 그 소식을 들은 남편의 첫마디는 ‘니가 병신같은 것들을 나았네’였다.
그 기록은 변호사가 요청한 결혼생활에 있었던 일을 육하원칙에 맞게 써서 보내달라는 요청에 자세히 쓰여있다. 나는 결국 육하원칙 따위 지키지 못했지만.
이 글을 보낸 후 변호사님의 반응에 나는 그만 의기소침해졌다. ‘그러니까 남편이 아픈거네요. 마음이 병든 환자, 인 거네요.’ 나 또한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남편은 환자다. 남편 또한 그 부모의 희생양이며 불쌍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가 잘해주면 나을 것이다. 그렇게 20년을 버텼다. 내 결혼 생활을 다시 요약하고 싶진 않아 변호사님께 보냈던 글을 첨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