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스포일러 주의**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의 주요 장면과 반전을 묘사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이 성장영화라는 걸 알아챈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흔히 영화에 등장하는 어린이는 보조적 역할을 맡고, 성인 관객도 그런 시선에서 어린이를 보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어린이 캐릭터를 떠올려 보자. 어린이 답지 않은 음흉한 미소로 어른들의 웃음을 유발하거나, 때로는 펑펑 흘리는 눈물로 어른들의 슬픔을 고조시킨다. 대부분이 어른의 감정을 자아내기 위한 도구적 역할에 그치고 만다. 아이의 시선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시련에 집중한 영화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쥬라기 월드2'를 보면, 전편에 없었던 캐릭터 메이지 록우드(이사벨라 서먼)가 눈에 들어온다. 메이지는 공룡 복제 기술 개발에 참여한 벤저민 록우드의 손녀. 클레어(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가 처음 엘리 밀스(레이프 스폴)을 만날 때 메이지는 첫 모습을 드러낸다.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메이지는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그런 그녀의 호기심이 이야기의 열쇠를 쥔다.
메이지는 우연히 록우드 저택 지하로 가면서 밀스가 공룡을 무기로 개발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대화를 엿듣다 들켜 방에 갇히고, 설상가상으로 사랑하는 사람마저 잃는다. 어른들의 탐욕으로 인한 시련에 맞닥뜨린 메이지는 승강기 안에서 펑펑 눈물을 흘린다. 그를 보는 어린 관객의 심정은 어떨까. 세상에 나 혼자만 남겨진 것 같은, 극도로 절망스러운 순간일 것이다.
이런 절망을 극단으로 밀고간 것은 바로 메이지의 침실 장면. 밀수꾼과 무서운 공룡이 들이닥쳐 자신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메이지는 자신의 침대로 도망쳐 이불을 뒤집어 쓴다. 어린이에게 '내 방 침대'는 영원히 안전하리라고 믿었던 공간. 이곳을 메이지의 최후의 보루로 활용해 감독은 공포를 극대화한다. '오퍼나지'의 감독 다운 연출이다.
두 번째로 돋보인 장면은 방안에 갇혀 있던 메이지가 창문을 열고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저택 앞에 밀수 경매 참가자들이 고급 차에서 내리는 동안 메이지는 높은 벽을 타고 할아버지에게로 향한다. 검은 양복으로 대비되는 탐욕과 연약한 메이지의 대비가 극대화된다. 그만큼 어린 소녀가 낸 용기는 더 거대해 보인다. 그런 메이지를 통해 영화는 어린 관객들에게 '외롭고 힘들 때도 언제나 용기를 내라'는 응원을 전한다. 저택의 지하에서 펑펑 울던 메이지가 눈물을 그치고 행동에 나서게 만드는 건 '공룡을 구하자'는 오웬의 말이다.
메이지를 보면서 결국엔 스티븐 스필버그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E.T.(1982)의 엘리어트, 마이클, 거티 삼남매, A.I.(2001)의 로봇 소년 데이빗까지. 스필버그는 이들 영화에서 아이들을 앞세워 편견 없는 사랑과 용기를 어린 관객에게 심어줬다. 세계인을 감동하게 만든 저력은 결국 이런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건드리는 데서 출발했을 것이다.
여기에 '쥬라기 월드2'를 맡은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의 이력도 재밌다. 그가 대중에 이름을 알린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은 어두운 판타지 스릴러지만 아이들이 중심에 있다. '몬스터 콜'도 불치병에 걸린 엄마를 둔 소년이 주인공이다. '쥬라기'는 바요나 감독 특유의 독특한 동화 감성이 스필버그 프랜차이즈의 인간애를 만난 듯한 결과물이다.
실은 영화 전체를 놓고 보면 메이지는 영화 속 여러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
클레어와 오웬의 관계, 지아(수의사)와 프랭클린(너드) 캐릭터의 등장, '공룡을 멸종 위기 동물로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 유전자 조작 문제에 섬과 저택 탈출 액션 장면까지.... 물론 오락 영화인만큼 그 질문이 심각한. 선으로 넘어가진 않는다.
하지만 어느 한 이야기도 부각되지 못한 탓에, 끝나고 메시지를 던져주기 보다는 화려한 액션과 스릴을 즐기는 킬링타임용 영화가 되고 말았다. 메이지도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하다보니 그녀가 '클론'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아무도 그 '반전'에 깜짝 놀라지 않은 눈치다.
그래서일까.. 쥬라기를 볼 때는 메이지가 안쓰럽고 사랑스러웠지만, 영화관을 나서니 오래전 스필버그의 아이들이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