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느낌은 비슷하지만, 여행지의 느낌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처럼, 어떤 곳은 다시 한 번 꼭 가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한 번 강하게 입력된 여행지의 기억은 사랑했던 사람의 모습처럼 죽을 때가지 잊히지 않는다.
사람은 일을 싫어할 수도 있고, 운동을 싫어 할 수도 있다. 나이 들면 사랑도 귀찮아지거나 싫어진다. 하지만 남녀노소 상관없이 여행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골프 치는 사람도, 바둑 두는 사람도, 그렇게 취미는 달라도 여행은 동경한다. 이것이 여행을 한번 시작한 사람이 여행을 끝낼 수 없는 이유다. 내가 여행사 직원이라면 외국인에게 아래의 여행지를 가이드 하고 싶다.
-송광사 / 통도사/ 해인사
여러 곳의 사찰을 다녀도 풍경은 비슷한데 느낌은 달랐다. 같은 산, 같은 물, 같은 기둥, 같은 탑이 아니었다. 우리니라 3대 종찰인 송광사, 통도사, 해인사가 그랬다. 이왕이면 세 군데를 모두 가보기를 권한다.
이것도 취향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순천의 송광사가 아늑하고, 편안했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 작은 연못이 아름다운 낙하담에 잠시 머물다 일어났다. 그런 다음에 화진당 뒤편 나지막한 언덕에 오르면, 송광사 경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언덕에 자리 잡고 앉으면 생각이 멈춰진다. 그냥 좋다. 그렇게 한참 앉아 있다가 내려 왔다. 나는 송광사 경내모습이 좋아서 노트북 바탕화면으로 모셔왔다.
-통영(강구항 / 미륵산 / 소매물도)
대한민국 남부, 경상남도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통영이 좋아 세 번 방문했다. 강구항과 중앙시장 근처에 동피랑 마을과 남망산 조각공원등 볼거리가 여럿 있다.
강구항에 떠 있는 거북선 모양의 배, 중앙시장의 생선 냄새, 조각공원의 깔끔한 예술작품들은 인간적이다. 이곳은 걸어서 다닐 만큼 딱 좋은 코스다.
내친 김에 통영 봉평동에 있는 미륵산 정상까지 올랐다. 케이블카로 정상 근처까지 갈 수 있지만 등산을 택했다. 웬만하면 케이블카 타기를 권한다. 등반할 때 가파르고 힘든 코스가 있고, 상대적으로 쉬운 코스가 있다.
나는 힘든 코스를 통해 올라갔다. 미륵산 정상에서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바라볼 때, 이순신 장군의 정신이 느껴질 정도로 가슴이 뜨겁고 벅찼다.
하산할 때 길을 잃어 하마터면 사고 날 뻔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저녁 무렵에야 마을이 보였고, 무사히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통영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면 소매물도를 갈 수 있다. 소매물도를 가본 사람들은 멀리서 바라본 하얀 등대를 잊지 못할 것이다. 물이 빠지면 등대로 건널 갈 수 있지만, 시간대를 못 맞추어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소매물도는 작은 섬이라 세 시간 정도면 정해진 코스를 돌 수 있다.
-청평사
강원도 춘천의 눈 내린 쳥평사는 크지도 않고 볼거리가 있는 절도 아닌데 뭔가 절제된 느낌이 든다. 꽉 차지도 않고, 텅 비지도 않은 뭐랄까, 여운이 남는 절이었다. 이것이 인상적이었다.
청평사는 소양강댐 구경하고, 거기서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도로를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선착장이 나온다. 배를 타고 10여분 정도 가면 청평사로 들어갈 수 있다.
-문배마을
청평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서둘러 오전에 청평사 구경을 마치고, 오후에 문배마을로 가도 좋다. 한 겨울에 문배마을 갈 때는 아이젠을 꼭 가지고 가야 한다.
40~50분 등산 기분으로 올라가면 신기하게도 평지에 마을이 나타난다. 현수막에는 신가네, 장가네 이렇게 성씨들이 적혀 있고, 술과 안주를 여행객들에게 판매한다.
-안동(월영교 / 시사단 / 부용대)
경상북도에 있는 안동도 구경거리들이 많다. 대체로 사람들은 안동 하면, 하회마을과 도산서원을 떠올리지만 나는 월영교가 생각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는 목조다리 월영교는 야경이 참 멋지다.
도산서원도 구경할 만 하지만, 나는 도산서원을 등지고 바라보는 시사단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시사단을 보기만 한 게 아니라 건너가서 직접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를 때 얼마나 짜릿 하던지,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정상에 제단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모습을 하고 있고, 비석도 있다. 거기서도 한동안 동서남북 사방을 바라보다 내려왔다. 시사단의 겨울 모습이 좋아 두 번을 더 방문했다.
안동에 가면 여기를 놓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하회마을을 가서는 부용대에 올라가 보지도 않고 나온다. 몰라서 그런 거다.
부용대에 오르면 낙동강이 하회마을을 감싸고도는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하회마을을 나와서 조금 걷다보면 나루터가 있다. 나룻배로 5~10분 정도 가서 야트막한 산길을 오르면 부용대에 다다른다.
-청산도
스무 번도 넘게 다녀온 부산보다 한 번 갔던 청산도가 더 강렬했다. 완도여객터미널에서 배 타고 간 청산도는 1박을 할 계획이 아니었다.
4월의 유채꽃이 너무도 아름다워 산장에 투숙해서 1박을 하고 말았다. 내가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 3순위 안에 있다.
-예천(회룡포/ 뿅뿅다리 / 삼강주막)
예천 여행도 좋았다. 회룡포, 뿅뿅다리를 둘러보고 삼강주막까지 걸어갔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한 추억담이다. 회룡포에서 바라보는 마을과 뿅뿅다리는 흑백 그림 같았다.
삼강주막까지 걸어가는데, 소가 보이고, 송아지에 우유를 주는 할아버지 모습도 사진에 담았다.
세 시간 가까이 걸어가도 목적지, 삼강주막이 안 보였다. 중간에 용달차 모는 할머니가 카플 해주어 2킬로미터는 차를 타고 갔다. 삼강주막은 세 개의 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서 삼강주막이라고 한다.
-무섬마을
영주에 있다. 무섬마을에 가는 이유는 마을을 보기 위함도 있지만, 외나무다리 때문이다. 내성천 위를 지나는 외나무다리를 왔다 갔다 하는 스릴과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다. 무섬마을과 부석사는 네 번을 다녀왔다. 서울과 가깝기도 하고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부석사
나에게 우리나라 최고의 여행지를 말하라면 고민이 된다. 그래도 한 곳을 말해 달라고 하면, “영주 부석사요.”라고 말하겠다. 무섬마을에서 한 시간 가량 차타고 가면 당도한다.
부석사는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하다. 의상대사를 짝사랑했던 선묘낭자의 사연이 있는 절이기도 하다. 부석사는 일주문을 지나 층층이 쌓인 돌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맨 나중에 무량수전과 마주한다.
거기서 몸만 180도 틀어 무량수전을 등지고 바라보자. 그러면 저 멀리 백두대간 능선이 10첩 병풍처럼 펼쳐진 산이 보인다. 물결치듯 보인다.
그 장엄한 풍경은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이다. 부석사만 생각하면, 부석사 입구에 땅을 사서 집을 짓고, 매일 새벽에 부석사를 오르고픈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