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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먼드 마운틴 Jun 24. 2021

얼굴은 전복죽, 마음은 된장국 같은 친구

내가 웃으며 살아왔더라면, 나의 인생도 달라졌을까!

<너 정말 매력 있다.

뭐가 매력 있어?

볼수록 생기 있는 웃음도 그렇고, 오늘도 심플한 옷차림이 그렇고, 맛깔난 이야기 술술 풀어내는 목소리도 매력적이야.>      


얼굴이 예뻐서 꼭 예쁜 것만은 아니다. 평범한 얼굴이 웃음과, 미소로 무장을 하면 열미인 안 부러울 정도로 세련되고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여자가 남자에게 관심 받는 이유 중 하나일 거다. 마찬가지로 여자도 조각 같이 잘 생긴 남자보다 평범한 얼굴이지만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남자에게 더 끌릴 때가 있다.      


모안이 그것을 증명하듯, 웃음 하나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동성, 이성 가리지 않고 도착하는 친구들과 인사 나눌 때마다 광대뼈가 승천하듯이 웃으며 반겼다. 웃음은 전파력이 강하다. 자연스레 모안의 미소와 웃음은 주변도 밝게 했다. 어린 시절 모안과의 기억은 없다. 학교 다닐 때 반이 다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장기기억력이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 모안이 동문회에서 유난히 눈에 밟혔다.   

   

전복이다.

나도 모르게 이 말이 나왔다. 모안의 웃음에서 전복을 보았다. 그것도 자연산 전복이었다. 모안의 웃음은 입만 웃는 것이 아니라 눈도, 목소리도 함께 웃었다. 생기가 있었다. 아, 이건 오랜 세월 익숙하게 습관화된 자연스러움이 아니면 이럴 수 없다. 일시적인 연기를 해서 나올 수 있는 표정과 웃음이 아니었다.      


전복은 자연산이 있고, 양식이 있다. 자연산 전복의 패각(껍데기)은 따개비나 굴 등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지저분하고 투박하다. 지저분한 게 아니라,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자연스럽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양식 전복의 패각은 자연산 전복에 비해 성형한 듯 깨끗하다. 색깔도 다르다. 자연산이 울퉁불퉁, 거무튀튀한 갯바위 색깔이라면 양식은 밋밋한 푸른빛을 띤다. 영양과 맛은 어떨까? 아무래도 깊은 바다에서 자연 그대로의 해조류를 먹는 전복이 양식에 비해서 더 가치는 있다. 식감도 더 오독오독 거린다. 그렇다고 양식 전복이 영양과 맛이 떨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자연산의 품질이 더 좋다는 의미다. 지금 우리가 먹는 전복의 대부분은 양식이다. 비싸고 귀했던 자연산 전복 못지않게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세상인가.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외모만 본다면, 양식 전복이 지저분하지 않고 예쁘다. 하지만 내게는 자연산 전복이 양식 전복보다 더 미소 짓고 웃는 얼굴처럼 보인다. 아이러니한 거다. 전복을 오래 보아온 나는 그렇게 보인다. 모안의 웃음은 자연 그대로, 손을 타지 않은, 자연산 전복에 가까웠다.     

 

나는 생각했다. 모안이 쟤는 뭐가 저리 행복할까. 나의 시야에 모안이 들어왔다. 친구들과 얘기하는 중에, 이빨을 드러내고 웃을 때도 바로 손이 올라가서 살짝 입을 가렸다. 에티켓도 갖추었다. 모안은 웃음만 A학점이 아니었다. 매력은 또 다른 매력을 낳기 마련이다. 사회성도 A학점이었다. 모임에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우수에 차 있거나, 만날 때마다 우거지상 하고 있는 사람과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능력 있고 갖추었더라도, 사회생활 하면서 사람들과 융화 안 되고, 오로지 자기만의 색깔로 살면 민폐나 다름없다.   

   

내가 잘 웃지 못해서, 모안이 좋았던 것일까! 꼭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번에 나의 시선이 모안의 얼굴에서 옷으로 옮겨 갔다. 옷은 사람의 관심을 끄는데, 옷이 굉장한 매력으로 작용해서 사람마저 호감 있어 보일 때가 있다. 남자가 보았을 때 여자나, 여자가 보았을 때 남자나, 옷 잘 입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스티브잡스가 패션 하나로도 얼마나 멋있었나. 볼 때마다 스타일이 같긴 한데, 질리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선택과 집중이 잘 된 사람이라고.      


옷을 잘 입는 것은 타인이 나를 보는 데, 긍정적 효과를 미칠 수 있다. 또한 자존감도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옷을 구입할 때, 남의 시선에만 초점을 두다보면 자신의 개성보다는 유행이나 고가 브랜드에 몰두하게 된다. 브랜드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실속 있게 구입해서 입어야 한다.     

 

모안의 패션이 그래보였다. 모안은 청바지에 하얀색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체크무늬 스타일의 오픈셔츠를 겹쳐 입었다. 신발은 하얀색 러블리슈즈를 신었다. 전체적으로 코디와 컬러매칭이 괜찮았다. 깨끗하고 깔끔했다. 내가 보기에 모안의 옷은 명품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안목이 있어 보였다. 모안이 옷을 신경 써서 입는 사람임이 느껴졌다. 잘 보이고 싶은 욕구에서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잘 입는 예절을 아는 친구였다.      


모안에 관심이 갔던 이유, 세 번째는 목소리였다. 모안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모안의 목소리가 내 자리까지 들렸다. 어 이건 뭐지, 할 정도로 신기했다. 앞에 있는 친구들과 얘기하는데, 저 쪽에 앉아 있는 모안의 목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다. 여러 친구들의 목소리가 뒤섞이는 중에도 모안의 목소리가 잘 들렸다. 내 귀에만 잘 들리는 것일까. 대화 하면서 목소리 높이지 말라고 한다. 모안의 목소리가 특별히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명확한 발음, 군더더기 없는 말투, 애교 섞인 추임새까지, 잘 들리게 하는 음성을 가졌다. 나의 경우, 목소리는 나쁘지 않은데, 어눌한 건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모안을 만나고, 음성학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이 자리이동 하고, 어느새 모안이 내 앞에 와서 앉았다. 동창은 이래서 좋은 것인가. 같은 반이 아니었음에도, 어색하거나 낯가림이 없었다. 이런 저런 잠깐의 대화에서 묘하게도 모안이 보였다. 말이란 것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이게 한다. 딱히 이렇다 말하긴 그렇지만, 정서감, 안정감, 신뢰감 등등. 짧은 만남이지만, 모안의 세계와 내 세계가 같은 색깔일거라고 확신했다. 그 세계라는 것이, 정서적 동질성, 상호 편안한 느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변태적 성향, 은유와 수수께끼를 좋아하는 스타일, 뭐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무슨 장담으로 이렇게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이건 불확실성의 추측이 아닌 확실성의 직감이었다.      


이날은 모안과 가벼운 대화만 나누고 헤어졌다. 모안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지만, 동문회 분위기에서 진지한 얘기가 오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달 후 즘, 모안을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오늘도 모안의 의상은 깔끔했다. 바지는 연한 청색의 슬림핏 슬랙스였고, 하얀색 티셔츠 위에 베이지색 계열의 트렌치코트를 걸쳤다.      


모안아, 나는 옷에 관심이 많아. 만일 여윳돈이 생겼을 때, 옷, 음식, 집중에서 어디에 투자하고 싶으냐고 하면, 나는 단연 옷이라고 대답할 거야. 나에게서 옷은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나 집의 안락함과는 다른 차원이거든. 옷만큼은 잘 챙겨 입고 싶어. 나는 옷을 잘 입으면 기분이 좋고 자신감도 생겨.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마음껏 입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야. 너는 어때? 옷, 음식 집 중에서 어디에 투자할 거야?

음, 나는 음식일 거 같은데.

왜?


우리 동네에 비싼 고급 갈비 집이 있고, 일반적인 가격의 갈비 집이 있어. 나는 지금 일반 갈비 집을 가. 그런데 집을 더 안락하게 꾸밀래, 새 옷을 살래, 고급 갈비 먹을래, 이렇게 물어보면 나는 고급 갈비 먹는 걸 선택할 거야. 집은 살고 있는 집이면 되고, 옷도 그렇게 욕심 없어. 하지만 음식은 다양하게, 제대로, 맛있게 먹고 싶은 게 내 마음이야.


모안이 의․식․주 중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모안의 얘기를 듣는데, 모안의 입이 자꾸 전복으로 상상되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그렇게 상상을 하는 내 두뇌의 의지를 제지할 수 없었다. 내 야릇한 상상을 모안이 눈치 채기 전에,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구나. 모안아, 지난번 모임 때 묻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지금 물어봐도 돼?

그럼. 뭐든지.  

나는 너의 웃음이 참 좋아 보여. 언제나 그렇게 웃어?

그러자 모안이 이렇게 얘기했다.

연산아,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그래서 웃는 게 쉽지 않다는 사람을 보면 이해 안갈 때가 있어. 내가 이상한 건가? 어느 때는 이런 나 자신을 보면서, 조물주가 쪼물딱 쪼물딱 거리다가 실수로 잘못 만들었다는 생각도 해보았어.

모안의 말에 내가 웃자, 모안도 함께 웃었다. 얼마 만에 자연스럽게 웃는 웃음인지, 웃는 내가 생소하기까지 했다.       


연산아, 사실 내 웃음 뒤에는 조물주가 아니라, 지금은 볼 수 없는, 엄마가 있어. 내가 초등 저학년 때 남자짝꿍이 지저분해서 싫었어. 엄마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엄마가 나를 꼭 끌어안고 이렇게 말하는 거야. 모안아, 사람은 다 똑같아. 엄마에게 모안이 최고인 것처럼, 친구의 엄마도 마찬가지야. 친구의 엄마에게는 그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들일거야. 엄마의 이 말은 내가 인생을 살면서 사람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만든 토양이 되었어.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도 얼굴에 미소를 띠우고, 목소리가 밝을 수 있는 이유는 엄마의 그 말 덕분이야. 그래서인지 살면서 이 사람 싫다 없이 살았어. 존재는 똑같고 당연히 사랑받아야 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20대보다는 30대에, 30대보다는 40대에, 40대보다는 50대에 더 밝게 살고 싶어. 그리고 엄마 이상으로 나에게 웃음을 선물로 주고 간 사람이 있었는데, 그건 나중에 기회 되면 얘기해 줄게, 그런데 연산아, 별일이다. 이런 얘기 누구에게 해본 적이 없거든. 너 만나면 말해주려고 간직해 두고 있었나 보다.    

  

이렇게 말하고, 모안은 나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모안의 얼굴에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모안의 마음이 느껴졌다. 이 순간, 태양이 떠오르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서 무엇인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 이건 뭐지, 하면서 말이다. 모안의 얘기를 듣는데, 두뇌를 가두어 놓은 빗장이 풀리면서 두뇌가 꿈틀거리는 신기한 현상에 나 스스로도 놀랐다. 아주 잠깐이지만,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받았을 때의 행복한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수많은 경험을 하며 살아가지만, 모두가 그 경험을 맛깔스럽게 풀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모안은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모안의 얘기에는 이게 있었다, 그림이었다. 모안의 애기를 듣다보면 아주 선명한 그림이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모안에게는 그런 재능이 있었던 거다. 그것도 따뜻한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었다. 웃음을 선물로 주고 간 또 다른 사람 이야기도 왠지 가볍지만은 않을 거 같았다. 거기에는 더 색다른 스토리가 있을 거 같았다. 궁금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나는 모안을 보며 말했다.      


모안아, 나도 너처럼 웃고 싶은 데, 웃음이 잘 안 나와. 나이와 웃음은 반대로 가는 거 같아. 따로 웃음교육을 받아야 할까봐. 요즘 그런 교육도 많잖아.

내 말에 모안은 웃으며 얘기했다.

연산야, 웃음은 나이하고는 상관없어. 그리고 너는 웃음교육을 따로 받을 필요가 없어. 넌 원래 웃는 얼굴이야. 그냥 웃어봐. 그러면 돼.

정말?

그렇다니까. 너는 너 자체가 웃음 자격증이야. 대신에 이거 하나는 꼭 가지고 있어야 해.

뭔데?

손거울이야. 너 손거울 가지고 있니?

남자가 무슨 손거울을....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꼭 손거울을 사. 이건 남자 여자 구분 없는 거야. 사람은 거울을 볼 때 싫은 표정 안 짓는다. 웃어. 그게 거울의 매력이야. 하나 말고 두 개는 있어야겠더라. 나는 집에 화장대도 있고, 화장실 거울도 있어. 그래도 손거울이 필요해. 나는 앉아서 통화할 때나 식사할 때 손거울을 옆에 놔둬. 혼자 술 먹을 때나 눈물 날 때도, 내 옆에는 손거울이 있어. 손거울로 나를 봐. 텔레비전 보다가도, 웃을 때도 손거울을 봐. 너도 그렇게 해봐. 그럼 너의 삶이 변해. 굉장히 충만해진다. 네가 너 스스로를 관찰하는 거야. 매직인 거지. 손거울의 마술이야. 나는 일상을 손거울과 마주하고, 기쁨도, 슬픔도 손거울과 함께 해. 거울은 여러 의미가 있어. 나의 진심일수도 있고, 거짓일수도 있고, 위선일수도 있고. 그게 거울이야.     


모안아, 네 얘기를 듣다보니, 백설 공주의 거울아 거울아가 떠오른다. 내게는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가 아니라,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잘 웃니? 로 바뀌어서 들려.

호호. 그러니. 연산아, 웃는 얼굴은 어디에 모여 있을까?

글쎄.

연예계, 영화계, 이런 데야. 우리나라, 일본을 비롯해서 헐리우드 영화배우를 봐. 웃는 얼굴이 너무 예쁘고 자연스럽지 않아?

맞다. 그러네.


우리는 살면서 연예인 마인드가 필요해. 어떤 측면에서는 연예인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야 해. 나를 연예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거야. 그러면 얼굴이 변하고 행동이 바뀌어. 자기관리를 하는 것이지.

공감이 간다.  

연산아, 내가 얼마 전에 손거울을 소파 뒤로 떨어뜨렸지 뭐니. 소파를 앞으로 당기려면 공사가 커서 그대로 놔두었어. 그러다보니, 혼자 있을 때, 혼잣말 하는 것도 줄어들었어, 손거울 안 보니까 피부 관리도 안 되고. 그래서 손거울을 세 개 샀어. 가방에 하나 넣어 다니고, 하나는 침실에, 하나는 거실에 놓고 보고 있어.      

모안아, 너 정말 매력 있다.

뭐가 매력 있어?

볼수록 생기 있는 웃음도 그렇고, 오늘도 심플한 옷차림이 그렇고, 맛깔난 이야기 술술 풀어내는 목소리도 매력적이야.


와, 이거 진짜 역대급 칭찬인데. 너처럼 이렇게 정리해서 칭찬해 주는 사람도 처음이야. 사실 나는 예쁘다는 말보다는 매력적이다. 인상이 좋다. 우아하다는 말이 더 좋아. 그건 내가 예쁘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지. 호호호. 연산아, 사실 내가 어떤 경우가 와도 웃음을 잃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한 적이 있었어. 지금 다니는 직장에 입사하고 2년차 즘 되었을 거야. 한 번은 내가 외근 나갔다가 저녁회식에 참석하기 위해 왔어. 웃으면서 인사하고 앉았는데, 직원 한명이 이렇게 말하는 거야. 저는 이 언니만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저는 인사하는데도 언니 톤(tone)이 안 나와요. 전화 받을 때도 저만의 톤을 가지고 있나 봐요. 우울하지 않은 데도, 잘 안돼요. 그래도 저 언니처럼 꼭 바꾸고 말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거야. 그 말을 들으니 정말 행복해 지는 거야. 그래서 결심했지.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어떤 사람에게라도 웃는 얼굴을 감추지 말자고.

나는 모안의 얘기를 듣고 나서, 아주 단순한 질문을 했다.


모안아, 우리가 웃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자 모안이 대답했다.

연산야, 웃음에도 이유가 필요할까. 사랑이, 그냥 좋은 것처럼, 웃음도 그냥 웃는 거 아닐까. 하나 분명한건, 맑은 미소, 밝은 웃음소리를 가진 사람 주위에 사람들이 모인다는 거야.


모안의 대답에, 내 앞에 앉아 있는 모안이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안이 말했다.      

연산야, 웃어야할 이유와 안 웃어야할 이유가 가위 바위 보 하면 웃어야할 이유가 무조건 이겨. 이건 진리야. 하지만 말이지, 웃음이 처음에 안 통하는 세계도 간혹 있어. 웃으면서 대하면 상대방이 달라지는데, 처음에는 안 변하는 사람도 있어. 그래도 하는 거야. 그러면  결국에는 웃음에 안 넘어갈 사람이 없어. 웃는 얼굴은 마음이기 때문이지. 웃는 얼굴로 대하면 웃는 마음이 돼. 슬퍼도 웃어 봐. 행복해지기 위해서 말이지. 결국 모든 사람은 웃음에 통하게 되어 있어. 내가 밝게 웃으면 상대가 편안해질 수 있다는 마음으로. 그것도 재능기부야.      


모안의 얘기를 듣다보니, 이런 생각이 불숙 끼어들었다. 어, 예전에 이런 대화 나누었던 적 있었어. 분명히 처음이 아니야. 이것도 일종의 데쟈뷰인가. 모안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렇고, 목소리도 그렇고, 대화내용이 분명 처음은 아니었다. 살아오면서 데쟈뷰 현상을 몇 번 경험 했지만, 이건 이전 경험과 비교가 안 되었다. 너무 강력했다.     


우리는 살면서 상대가 던진 말 한마디와 웃음에, 행복의 절정을 맛본 경험이 있다. 우리는 이미 진심에서 나오는 말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은 멋진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배부르다. 실제는 배고픈데 말이다.


오늘 나를 만난 사람 중에 나를 기쁘게 해주거나 좋아해주는 사람 만나면 그날은 빛나는 날이다. 상대가 던진 한마디에 천금보다도 더한 행복을 느낀다. 이 사람의 말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내가 힘들었을까!라고 생각하는 고마운 사람이 있다. 살면서, 그런 사람 만나면 절대 놓치면 안 된다. 나는, 그 사람이 오늘 만난 모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안을 이렇게 표현해봤다. 얼굴은 전복죽, 마음은 된장국 같은 친구.      


*미리 말하지만, 모안은 일본에 살다가 한국에 돌아온 이후, 집에 도둑이 들은 트라우마가 지금까지도 있고, 사기도 당해 큰돈도 날렸다. 코로나19가 왔을 때 직업상, 가장 먼저 직장도 잃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모안의 이런 삶의 태도 때문이었을까. 행운이 찾아오면서 버거웠던 짐들이 모두 해결 됐다. 이 글은 모안의 행운을 얘기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모안의 행운은 분명 공짜가 아니었다. 늘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 마음으로 고스란히 돌아왔을 뿐이다. 웃음으로 사니 마음이 즐겁고 편안했다. 사람들도 잊지 않았을 것이다. 비켜갈 뻔 했던 행운도 그 웃음이 끌어 당겼지 않았을까!)   

   

나는 생각했다. 어느 날, 내 앞에 나타난 모안. 모안의 웃음을 보면서 if(만약), 가정을 해보았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내가 웃으며 살아왔더라면, 나의 인생도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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