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속으로 몸을 던진 복어
누가 우리를 가두어 놓은 것일까!
완도 앞바다에는 전복을 가두어 키우는 가두리 양식장이 있다. 복어도 그 중 한 마리다. 2년 전쯤, 복어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쉘터)을 떠나와, 여기 바다 속, 큰 집으로 이사 왔다. 이 바다에는 복어가 사는 집 말고도 많은 집이 있다. 각각의 집에 이삼천 마리의 전복들이 함께 생활한다. 복어는 집 벽에 밀착해서, 천천히 주변을 들러보았다. 며칠 동안 바닷물 온도가 상승해서 힘겨워 하는 전복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요사이 심각한 기후변화로 바닷물이 따뜻해지면서, 견딜 수 없었던 전복들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어제도 백여 마리의 전복들이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죽고 말았다. 작년에 폭염 때문에 수많은 전복이 바다를 떠났는데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갈수록 이런 현상이 잦아져서 정말 큰일이라고 복어는 생각했다. 전복들이 몰살당하는 건 바닷물의 온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홍합 알의 조용한 습격이 문제가 될 때도 많았다. 어린 전복의 껍데기에 부착해서 살아가는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복어는 다른 전복들처럼 죽은 전복들을 애도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왜 우리는 여기 갇혀서 생활하는 걸까! 누가 우리를 가두어 놓은 것일까! 이 집 밖은 정말 위험한 것일까! 이런 의문들이 복어를 고민에 빠트리게 했다. 가까이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이 질문만큼은 속 시원히 대답해 주지 않았다. 다른 전복들은 집에서 먹고 자고 평화롭게 지내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또 며칠이 흘러갔다.
한번은, 어디서 흘러왔는지 큼직한 따개비가 옆에 있던 전복의 숨구멍에 붙으려 할 때, 복어가 재빨리 처치해준 일이 있었다.
고마워. 나는 무영이라고 해.
나는 복어야.
복어와 무영은 인사를 나누었다. 이날 이후로 둘은 친구가 되었다.
복어와 무영은 다른 전복들이 그렇듯이, 다시마를 함께 먹기도 하고, 번갈아 등을 내어주며 붙어있기도 하고,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친해졌다.
무영아, 나는 이 집밖이 궁금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 집을 나가고 싶어. 저 바다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어.
그래? 모두 이 집에 있으려고 하는데, 너는 반대로 말하네. 저 바다는 위험하고 무서운 종족들이 수없이 많대. 우리처럼 약하고 느린 걸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 이 집에 있으면 먹이도 위에서 때마다 떨어지고, 무엇보다 강한 적들로부터 보호해주잖아.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정말 그래야 되는 걸까? 그게 맞는 걸까? 너는 이렇게 갇혀 있는 게, 답답하지도 않니? 그런데 무영아, 혹시 우리가 왜 이 집에 갇혀 있는지, 아는 거 있니?
그게 말이지. 이걸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무영이 뜸을 들이자, 복어가 꼭 듣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무영이 말문을 열었다.
그게... 그게... 이 말을 했다가 내가 이상한 전복으로 생각될까봐 아무에게도 얘기 안 했어. 너에게 처음 하는 얘기야.
그래. 어서 말해봐.
며칠 전에 잠을 자다가 중간에 깼어. 다른 친구들은 다들 자더라고. 나는 잠도 안 오고, 계속 깨어 있었지. 그런데 밖에서 얘기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처음에 들린 소리는, 저 안에 있는 얘들 다 죽는다였어. 그 소리에 놀라서 우리들 얘기인가하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들어보았어.
복어는 숨을 죽이며 무영이 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무영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걔네들 대화는 이런 거였어. 이 바다세계를 벗어나면 땅이라는 세계가 있대. 땅의 세계에 우리보다 훨씬 문명이 발달한 생명체가 산다는 거야. 그 생명체가 이 집을 만들었고, 우리들을 여기에 살게 했대. 우리 집 말고도 똑같은 집을 많이 만든 거래. 그 생명체는 두 종류가 있는데, 밝은 마음의 생명체와 어두운 마음의 생명체가 있다는 거야. 밝은 마음의 생명체는 보호를, 어두운 마음의 생명체는 파괴를 일삼는다는 거지.
그런데 왜, 우리를 이 집에 가두었다는 거야?
그게 말이지, 우리가 여기서 큰 모습으로 자라면, 그 생명체가 와서 우리를 데려 간대. 그 때가 얼마 안 남았다는 거고. 우리가 바다생물 중에서 최고의 에너지를 뿜어낸다고 그들은 믿고 있대. 그래서 우리를 먹어 자신들의 몸속에서 에너지를 만들려는 거래.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그들이 주는 먹이를 잘도 먹고 있으니, 불쌍하다는 거였어. 그렇게 죽는 게 우리의 운명이래.
무영의 이야기가 끝나자, 복어는 어리둥절했다.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얘기라고 생각했다.
복어야, 너도 안 믿지?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런 거짓말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지? 밖에 있는 쟤들이 우리를 질투하고 시기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일거야.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쟤들이 하는 말은 믿을 게 못돼.
무영의 얘기를 들은 이후로, 복어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처음에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혼란만 더해갔다. 과연 거짓말일까! 다른 친구들은 집에서 이렇게 사는 게 너무 행복한데, 자신은 이렇게 사는 게 싫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영의 이야기가 복어의 가슴에 불을 지른 것이다.
복어의 고민은 계속 됐다. 매일 매일이 똑같은 삶. 먹고, 자고, 싸고.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이 삶의 끝은 어디일까,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사는 걸까, 그렇다고 그만 살고 싶어, 이런 뜻은 아니었다. 아무튼 이 집이 너무 갑갑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 집을 나가는 순간부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위협과 공포가 있을지 몰라. 집 밖을 나가는 순간부터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무섭게 생긴 종족들이 기다린다고 했으니까. 그래, 여기 있는 게 가장 안전 할지 몰라. 집 밖은 알려고도 하지 말자. 다른 세계의 생명체가 우리를 먹이로 사용하려고 가두어 놓았다는 말도 틀림없이 거짓말일 거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가도 복어의 다른 마음은 이렇게 말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거 마찬 가지 아니야. 이 집에 가만히 있다가 언젠가 죽는 것보다, 이왕이면 저 바다가 어떤지 보고 죽는 게 더 좋지 않아. 그래. 두려울 수도 있어. 하지만 너에게는 그걸 헤쳐 나갈 용기라는 무기가 있잖아. 도전 해봐. 모험이 너를 기다리고 있어. 너의 삶이 아깝잖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젠가 분명히 후회할 거야. 저 바다세계로 뛰어들어봐. 가. 가란 말이야. 이렇게 계속 속삭였다.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복어도 저 바다를 향한 고민도 덜 해졌고, 환경에 순응해 갔다. 무영은 어디를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복어는 혼자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이때 주변이 웅성웅성 소란스러웠다. 몸집이 날렵하게 생긴 전복이 큰 소리로 말하며 다가왔다.
곧 태풍이 올 겁니다. 지난 번 태풍은 별 탈 없이 지나갔지만, 이번에는 어떨지 모르니, 움직이지 말고 한 곳에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서로 등에 붙어 있는 건 위험 할 수 있으니, 집 벽에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복어는 무영을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 전복의 말대로 몇 시간 후에 바닷물의 흐름이 심상치 않았다. 집이 조금씩 흔들렸다. 전복들은 몸을 벽에 바싹 붙이고, 태풍이 조용히 지나가기만을 기도했다. 하지만 이번 태풍은 느낌이 안 좋았다. 비바람이 거세지더니 집이 출렁거리고 서로 부딪히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그렇게 집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파손되고 그물이 찢겨 나갔다. 전복들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견고한 집인데도 불고하고, 약한 부분에 강한 충격이 가해지면서 생긴 것이다. 한 번 뚫린 집은 점점 아수라장이 되어갔다. 힘이 약한 전복들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찢긴 그물 구멍으로 떨어져 나갔다. 남은 전복들은 집에서 안 떨어지려고 악착같이 붙어 있었다. 복어는 무영을 찾았다. 아까는 안 보이던 무영이 저 앞에 달라붙어 있었다. 무영도 복어를 찾으러 오는 중이었다. 복어는 가까스로 기어서 무영 옆으로 갔다. 복어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무영아 괜찮아?
응. 참을만해. 위험한데 거기 있지, 뭐 하러 여기까지 왔어. 움직이지 말고 꼭 붙어 있어,
무영아, 이건 기회인지도 몰라. 우리 가보자, 저 바다로.
복어는 무영을 찾으러 오는 동안, 그동안 감추어져 있었던 바다세계에 대한 갈망이 다시 깨어났다. 이건 기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복어가 무영이 있는 쪽으로 등을 내밀었다. 무명보고 올라타라는 몸짓이었다.
또 그 얘기야. 싫어. 가려면 너 혼자 가.
정말 안 갈거니? 함께 가자.
이 편한 집을 놔두고 너는 왜 태풍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거야. 여기서 조금만 버티면 우리는 살 수 있어.
무영아, 바다 속으로 떨어진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집에 붙어 있다고 사는 것도 아니야. 우리는 저 넓은 바다에서 살아야 해. 그게 우리 운명이야. 이 집은 집이 아니라 감옥이야. 함께 가자.
복어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무영을 다시 설득했다.
아니야. 난 네가 뭐라고 해도 안 가. 가려면 너 혼자 가.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면 그때 보자.
무영의 확고한 마음을 확인한 복어는 단념하고, 뚫린 구멍을 바라보았다. 저 구멍이 지옥처럼도 보이기도, 희망처럼 보이기도 했다. 집은 더욱 거세게 흔들렸고, 물살이 몸을 강하게 때렸다.
그래. 나 자신을 믿어 보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무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럼, 무영아, 행운을 빌게.
이렇게 말하고 복어는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순간 고개를 돌린 무영의 두 눈과 짧은 시간 마주치고, 뚫린 구명 속으로 빠르게 빨려나가더니 점점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포기할 수 없었던 무언가를 동시에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