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series ep1.

아이들의 노력

by Minimi

책임 이라는 단어를 곱씹어본다.

책임 責任.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


그럼 선택이라는 것을 왜 시리즈로 써보고 싶어졌을까?


나는 청소년기 아이들이 있는 곳애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다.

아이들의 유행과 유행어와 행동과 변화를 가장 빠르게 볼 수 있다.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가, 더 나아가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왜 점점 어려워질까?”,

“아이들은 왜 친구 사귐에 더 어려워질까?”,

“아이들의 놀이문화는 왜 점점 사이버세계로 빠져드는 걸까?” 에 대한 의문이 항상 있었다.


아이-부모, 아이-교사는 선택 상황이 아니다. 매칭 혹은 랜덤으로 배정되는 것이다.

그러니 자율성이 아닌 강제성의 모습을 띄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아이들은 나와 저 사람이 맞는지를 맞춰가는 시간이 아이들에겐 강요처럼 느껴지고 신경질이 날 수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노력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무수한 노력을 해 줘야하는 것이다. 특히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는.

그 노력을 아이들이 몸으로 체득하고 나면 그것을 또 누군가에게 배풀고 또 나눌 수 있는 것을 배우게 된다.


내 시간에, 나랑 있을 땐 시무룩한 아이가 친구들과 있을 땐,

게임을 할 땐 다른사람처럼 낄낄 웃고 내가 보지 못한 표정을 보일 때.

집에 있으면 남의 자식 같은데, 집 밖은 남의 자식 같을 때.

우리는 나도 모르게 놀람을 표시하고 극단적으로 실망의 표시를 한다거나, 의아함을 드러낸다.

친구나 게임은 “내 선택” 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기에 노력이란 것을 한다. 책임을 지기 위해.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화가 나고 짜증을 내면서도 울고불고 답답해 하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방법으로 노력을 한다.

학교(고교평준화 및 중학교도 근거리배정 등)도 순위를 써서 무작위 배정, 입학 후 무작위 배정. 정보가 없는 상태의 담임교사 및 수업 친구들의 무작위 배정은 선택을 하지 않고 자란 아이들에겐 더욱 좌절로 다가온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좌절.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좌절. 따라서 노력은 필요 없다.

그런데 사실 이게 교육의 구조라기보단, 어린시절부터 길러진 태도와 습관이다.

어린시절 부모의 교육에는 아이들에게 선택을 주는게 아니라 선택을 가장한 강요로 학원 및 친구들을 사귀며 큰다.

아이들이 배워야 할 예의와 강요는 전혀 다른 것임을 우리는 인정해야한다.


라떼는, 놀이터나 문 밖에 나가 동네 또래들과(동년배) 온 동네를 쓸며 놀고,

어떠한 것들도 놀잇감이 되고, 깍뚜기 문화라 누구든 빼지 않고 껴줬다.

깍뚜기는 어떻게든 끼기 위해 열심히 했고, 깍뚜기가 되기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자신의 의지에 의해 선택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함이다.

그 노력은 살아가면서 돈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이자 배움이다.

선택을 줄여주는 것이 시간의 효용성이자 경제적이자, 스트레스를 줄인다고 도와주는 것이라 하지만 실제로 선택의 경험을 해보지 않은 아이들의 혼란은 어른이 되면서도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하고 크기도 한다.


그러나 돌아보면, 요즘 놀이터는 없다. 놀이터에 흙조차 없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조차 없는 이 아파트들의 현실에 아이들이 노는 것에 대한 최선의 노력도 없다.

빠른배송, 문 앞 배달 등은 누군가에게 클릭 한번으로 선택하는 것 뿐이고

그건 선택이 아니라 그냥 기호일 뿐이다.

또한 내 취향이 없이 발품이 없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나는 그저 개성을 잃은 체 자라곤 한다.


자사고 등은 아이들의 성과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탈율이 조금 더 나은 이유는

본인이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함을 더 먼저 학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결혼과 연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선택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함이 노력을 하지 않게 되는 구조,

그걸 가르치고 그걸 만들어주는 것이 좋은 가정교육일지, 사랑일지는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