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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May 28. 2019

[수선장] 나눠서 더 좋은, 고쳐서 더 소중한

화폐 없는 물물교환/수선 파티 '수선장'

감축과 절제의 미덕을 진정한 사회의 법칙으로 다시금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사회 전체에 해당하기도 하며 각자 개인의 삶의 방식에도 해당한다. 탈성장 경제론은 뭔가를 추가적으로 더 하자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포기’를 요구한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추가적으로 해야 하는 데에 익숙한 나머지 가장 간단한 원리를 간과하고 있다. 감축과 자기 절제라는 행위는 자본도 필요 없고 새로운 발명품도 필요치 않으며 정치적인 혁신도 요구되지 않는다는 매력이 있다. 아무 조건도 필요 없고 비용도 들지 않는다.  - '성장으로부터의 해방(니코페히)' 중에서

지난 4월, 'Minimize Impact'와 예술가 '한 톨'이 주최한 '성장으로부터의 해방' 읽기 독서모임에서 탈성장에 대한 담론을 독서모임에 오신 분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사각 박스 안의 문구는 독일의 대표적인 탈성장주의자 '니코 페히'의 저서 '성장으로부터의 해방'에서 나온 한 구절입니다.   


요즘 들어 '필환경',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가 어느 때보다 즐겨 회자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우리 삶에서 이 단어들을 대하는 방식과 '지속가능성'이라는 우산 아래 작동되는 소비주의의 메커니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기존 익숙하게 여기던 소비주의 방식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지속 가능한 상품'이 시장에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지요. 가령, 100% 페트병을 재활용하여 만든 점퍼나 운동화 같은 것 말입니다. 니코페히 교수는 '성장으로부터의 해방'에서 이러한 '지속가능성'을 표방한 상품의 출시는 단순히 상품을 추가한 것이거나, 지속가능성이란 유행어가 가진 상징성 외에는 크게 의미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되려 그가 강조한 것은 이러한 상품의 대체가 아닌 감축과 절제이라는 생활 방식을 통한 지속가능성의 실천이지요. 이러한 생활 방식의 실천에는 자기 구현과 성취감을 주는 자가 생산, 적게 구매하고 대신 이웃과 교환하거나 수리/수선하며 경제행위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실천을 통해 경제가 사회적 네트워크와 함께 맞물려 돌아갈 수 있음을 이야기했지요. 


추가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고도 있는 것을 교환하고 고쳐 쓰는 것. '수선장'은 이러한 탈성장 담론을 우리가 매일 입는 옷으로부터 고민하고 출발한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아래 질문에 대한 응답이기도 했지요. 


‘구제 옷(물건)을 사지 않고, 정기적으로 교환해 입는 모임을 만들면 어떨까?’
‘화폐 없는 마켓이 가능할까?’
‘중고품 가게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구멍이 났거나 해진 옷은 결국 버려야만 할까?’
‘개인이 도전할 수 있는 수준의 수선, 수리도
반드시 대행업(전문 수선가)을 거쳐야만 하는 것일까?’


2019년 오월 어느 일요일. 다행히 바람이 선선하고 미세먼지가 적어 쾌적했던 오후. 동화에서 튀어나올 듯한 비전화카페에서 '수선장'을 열게 됐습니다. 이 글은 화폐 없는 물물교환/수선 파티 '수선장'에 대한 기록입니다. 


'수선장' 소개 : https://brunch.co.kr/@minimize-impact/16

 

#0. 알려주세요

'수선장'으로 참가자분들이 잘 도착할 수 있게 안내합니다.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텀블러, 포크, 접시, 옷을 다시 담아갈 에코백 등을 가지고 올 것을 당부드렸어요. 놀랍게도 거의 모든 참가자분들이 약속을 지켜주셨답니다.


#1. 손님맞이 

이른 아침부터 '수선장' 준비에 분주히 움직이며, 손님맞이 준비에 들어갔어요.   

기부받은 옷들은 미리 깔아놓고, 문을 활짝 열어 참가자분들을 기다렸어요
테이블마다 올려진 바느질 도구들 (바느질을 따라 할 수 있는 이미지, 영상 튜토리얼도 함께 제공되었지요) 


#2. 화폐 없이 나무 코인을 사용해요

참가자분들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합니다. 누구나 가지고 온 아이템 개수마다 하나의 나무 코인을 교환받아요. 나무 코인 1개는 다른 물건 1개와 교환할 수 있어요. 

내가 가지고 온 1개의 아이템 당, 1개의 나무 코인을 부여받아요. 이 코인으로 다른 1개의 아이템과 교환합니다
하나, 둘씩 도착하는 참가자분들. 갖고 온 아이템 개수에 맞게 코인을 교환해요
참가자분들이 가져온 아이템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나무 코인 100개가 똑! 떨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급하게 주변에서 주섬주섬 주은 나뭇가지(?)들도 코인을 대체했어요 (선사시대?)


#3. 아이템은 스스로 배치해요

코인을 받은 후, 미리 설치된 빨랫줄과 돗자리에 가지고 온 아이템들을 스스로 배치합니다.

가져온 아이템은 곱게 개어 스스로 배치합니다
저마다 아이템을 배치합니다

#4. 잠시 이야기 나눠요

'수선장'을 시작하기 앞서, 티타임을 가졌어요. 준비된 맛있는 다과를 먹으며 담소를 나눕니다.'수선장'은 어떻게 출발하게 되었는지, '수선장'을 시작하기 전 어떤 스터디를 거쳤는지 이야기 나누었지요. 그리고 더없이 소중한 참가자분들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함께 공유했습니다. 

'티셔츠의 생애주기'를 보여주는 영상을 나눠봤어요

'티셔츠 한 장의 라이프사이클' : https://brunch.co.kr/@minimize-impact/17

유럽여행을 갔을 때, 할머니 때부터 내려오던 드레스를 고쳐 입는 사람들의 모습이 부러웠다는 참가자분
늘 즐겨 입던 셔츠가 구멍이 났는데, 차마 버리지 못하고 1년 간 보관하고 있다가 오늘 고치려고 가져왔다는 분
우렁 총각처럼 나타나 '수선장' 세팅을 도와준 초등학교 4학년 범준이
모로가 준비해준 정성스러운 다과

#5. 본격적인 물물교환과 수선을 시작해요

다과 타임 동안 서로 인사를 나눴다면 이제 본격적인 물물교환을 시작합니다. 접수 때 교환받은 나무 코인을 개수만큼 다른 아이템과 교환합니다. 물물교환이지만 심사숙고하여 정말 내게 필요한 물건인지 생각하고 고르는 게 중요해요.   

물물교환이 어느 정도 되었으면, 실내로 돌아와 손바느질 킷을 가지고 수선을 시작합니다. 저마다 구멍 나거나 찢어진 옷을 가지고 오셨어요. 그렇지 않다면 평범한 옷에 수를 놓아 자신만의 개성을 선보입니다. 바느질하는 손들. 아름답지 않나요? 

바느질 튜토리얼을 보며 따라 해 봐요
서로 알려주고
서로 도와주기도 하면서요
에코백에 수놓고, 다른 참가자분이 가지고 온 패치를 붙이고 간 참가자분. 천안에서부터 오셨대요.
참가자분들이 어느 정도 돌아가시고 난 뒤, 남은 분들끼리 함께 사진을 찍었어요

'나눠서 더 좋은, 고쳐서 더 소중한'이라는 슬로건이 무색하지 않은 날이었지요. 나에겐 쓸모를 다한 물건이 새 주인을 찾아갔을 때의 뿌듯함 그리고 서로 내 것을 입어주어 고맙다 하시는 모습. 마음속 품을 참 넉넉하게 합니다. 바느질이 수다의 좋은 매개라는 것도 알게 됐지요. 지금처럼 서로 가진 것을 충분히 나눠 쓰고 고쳐 쓰는 일들이 구석구석 퍼져나가길 바라며 글을 닫습니다. 


수선장과 함께 한 사람들

주최/주관: Minimize Impact X 한 톨

지원: (재)숲과나눔

협력: 비전화카페(모로, 로미, 앵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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