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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Jun 23. 2022

원숭이두창에 관한 아토피안의 잡설

코로나와 거리두기가 한창이던 선선한 2020년 경 어느 저녁

암 투병 경험이 있는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야, 코로나가 호흡기가 아니라 피부로 증상이 나오는 감염병이면 나 진짜 무서웠을 거 같아. 그런 거 생각하면 평소에 호흡기 쪽이 약한 사람들은 지금 코로나가 얼마나 무서울까?" 


친구는 투병 당시 알게 된 폐암 말기의 한 남자분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분은 젊을 때부터 부모님 따라서 도배나 장판일 도와주는 일을 많이 했대. 일하면서 먼지도 많이 마시게 되고 하잖아, 그게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그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 너 이야기 들으니까 그분한테는 코로나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무서웠을 것 같네"


문득 일 년은 족히 더 지난 이 대화를 오늘 떠올리게 된 건, 아침 뉴스에서 본 국내 첫 원숭이두창 확진자 소식 때문이다. 아직 원숭이두창의 감염 경로, 전파 가능성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은 많지만 피부로 발적이 나타나는 감염병이라는 자체가 아토피안인 나에게는 머리카락이 쭈뼛 솟을 만큼 소름 돋는다.


아직 원숭이두창이 국내에 상륙하기 전, '코로나 다음, 이게 온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단 뉴스들이 유럽 이곳저곳에서 감염자 확산 소식을 전했다. 어느 유투브에서는 이런 댓글이 달려 있었다. 


'그만 좀 와라, 나 아토피로도 충분히 힘들다 ㅜ'


사실 나는 아토피 때문에 나타나는 발적보다, 아토피 병변 부위로 세균이 침투해 생기는 2차 감염이 몇 배는 더 두렵다. 20대에 뉴질랜드를 여행하다가 아토피 병변을 잘못 관리하는 바람에 혹독한 2차 감염 신고식을 치른 적이 있다. 그날따라 아토피로 빨갛게 부풀어 오른뺨의 작은 부위가 뜨겁고 딱딱하게 느껴졌고 특이하게도 맥박이 뛰는 것처럼 환부가 두근두근 댔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얼굴 반쪽에 수포가 번져 버렸다. 나는 그때 그게 2차 감염인 지도 몰랐고 아토피의 한 증상이라고만 생각했다(2차 감염은 아토피와는 전혀 다른 증상이다. 비록 아토피 때문에 2차 감염이 올 확률은 높아도).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니 얼굴 거의 전체에 병변이 퍼져 있었다.  염증이 도지니 몸살에 걸린 것처럼 아팠고 차마 거울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그 모습도 흉측했다. 그때 당시 아무도 없는 어둑한 호스텔 방 안에서 혼자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아토피 때문에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 이후부터는 여행 가는 게 싫어졌다. 자신이 없어졌다고 하는 게 더 나은 표현일 수도 있겠다.


물어물어 병원을 찾아갔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병원에서 접수를 한다는 건 당시에 너무도 두려운 일이었다. 병원비가 얼마가 나올지 가늠이 되지도 않았다. 다행히 증상에 대한 설명은 영어로 따로 필요 없었다. 그냥 보이니까. 당시 다정해 보이던 여의사가 진료를 해주었는데, 인턴 의사에게 내 증상을 교육 차원에서 설명해도 괜찮겠냐는 의사를 묻어봤던 기억이 난다. 나는 괜찮다고 했고 그 여의사는 인턴에게 이거저것 내 증상을 설명해주었다. 물론 나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항생제인지 항바이러스인지를 처방받았다. 주사를 맞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링거을 맞았던가? 여하튼 감염성이 있는 질환이니,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꽤나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 나는 보험도 아무런 의료혜택도 없는 여행자였으니까. 의료약자의 설움이 뭔지 뼈저리게 실감되던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로 멀리 여행을 가야 할 때가 오면 꼭 항바이러스 연고를 챙긴다. 2차 감염 이후로는 면역력이 조금만 떨어져도 얼굴에 수포가 올라오곤 했기 때문이다. 한번 몸에 들어온 바이러스는 몸이 건강할 때는 조용히 잠복해 있다가,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떨어지면 툭 튀어나오곤 했다. 


어찌어찌 나름 관리하고 살아가던 통에 또 원숭이두창이라는 게 출몰했단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형태의 감염병이 유행하고 있는 거다. 피부로 나타나는 병이라니... 그것도 물집이라니. 백신이 있고, 아주 밀접한 접촉이 없다면 감염되지는 않는단다. 하지만 환부가 닿는 것으로도 옮을 수 있고 구강에 생긴 물집이 터지면 비말로도 옮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아주 밀접한 접촉'이라... 그래서 더 많은 오해를 살 수 있는 감염병이다. 국내 첫 발병 소식 이후로, 벌써부터 낙인찍기나 혐오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약한 겉껍질을 타고난 게 실제적인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니 실제 원숭이두창에 걸리지는 않았더라도, 수포나 물집이 생기면 앞으로는 더 행동반경이 줄어들 것 같다. 그것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간에 말이다. 오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알아서 몸을 사리기도 할 것이다. 앞으로 기후위기가 심해지면 더 센 전염병이 올 일만 남았다는데, 만성질환자일수록 재난에는 취약하다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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