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면서부터 또래와 다른 아이, 특수 아동, 느린 학습자 그리고 몸과 마음에 장애를 가진 아이들.
이 중 하나의 수식어가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 설명이 필요한 친구들.
나는 이 친구들을 매일 만나며 말을 걸어주는 언어치료사이다.
몇 해 전만에도 언어치료? 뭐 하는 거야? 언어를 어떻게 치료해? 하고 사람들이 물었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며 발달 센터, 병원, 복지관 등 수업 대기에만도 최소 몇 개월이 걸린다.
수요가 늘어가니 나는 기뻐해야 할까?
마스크로 인한 발음 문제, 얼굴 표정을 잃을 수 없어 생기는 단순 지연부터 재활 기관이 휴업하여 치료 시기를 놓친 친구들까지.
이제는 정말 언어치료가 보편화되었다. "아 내 친구 아들도(딸도) 언어 치료하고 있다던데.."...
뭔가 굉장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치료사 입장에서 이야기해본다. 나는 프리랜서. 보험이나 퇴직금 없고 대출도 힘든 일용직 노동자일 뿐이다.
수업 준비를 다 해서 센터에서 아동을 기다려도 코로나 관련 결석, 개인 사정으로 수업에 오지 못하면 그 시간은 휴식 시간이 되어버린다. 내 아이들은 돈을 주고 맡기고 나는 무급으로 보내는 시간.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겨울, 갑자기 많아진 결석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다음 달 월급을 보면 또 멘탈이 흔들렸다.
자리를 비우면 바로 대체 가능한 계약직, 쉬는 만큼 벌 수 없는 것이 입장.
그래서? 아이들을 돈으로만 보냐고? - 아니요.
인간은 언제나 적응하는 법.
아니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 글을 쓰게 되었다.
무슨 자신감?
어려운 상황을 반복하며 한 가지.. 알게 된 진실.
재 작년 봄의 어느 날, 내 아이들을 기다리며 학원가 카페 창가에 앉아 머릿속 가득 신세한탄을 하고 있었다.
늦은 오후, 투명한 유리에서 쏟아지는 봄의 햇살을 받으며 내 눈 속에 들어온 것은. 따사로운 빛이 아니라 수많은..
모두가 나와 비슷한 X세대쯤 일 것 같았다. 그 시절 공부도 잘하고 회사도 잘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픽업 전문가들이 되었고 회사에서 학원 문 앞 출근으로, 바뀐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다음 날 센터에 출근 후 수업을 기다리며.. 대기실에 가 보았다. 평소와 달리 아이들이 아니라..
수 많은 엄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업에 늦을까 봐 뛰어온 엄마, 아이가 배고플까 봐 간식을 입에 넣어주는 엄마, 뛰어다니는 아이에게 화도 냈다가 달래기도 하는 엄마, 데스크에서 영수증 챙기는 엄마...
재활 라이딩,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끝이 안 보이는 아이의 발달과의 싸움에서는 강한 멘탈과 체력을 준비해야 한다. 만만치 않은 치료비는 덤이다.
"저를 만나러, 수업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온 사방이 바이러스와의 전쟁. 누군가 나에게 아이를 부탁하려고 달려왔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졌다. 다시 생각해보면, 치료사를 믿고 여기까지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제시간에 도착한 것은 엄마이다.
내 머릿속에 가득해야 할 것은 오늘 오지 못한 친구가 아니라 이렇게 와 준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끼게 되었다.
나로 인해 한 가지라도 배워 갈 수 있도록, 일도 줄이며 에너지도 충전하고 수업 방향도 바꾸어보았다.
특히 지난 일 년, 정말 올인하였다.
"힘들어도 잘 온 것 같아요"
"선생님 덕분에 우리 아이가 많이 성장했어요"
지난 연말을 보내며 엄마의 한 마디가 나를 참 기쁘게 했다. 칭찬으로 크는 어른. 치료사로 기록을 남기고 싶은 시기가 온 것 같다. 발달 관련 나의 지식을, 내가 본 아이의 모습을 한 마디라도 더 전하고 더 공유하고 싶은데 10분의 상담시간이 너무 짧다. 아이를 수업에 보낸 후, 이 공간에 잠시 시간을 내어 언어치료사의 길고긴 수다를 들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