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10년 차. 연 매출 1조 5천억의 중견기업에서 실적은 항상 상위 10%에 위치했다. 그런데 여전히 고객 앞에서 말문이 막힌다. “매출이 안 좋아서요”라는 거절을 들을 때마다 아직도 심장이 쿵 떨어진다.
사람들은 묻는다. 제약·의료기기 영업이 그렇게 힘드냐고. 3대 기피 영업 아니냐고. 맞다. 이 바닥은 병원 원장님들의 표정 하나에 월급이 흔들리고, 0.1% 수수료 차이에 동료가 적이 되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이 싫지 않다. 아니, 정확히는 이 일을 통해 배운 것들이 아깝다.
이 책은 제약·의료기기 영업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통해, 업종을 불문하고 모든 B2B 영업인, 나아가 모든 직장인이 겪는 보편적인 딜레마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병원 원장님을 설득하는 논리는 까다로운 대기업의 구매 담당자를 상대하는 논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쓴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내는 일이 두렵다. 회사와 업계 안팎에서의 내 흔적이 너무 선명해질까 봐, 나라는 사람이 글의 비용을 치르게 될까 봐. 그래서 이름은 낮추고, 장면은 익명화하고, 개인과 거래처를 식별할 수 있는 디테일은 최대한 덜어냈다.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현장의 언어들이다. 특히 경쟁사와의 협업·가격 비교 같은 민감한 장면은 고객 동의와 동석 커뮤니케이션, 각 사의 독립적 가격 제안, 기록 보관 원칙 아래에서만 다뤘다.
이 책엔 박카스와 김영모 제과점 빵, 종소세 시즌에 현금흐름을 읽는 법, 경쟁사와 손잡아 매출을 올린 장면 등 다양한 상황이 나온다. 진정성이 습관이 되면 성공한다고 믿었다가, 그 믿음이 독으로 돌아온 상황도 작성했다. 처음엔 무지를 지혜라 포장했고, 데이터 앞에서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도, 때로는 뒤통수를 맞은 순간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한 문장만 남기는 규칙, ‘모든 동맹은 임시다’라는 깨달음.
왜 이렇게 모순적으로 보이게 썼느냐고? 영업 10년, 내가 배운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 ‘영업에 정답은 없다. 다만 그 순간, 그 고객에겐 정답이 있다.’
몇 가지 당부가 있다.
• 첫째, 이 책의 모든 이름과 장소는 바꿨다. 영웅담과 실패담을 기록하되, 누군가를 소비하지 않겠다.
• 둘째, 업과 상품이 달라도 ‘왜 이 선택을 했는지’의 기준은 공유될 수 있다고 믿는다.
• 셋째, 가장 중요한 부탁이다. 이 책을 읽다가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바로 그게 당신의 정답이다. 망설이지 말고 그 길로 가라. 내 10년이 당신의 1년을 앞서는 건 아니다. 내가 넘어진 곳에서 당신은 뛰어넘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무슨 말을 먼저 꺼낼지, 언제 입을 다물지, 가격 대신 무엇을 보여줄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나의 답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끝까지 솔직하다.
마지막으로 고백 하나. 사실 나도 영업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게 많다. 내일 만날 고객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매출이 안 좋아서요”라는 말 뒤에 숨은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그래서 오늘도 박카스를 사서 주머니에 넣는다. 적어도 빈손은 아니니까. 영업의 정답은 여전히 모르지만, 오늘 너를 살리는 한 문장과 한 질문은 분명히 있다.
자, 이제 시작이다.
첫 장을 넘기면 삐뚤어진 넥타이를 맨 신입이 있다. 그가 어떻게 10년을 버텼는지, 그 생존기를 들려주겠다. 그래서 첫 장은, 운처럼 찾아온 ‘풋풋한 진정성’의 순간으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