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영업사원, 내 아들 같더라고.”
이 한 마디가 수억 원의 계약을 만들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실화다.
영업. 사람의 마음을 얻는 행위다. 상대의 지갑을 열게 하는 일이다. 신뢰 위에선 부러진 볼펜도 사게 만드는 기술이기도 하다.
다양한 이야기와 비법이 있지만, 내가 느낀 영업의 결론은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마음을 빼앗기는 지점이 다르고, 지갑 속 돈의 액수가 다르고, 믿음이 생기는 시간이 다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실적이 부족한 봄이었다. 목표를 맞추기 위해선 큰 계약이 필요했다. 모든 거래처를 돌아도 성과가 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마지막 남은 한 곳, 다 쓰러져가는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억 원대의 장비를 판매하려 했다. 손수 만든 브로슈어를 펼쳤다. 볼펜으로 동그라미 표시를 하며 침을 튀겼다. 손이 떨렸다.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아마도 내 침 때문인지 고객의 얼굴이 굳어져 갔다. 숨 쉴 틈 없이 쏟아낸 내 설명이 끝나고 입술이 닫혔을 때,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무표정한 고객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렇게 빠르게 설명하면, 누가 사겠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귀까지 빨개지는 게 느껴졌다.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사실 병원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기대도 안 했지만, 그 말을 들으니 괜히 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역시 안 되는구나. 이번 달도 망했네.’ 자조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초침 소리가 방 안의 공기를 잘랐다. 나는 눈만 들어 올려 반응을 살폈다.
“계약하면 장비는 언제까지 가져다주냐?”
‘뭔 소리지?’ 속으로 되뇌며 순간적으로 미간이 찡그려졌다. 내 표정이 얼마나 황당했는지, 고객은 피식 웃으며 브로슈어를 딱밤 치듯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다시 말했다.
“계약하자고.”
심장이 쿵 떨어졌다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손에 쥔 볼펜이 떨어질 뻔했다. “정… 정말이세요?” 더듬거리는 내 목소리에 고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믿기지 않았다. 꿈인가 싶어 허벅지를 꼬집어봤다.
당시엔 이해가 안 됐다. 물론 그 당시 고객이 필요한 물건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몇 번 보지 않은 영업사원이다. 심지어 상담 스킬도 없어 숨 가쁘게 떠들었을 뿐이었다. 무슨 신뢰로 구매했는지 납득이 안 됐다.
훗날 고객과 친해지고 나서, 술 한잔 기울이며 왜 그때 그 비싼 장비를 샀는지 물어봤다. 그는 잔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이렇게 말했다.
“삐뚤어진 넥타이를 매고, 나를 보는 눈빛이 내 아들 같더라고. 설명은 형편없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영업은 백 마디 말보단 잠깐의 진정성이 사람을 매료시킨다. 그날의 계약은 운 같았지만, 나는 그 후로 운보다 진정성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운은 우연이었고, 진정성은 습관이 되었다. 이때의 진정성은 풋풋함이었다. 하지만 풋풋함만으로는 부족했다—현장이 ‘무지’를 교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