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네모 치대 마을 에세이
치과병원의 각 과들을 일주일에 하나씩 돌아보며 관찰하는 폴리클 첫 주, 외래* 옵저** 중 의사 선생님께서 환자분께 “아프면 손 드세요.”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관찰하던 내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저도 손 들어도 되나요?”였다.
병원생활은 아프다.
본과 3학년이 된 이후 아침 8시에 등교해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각 진료과목의 실습을 진행하며, 실습이 끝난 후에는 폴리클을 도는 생활을 하고 있다. 6시에 끝이 나면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가지만 오후 실습을 덜 끝낸 날에는 플라스터실이나 기공실에 가서 못다 한 실습을 끝낸다. 주로 틀니나 교정 유지장치를 만드는 작업이다. 느지막이 실습을 끝낸 날은 9시에 집에 간다. 집에서 간단히 밥을 먹고 체력 유지를 위해 헬스장에 다녀온 후 씻고 옷을 갈아입으면 곧 11시 반이 된다. 폴리클 과제를 시작한다. 세미나를 위한 피피티 제작, 방사선 사진 트레이싱, 레포트 작성… 그날 그날 과제가 다르다. 다음날 퀴즈 준비도 잊지 않아야 한다. 새벽 1시쯤 과제와 퀴즈 준비가 마무리된다. 침대에 누워 내일 폴리클을 위한 PK노트를 읽고 준비물을 확인한다. 1시 반쯤 잠에 들고 다음날 아침 7시에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한다.
폴리클은 학생의사인 원내생이 되기 전 모든 과를 일주일 간 체험해 보는 과정이다. 원내생이 되면 직접 환자를 치료할 수 있게 되며 수술 보조에도 투입된다. 따라서 폴리클은 임상에 들어가기 직전의 과정이니, 임상 전단계 실습이라고도 부른다. 처음으로 레지던트 선생님들과 직접 대화해 보고, 병원에 들어가 수술을 관찰할 수 있어 책임감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단계이다. 의과대학이나 일부 치과대학에서는 폴리클 시작 전 병원 진입을 기념하여 ‘화이트 코트 세레머니(White coat ceremony)’를 하기도 한다. 이론 공부를 주로 했던 본과 1, 2학년 과정과 다르게 3학년부터는 진정한 병원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폴리클을 진행할 때에는 학생용 가운 안에 정장을 갖춰 입고 구두를 신어 예의를 갖추며, 최대한 진료실 내에서 방해가 되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치과는 의과만큼 생명에 직결된 치료는 거의 없다지만, 치아에 대한 시술은 비가역적이므로 모든 과정에서 관찰자인 우리가 진료에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특히 첫 주의 우리는 바짝 긴장해 있었다. 우리는 레지던트 선생님께서 세미나실에 늦게 오시는 날이면 2분에 한 번씩 문 밖을 내다보았다.
조 별로 다른 과를 도는 데, 우리 조의 첫 턴은 교정과였다. 교정과는 의과로 치면 피부과, 성형외과처럼 공부를 잘해야 갈 수 있다는 내부적 인식이 있는 과이다. 실제로 다른 과들처럼 입 속에 들어갈 것처럼 수술을 해야 하는 과가 아니라 비교적 편한 자세로 교정 장치를 조정하는 과이기 때문에 몸이 편한 과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또한 치아를 소수점 단위 밀리미터로 움직여 치아의 교합을 맞추는 과이기에 모든 과정에서 정확하고 깔끔한 결과물을 요구하는 과이기도 하다.
아직 나는 병원에 남아 수련을 할지 말지 확신은 없다. 하지만 교정과는 성적이 높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기에 고려하지 않고 있고, 또 교정장치의 와이어를 접는 데는 영 소질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관찰자 입장의 편한 마음으로 교정과 폴리클에 임할 수 있었다. 치아별로 다르게 생긴 브라켓들을 하나하나 인공치아에 붙여보고 교정용 와이어도 접어보면서 생각보다 폴리클이 재미있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론으로만 배우던 것을 실제로 보고 만지니 내가 병원에 들어온 것이 실감이 났다.
교정과 폴리클 마지막 날, 진료실에 들던 햇살이 우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때 어깨에 앉은 온기에 1, 2학년 생활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새벽 5시까지 동기들과 강의실에서 칠판에 턱관절을 그려가며 해부학을 공부하던 날, 카데바***를 하며 배운 구조물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날, 모두 똑같아 보이는 병리학 사진들의 이름을 외우던 날, 처음 아말감 충전을 위한 와동 형성****을 했던 날… 그 모든 날들이 모여 병원의 생리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십대 후반, 늦은 나이에 치과대학에 입학한 것이 잘 한 선택일지 걱정이 많았다. 문과생이었기에 더욱 돌아갈 길은 없다는 생각으로 입시에 열심히 매진해 운이 좋게도 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취업해 자리를 잡아가는 친구들을 보며 여전히 부모님의 돈을 빌려 쓰고 있는 내가 과연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늘 함께했다. 특히 본과1학년 때에는 학과 공부가 임상과 거리가 지나치게 먼 탓에 치과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게 느껴졌다. 평생 타인의 입 속만 보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미래가 암담하게 여겨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분야든, 일정한 노력과 일정한 시간을 쏟으면 애정이 생겨나는 것 같다. 점점 좋은 치과의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간다. 사람마다 다른 인생의 발자취가 입 속에 남아있어 읽어내는 것도 재미있고, 내가 공부하는 것이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도 느끼게 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에서 내가 갈림길에서 선택한 길이 모든 변화를 만들었다고 말하듯, 치과대학에 온 이후 문과생으로서 내가 갈 수 있었던 미래들은 모두 아쉽지만 ‘가지 않은 길’이 되었고 나는 점점 치과의사로서의 미래로 내 자신과 내 주변 환경이 변해가고 있다. 물론 인문학도로서의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최대한 독서하고 쓰려 노력하고 있지만 물리적 시간의 한계가 아쉽게 느껴진다.
2년 간 문과 공부와 정반대 종류의 공부를 하면서 내가 많이 변화한 것이 느껴진다. 문과 교수님들은 대부분 내 창의적인 생각을 적는 것을 중시하셨다. 그래서 교수님의 생각을 답안지에 그대로 쓰면 감점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치과대학은 완전히 반대다.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고, 답안을 정해진 정답과 완벽히 일치하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기성금속관 크라운의 장점을 쓰라고 하면, 교과서에 있던 다섯 가지 장점을 빠짐 없이 모두 써야한다.
점점 ‘네모’가 되어가고 있다. 노래 ‘네모의 꿈’의 가사처럼,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 네모난 화면을 들여다 본다. 단체생활 3년 차에 들어서보니 네모에서 벗어나는 것이 점점 두려워진다. 모두가 “남들 하는 대로만 해”라고 말하는 곳에서, 나만 다른 길을 가려는 사소한 시도조차 어렵다. 실습 진행이 남들보다 늦어지면, 과제나 답안을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작성하면, 빅브라더의 눈이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다. 등에서 식은 땀이 나고 밤에는 악몽이 되어 내 꿈 속을 휘젓는다.
어쩌면 폴리클 과정도 네모에 나를 넣어가는 과정이다. 병원은 이렇게 돌아가는 곳이니, 학생은 자신의 태도와 생활 습관을 모두 이 틀 안에 욱여 넣어야 한다고 배워가는 셈이다. 큰 틀에서 보면, 치과의사라는 전문직이 되어가는 과정은 소수점 단위 밀리미터의 오차조차도 배운대로, 교과서와 똑같이 결과물을 내야함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그것이 치과의사 사회의 사회적 약속이며 원칙이다. 내 환자가 다른 병원에 가더라도 해당 병원의 의사가 내 술식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거창한 이름을 달고 연재를 시작한 ‘학생의사학 개론’의 시작이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벌써 이 폐쇄적 문화에 넌더리가 날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그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 바로 학생의사를 이해하는 것의 시작이다. 치과대학 입학 후 누구나 느낄 법한 감정이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다. 오차를 최소화하고 정확성을 기하는 것, 그것이 전문직이라고 불리는 직업의 특징인 것 같다. 특히 치아는 매우 작고 예민하며, 한 번 깎은 치아는 되살릴 수 없기에 치과의사의 경우 더욱 네모진 환경이 형성되는 것 같다.
앞으로 내가 쓸 글은 모두 이렇듯 각지고 네모난 치대 마을에 사는 내가 겪은 일들이다. 치대 ‘마을’이라고 모두가 부르는 이유는 어느 치과대학이든 학교 주변에 대부분의 재학생들이 자취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가 일찍 시작하고 늦게 끝나는 시간을 감안해 모두가 학교 근처에 살다보니 하나의 마을이 형성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방과후에도 치과대학 동기들만 주로 만나게 되며, 동아리도 주로 치대 내부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다보니 4년 간 치대생 이외의 사람들과 만날 일이 많지 않다고 보면 된다. 또 하나의 사회인 치대 마을에서 이십대 후반 학생 의사가 겪는 일상을 최대한 성실히 연재해보도록 하겠다.
*대학병원에서의 진료이다.
**의사의 진료를 학생이 관찰하는 과정이다. Observation의 줄임말이다.
***시신 해부 실습을 의미한다.
****인레이 재료를 올리기 전 치아 우식 부위를 삭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