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 (feat. 사랑니 발치)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면 일주일 내내 가슴에 품고 사는 편이다. 이번주의 문장은 부제로도 올린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였다. 어느 시집의 제목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생애를 보내면서, 행복에 겨워 운 적도 있고 슬픔에 겨워 운 적도 있다. 행복의 눈물과 슬픔의 눈물, 두 가지 눈물의 공통점은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사실 전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그와의 이별 뒤에는 울지 않았다. 만나면서 이미 많이 울었었다. 오히려 헤어진 후에는 더 이상 눈물 흘릴 사랑이 흔적도 남지 않게 되었나 보다. 이별과 동시에 지독하게 바쁜 폴리클 생활이 시작되었기에 사실 감상에 빠질 겨를이 없었던 것도 맞다.
사랑이 떠나간 자리가 무색하게 벌써 3월이 지나가고 이젠 T. S. 엘리엇이 잔인한 달이라고 명명한 4월이 찾아온다. 왜 4월이 그에게 잔인한 달이었던 걸까? 시 내용을 살펴보면, 차가운 겨울 이후 4월, 즉 봄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현대 한국사회에 비추어보면 10cm의 ‘봄이 좋냐?’와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될 것 같다. 내 마음은 사랑의 상실로 겨울처럼 괴로운데 주변에서 봄과 함께 사랑이 싹트는 모습들이 나를 괴롭게 한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보면 사람들은 생리현상이든 계절이든 모든 것을 사랑과 연결 지어 생각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랑니도 그렇다. 사랑니는 왜 사랑니일까? 사랑을 하면 자라는 이라는 뜻일까? 어쩌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랑니에게 사랑니라는 이름이 붙게 된 걸까?
사랑니라는 이름은, 사랑을 시작할 나이인 스무 살쯤에 나는 이라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나도 첫 사랑니를 뺐을 때, 대학교 1학년 1학기 첫사랑의 아픔을 겪고 있었다. 교양 수업 시간의 똑똑하고 멋진 사상을 가지고 있는 다른 과 선배였는데 우물쭈물 말도 제대로 걸지 못하고 한 학기가 마무리되었고, 그에 대한 동경은 한 철 벚꽃처럼 져버렸다. 누구나 겪는 과정인 첫사랑의 고통에 사랑니를 빼는 고통을 비유한 것이 참 귀엽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사랑니라는 예쁜 이름과 달리 사랑니는 참 괴팍한 녀석인데 특히 제 자리가 없어도 뿌리를 야무지게 휘어서 어떻게든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자리에 자라난 사랑니를 발치하는 대표적인 과가 바로 이번주에 폴리클을 돌았던 구강외과이다.
구강외과가 치과의 꽃이라는 말도 있듯이 구강외과는 치과학문 중 가장 대범하다. 양악수술, 상악동거상술 등 단순히 입 안만 보는 것이 아니라 얼굴 전체를 다루는 곳이다. 다리에서 뼈를 하나 빼서 턱에 이식하기도 하고 부러진 턱뼈를 이어 붙이기도 하는 이곳은 어찌 보면 의과와 굉장히 비슷하다. 그래서 이번 외래를 돌 때 더 가슴 설렜던 것 같다. 교정과 턴을 돌 때는 사실 교정은 미용목적인 경우가 많고 대다수 환자들이 교정을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치열을 가지고 있기에, 분위기가 여유롭고 환자분들의 연령대도 매우 어리고 다소 지루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외과의 환자들은 대부분 심각한 구강질환이나 안면골절 등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는 병을 안고 온 사람들이었다. 눈에 두려움이 서려있었고 이미 큰 고통 속에 계셔 더 이상 아프다고 말할 힘도 없이 체념한 상태인 분들이 많았다. 보호자분들은 의사 선생님들에게 잘 부탁드린다는 당부의 말씀을 간곡하게 얹었다. 음악이 흐르고 약간의 웃음기가 있던 교정과 외래와는 다르게 적막과 긴장감이 감도는 외과 외래의 분위기였다.
원래는 치과병원이 아닌 종합병원에도 구강외과가 있기에 병원 옵저도 가야 하는데 이번주 병원 옵저가 예정된 날 학교행사로 인해 병원을 가지 못해 아쉬웠다. 큰 케이스들은 종합병원에서 진행된다고 한다. 치과병원 외래 옵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당뇨 환자이다. 사실 당뇨는 노년층이 으레 걸리는 질환이기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당뇨라고 하면 큰 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당뇨 환자분을 접해보니 당뇨로 인해 치주염이 심해져 치아 28개를 모두 발치하고 임플란트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잇몸이 너무 안 좋아 치아가 잇몸에 박혀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잇몸에 얹어져 있는 느낌이라고 보면 되는 것이다. 충격이었던 것은 치아를 알지네이트로 본뜨다가 어금니가 두 개나 빠졌다. 인상을 뜨다 치아에 발치력이 가해질 만큼 잇몸의 염증이 심각했던 것이다. 어차피 발치할 치아였긴 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로 사람의 잇몸이 약할 수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고, 이때까지 씹기만 해도 엄청난 고통이셨을 텐데 그것을 감내해 온 환자분이 속으로 흘리셨을 눈물이 감히 예상가지도 못했다. 발치하고 염증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골이식을 하고 임플란트 할 때까지 틀니를 끼고 생활하셔야 하는 불편함을 감히 상상할 수 있을까? 나였다면 나 자신의 노화에 대한 실감, 치아 관리를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당뇨를 잘 관리하지 못한 아쉬움이 교차해 큰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당뇨는 대한민국 인구의 사망 요인 중 6위이다. 당뇨와 같은 전신질환이 치과 영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 되는 옵저였다. 치과의사란 직업은 공부가 참 중요한 것 같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나라면 부모님 치아가 아플 때 내가 아니라 우리 과 1등에게 맡기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우리 과 1등보다 더 모르기 때문에 이런저런 질환을 초기에 잡을 수 있는 것을 놓칠까 봐 두렵다. 그래서 더욱 내가 하는 일에 당당하기 위해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내 부모님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신감 갖고 치료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과 술기는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본과 3학년이니까 졸업까지 시간이 좀 남았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남은 시간 더 공부에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옵저 뿐만 아니라 동기와 상호 마취실습도 하고, 치아모형에 발치실습도 하고, 상처를 재현한 실리콘패드 위에 봉합실습도 하였다. 사실 외과는 전형적인 치과과목이 아니기에 늘 외과는 나와 상관없는 과라고 생각을 하곤 했다. 나는 수련을 할지 안할지는 모르겠지만 하게 된다면 보철과나 치주과 같이 일반적인 치과 과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 의대를 가고 싶긴 했지만 그래도 수술과에는 큰 관심이 없었기에, 그리고 외과는 남자 수련의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어서 굳이 성별로 불이익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어서 외과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폴리클을 통해 외과를 다시 보게 되었다. 1-2mm 세심함을 다투는 다른 과목들과 달리 좀 더 대범한 수술을 행하는 과라 답답함이 덜했고, 무엇보다 술식이 환자의 안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아서 보람이 클 것 같다. 하지만 나중에 페이닥터나 개원가에 가게 된다면 사실상 외과보다는 다른 과목들이 더 쓸모가 클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고민이 된다. 어쨌든 외과 폴리클을 통해 외과라는 과목이 꽤나 재밌다는 것을 알게 되어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동아리 모임 때 구강외과 전공의이신 ob 선배님께 한 번 구강외과 전문의의 개원에 대해 여쭤봐야겠다. 요즘 사랑니 발치 전문으로 해서 3분 카레처럼 3분 만에 사랑니를 뽑는 치과들도 있다고 하던데 발치도 치과치료의 중요한 술식인만큼 외과 수련을 해서 개원가에서도 분명 쓸모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긴 한다.
외과는 외과만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외과 덕후(?)들이 많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했다는 첫 문단에서의 문장과 같이, 외과를 사랑한다면 외과도 나를 울게 할까? 외과에 간다면 힘들게 뻔한 것이 꼭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본성과 같은 느낌도 들고, 영화 <아가씨>에 나온 구절,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처럼 외과라는 곳은 좋아하지만 나를 너무나 힘들게 할 것 같은 곳이다. 하지만 외과는 확실히 낭만이 있다. 예를 들면 대부분 보존과를 가는 이유가 페이시장에서 수요가 높아서 혹은 편해서와 같은 이유이다. 하지만 외과 같은 경우에는 외과 전공하신 분들 말씀을 들어보면 환자의 안녕에 대한 사명감 같은 것들이 있다. 물론 어느 과나 환자의 안녕을 중시하지만, 외과는 다른 과에 비해 더 위험하고 중요한 수술들을 하기 때문에 더 크고 보람 있는 일에 대한 갈망이 있는 사람들이 지원한다는 느낌이었다. 의대를 가고 싶었기도 하고 해부실습을 하면서 매쓰를 들었을 때 느꼈던 사명감에 대해 떠올려보자면 나도 외과에 관심이 아주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직 종합병원 외과 턴을 안 돌아서 나중에 보강일이 잡힐 것 같은데, 빨리 돌고 외과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 외과에 대해 더 알아가고 즐거웠던 이번주! 다음 주는 구강내과다. 내과 턴도 힘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