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휴직은 다른 기회를 찾아보는 데에 최적의 시기였다. 마치 양다리 걸치는 느낌으로 주변 동료나 상사 눈치 보며모니터 창을 열었다 닫았다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아기가 낮잠을 잘 때면,구직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여기저기 매력적으로 보이는 곳에 지원을 했다.
문제는, 잠시 아기를 돌봐줄 가족도, 아는 이도 없는 이곳에서 갓 6개월이 지난 아기를 맡겨가며 보는 면접이 어떨지는 미리 생각하지 못한 초보 엄마였다는 것.
대부분의 회사에서 실행하는 1차/2차 면접 모두 한 번에 붙으면 남편도 딱 두 번만 점심시간을 써서 아이를 돌봐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인생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건 이미 서른 넘어 습득이 된 상태. 그렇게 한 번에 모든 게 통과되어 합격할 확률은 매우 낮고, 갈 길은 멀었다. 앞으로 남편과 나는 몇 번의 스케줄 조율을 하면 이 여정을 끝낼 수 있을까. 조마조마한 마음도 컸다.
회사에 따라 1차 면접에 초대되기 전 전화면접이라도 있으면, 강아지가 짖을라 애가 울라, 시간 맞춰 강아지는 잠시 베란다에 내어 두고, 아기는 아기띠에 들춰 업고 아기가 보채지 않게 거실을 빙글빙글 돌며 전화 면접을 보았다.
A 회사에 선뜻 지원한 이유는 사실 회사에 대한 소개글에 '우리는 틀에 박힌 3단계 고용 프로세스(서류, 면접 1, 면접 2)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어서였다. 어째서인지 나는 그 문장을 '우리는 쓸데없이 두 번이나 면접을 보지 않고 한 번 이면 되는 곳입니다.그렇게 쿨한 곳입니다.'라고읽었을까.
'그래, 이 회사가 뭘 좀 아네.'라고 지원을 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신은 요 녀석 꾀를 부리더니 한 번 당해봐라 하셨는지, 면접을 거치면서 틀에 박힌 3단계가 아니라, 무려 7단계라는 걸 알게 되었다.
3단계 화상면접 통과 후 직접 와서 면접을 보자고 했을 때, 그러니까 4단계가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이 마지막인 줄 알았다. 6개월 갓 넘긴 아이는 (빠듯하게 잡힌 면접으로 적응기간 같은 것도 없이) 3개월 후에 등록하겠다고 이름 올려놓은 어린이집에 양해를 구하고 캐주얼로 두세 시간 맡겨두고, 90여분 정도의 4차 면접이 끝나갈 때 즈음, 나는 이제 이 회사는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구나 했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당신과의 면접 시간이 좋았다며, 곧 다음 단계에 대한 이메일을 보내겠다는 것이 아닌가.
'다음 단계?'
기운이 쏙 빠지는 느낌이었는데, 다음 단계란 바로 금요일 하루 동안 회사에서 팀원들과 같이 일한 후, 그다음 주 월요일에 실제 분석한 아웃풋을 프레젠테이션하는것이란다.
'아.. 이걸 계속해야 할까.'
아이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남편이 회사에 양해를 구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아직 정식으로 시작하지도 않은 어린이집에 숏텀 노티스로 이 날 가도 될까요? 마음 졸이며 확인하고 보내면서, 아이는 아이대로 두세 시간이라도 잘 있는지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이번엔, 하루 종일 가서 일하고, 또 하루 가서 프레젠테이션 하려면 두 번을 또 어린이집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시작도 안 했는데, 너무 요구하는 게 많은 거 아냐?'
너무 망설여지면서도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마음. 꼭 해보고 싶었던 업무였고, 배울 기회가 많은 곳 같아 고민이 되었다. 기회일 수도 있으니 한번 하는데 까지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6개월 갓 넘은 아기를 종일반에 하루 맡기고, 금요일 하루 일을 하러 갔다.
육아휴직으로 머리도 굳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말 이렇게 날것의 데이터부터 시작하여 다듬고 재포맷하고, 필요한 정보를 분석/시각화까지 하는 일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월요일 프레젠테이션을 목표로 주말 내내 꼬박 새벽 5시까지 뭐라도 아웃풋을 내려고 컴퓨터 앞에서 낑낑대면서 왠지 서러워 울 뻔했던 건 왜일까.
결과는 좋았다.
마지막 단계는 네덜란드 본사에 있는 CEO와 인사하는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남편에게빨리 퇴근해줄 것을 부탁했다.
7차까지 모두 마친 후, 떨어져도 아쉬울 건 없겠다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최종 합격 소식을 들은 날은, 공교롭게도 그 사이 함께 면접 본 기업 B에서 역시 최종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온 날이기도 하다. 대기업이었다.
내심 기업 B에도 면접을 가 보고 결과를 비교하고 싶었으나, 그러려면 아이를 또 맡겨야 했다. 게다가, B회사 업무는 당시 하고 있던 일에서 아날리틱적 분야가 조금 확대된 정도였다면, A는 사실 오롯이 데이터에 집중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서 일하는 분위기였다. 빡쎄 보였지만 스킬적으로 배울 일이 많았다. 결론적으로는, A의 오퍼를 받아들이고 B 회사에는 최종 면접 불참 사실을 알렸다.
면접을 보면서 놀랐던 점은, 여러 회사들이 사실 육아 휴직 중인데 이직하려고 한다는 대답에 대해 거리낌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 그러세요, 아기가 몇 개월인가요, 한창 귀여울 때네요 등등 나이에 비해 짧은 회사 경력과, 육아휴직이라는 것이 걸림돌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고, 앞으로 내가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어떻게 발전하고 싶은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열정을 더 알고 싶어 했다.
베이스 스킬과 뚜렷한 열정이 있으면 나의 나이라든지, 내가 막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다 왔다는 사실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덕분에 나의 스킬을 확장할 수 있는 곳으로 이직을 준비하며 참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