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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Oct 24. 2022

호주 워킹맘, 이직하려는데 7단계 프로세스라니

유아휴직 동안 이직을 준비하다.


육아 휴직은 다른 기회를 찾아보는 데에 최적의 시기였다. 마치 양다리 걸치는 느낌으로 주변 동료나 상사 눈치 보며 모니터 창을 열었다 닫았다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아기가 낮잠을 잘 때면, 구직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여기저기 매력적으로 보이는 곳에 지원을 했다.


문제는, 잠시 아기를 돌봐줄 가족도, 아는 이도 없는 이곳에서 갓 6개월이 지난 아기를 맡겨가며 보는 면접이 어떨지는 미리 생각하지 못한 초보 엄마였다는 것.


대부분의 회사에서 실행하는 1차/2차 면접 모두 한 번에 붙으면 남편도 딱 두 번만 점심시간을 써서 아이를 돌봐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인생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건 이미 서른 넘어 습득이 된 상태. 그렇게 한 번에 모든 게 통과되어 합격할 확률은 매우 낮고, 갈 길은 멀었다. 앞으로 남편과 나는 몇 번의 스케줄 조율을 하면 이 여정을 끝낼 수 있을까. 조마조마한 마음도 컸다.


회사에 따라 1차 면접에 초대되기 전 전화면접이라도 있으면, 강아지가 짖을라 애가 울라, 시간 맞춰 강아지는 잠시 베란다에 내어 두고, 아기는 아기띠에 들춰 업고 아기가 보채지 않게 거실을 빙글빙글 돌며 전화 면접을 보았다.


A 회사에 선뜻 지원한 이유는 사실 회사에 대한 소개글에 '우리는 틀에 박힌 3단계 고용 프로세스(서류, 면접 1, 면접 2)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어서였다. 어째서인지 나는 그 문장을 '우리는 쓸데없이 두 번이나 면접을 보지 않고 한 번 이면 되는 곳입니다. 그렇게 쿨한 곳입니다.'라고 읽었을까.


'그래, 이 회사가 뭘 좀 아네.'라고 지원을 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신은 요 녀석 꾀를 부리더니 한 번 당해봐라 하셨는지, 면접을 거치면서 틀에 박힌 3단계가 아니라, 무려 7단계라는 걸 알게 되었다.


3단계 화상면접 통과 후 직접 와서 면접을 보자고 했을 때, 그러니까 4단계가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이 마지막인 줄 알았다. 6개월 갓 넘긴 아이는 (빠듯하게 잡힌 면접으로 적응기간 같은 것도 없이) 3개월 후에 등록하겠다고 이름 올려놓은 어린이집에 양해를 구하고 캐주얼로 두세 시간 맡겨두고, 90여분 정도의 4차 면접이 끝나갈 때 즈음, 나는 이제 이 회사는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구나 했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당신과의 면접 시간이 좋았다며, 곧 다음 단계에 대한 이메일을 보내겠다는 것이 아닌가.


'다음 단계?'


기운이 쏙 빠지는 느낌이었는데, 다음 단계란 바로 금요일 하루 동안 회사에서 팀원들과 같이 일한 후, 그다음 주 월요일에 실제 분석한 아웃풋을 프레젠테이션하는 것이란다.


'아.. 이걸 계속해야 할까.'


아이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남편이 회사에 양해를 구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아직 정식으로 시작하지도 않은 어린이집에 숏텀 노티스로 이 날 가도 될까요? 마음 졸이며 확인하고 보내면서, 아이는 아이대로 두세 시간이라도 잘 있는지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이번엔, 하루 종일 가서 일하고, 또 하루 가서 프레젠테이션 하려면 두 번을 또 어린이집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시작도 안 했는데, 너무 요구하는 게 많은 거 아냐?'


너무 망설여지면서도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마음. 꼭 해보고 싶었던 업무였고, 배울 기회가 많은 곳 같아 고민이 되었다. 기회일 수도 있으니 한번 하는데 까지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6개월 갓 넘은 아기를 종일반에 하루 맡기고, 금요일 하루 일을 하러 갔다.


육아휴직으로 머리도 굳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말 이렇게 날것의 데이터부터 시작하여 다듬고 포맷하고, 필요한 정보를 분석/시각화까지 하는 일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월요일 프레젠테이션을 목표로 주말 내내 꼬박 새벽 5시까지 뭐라도 아웃풋을 내려고 컴퓨터 앞에서 낑낑대면서 왠지 서러워 울 뻔했던 건 왜일까.


결과는 좋았다.


마지막 단계는 네덜란드 본사에 있는 CEO와 인사하는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빨리 퇴근해줄 것을 부탁했다.


7차까지 모두 마친 후, 떨어져도 아쉬울 건 없겠다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최종 합격 소식을 들은 날은, 공교롭게도 그 사이 함께 면접 본 기업 B에서 역시 최종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온 날이기도 하다. 대기업이었다.


내심 기업 B에도 면접을 가 보고 결과를 비교하고 싶었으나, 그러려면 아이를 또 맡겨야 했다. 게다가, B회사 업무는 당시 하고 있던 일에서 아날리틱적 분야가 조금 확대된 정도였다면, A는 사실 오롯이 데이터에 집중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서 일하는 분위기였다. 빡쎄 보였지만 스킬적으로 배울 일이 많았다. 결론적으로는, A의 오퍼를 받아들이고 B 회사에는 최종 면접 불참 사실을 알렸다.





면접을 보면서 놀랐던 점은, 여러 회사들이 사실 육아 휴직 중인데 이직하려고 한다는 대답에 대해 거리낌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 그러세요, 아기가 몇 개월인가요, 한창 귀여울 때네요 등등 나이에 비해 짧은 회사 경력과, 육아휴직이라는 것이 걸림돌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고, 앞으로 내가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어떻게 발전하고 싶은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열정을 더 알고 싶어 했다.


베이스 스킬과 뚜렷한 열정이 있으면 나의 나이라든지, 내가 막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다 왔다는 사실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덕분에 나의 스킬을 확장할 수 있는 곳으로 이직을 준비하며 참 고마웠다.


육아휴직은, 몸값을 올리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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