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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May 19. 2024

생애 첫 영어면접

서른에 첫 직장 구하기

졸업을 곧 코 앞에 두고 있으면서 연구실도 취업에 대한 이야기가 친구들 사이에서 오갔다. 지난 1년 반 정도의 편입 과정을 했던 궁극적 이유가 취직이었으므로, 데이터 분석 쪽으로 맞추어 지원하기 시작했다.


단단히 준비했었던 논문 프레젠테이션과는 별개로 평소에는 영어로 대화하며 곧잘 주눅이 들었다. 상대의 표정이 살짝 멍해지거나 일그러지면 방금 잘못 말했나? 발음이 이상했나? 이해하기 힘들게 말했나? 온갖 가능성 있는 이유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점점 목소리도 작아지고 이내 말끝을 흐리며 얼버무리는 것이다.


취직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력서 쓰는 것부터 면접까지 해야만 했다. 잔뜩 겁을 먹고 시작한 구직. 한국에서도 못했는데 여기서는 할 수 있을까. 수없는 자기 의심을 거듭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뭐라 뭐라 어떤 여자가 빨리 말하는 와중에 은행 이름을 들었다. 오세아니아의 4대 은행 중 한 곳이었는데, 얼마 전에 서류 심사 후 온라인으로 갤럽 테스트를 마쳤던 곳이었다. 문제는 면접. 한국에서도 면접만 가면 떨어졌다. 그런데 영어면접이라니. 그것도 상대의 얼굴 표정이나 입모양으로 추측할 수 없는 전화라 당황스러웠다. 이런 과정이 있는 줄 몰랐던 것. (후에 여러 번의 구직과 이직을 통해 알았지만 전화 면접은 꼭 하는 과정 중 하나이다.)


이름을 물으며 지원자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시험에 응해줘서 감사합니다.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요~ 라며 캐주얼하게 물었지만, 사실은 대답할 때마다 어딘가에 받아 적고 있는 듯한 느낌. 왜 하필 해당 은행이어야 했는지, 왜 이 포지션에 지원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CV에 기재되어 있던 목록을 확인 차 몇몇 제너럴 한 질문을 했다.


대답은 해야 하니 뭐라고 말은 했던 기억. 스스로가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주절거리며 머리가 하얘지곤 했다. 갑자기 상대편이 조용해지면, 무슨 말을 더 해야 하는 건가, 내가 한 말을 알아 들었나, 잠깐의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전화면접이 끝나자마자 침대로 몸을 던지며 얼굴을 파묻었다. 망했어. 양가감정이 한꺼번에 들었다.


1. 이렇게 큰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예전에 다 퇴짜 맞던 거에 비해선 발전하긴 했다.

2. 그러면 뭐 하나. 어차피 이렇게 망해버릴 거.


그날 하루 정도는 한껏 다운되어 있었다. 다음날, 애써 기분을 전환시키며 평소와 같이 지내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직접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었다.


별 거 아닌 일 같지만, 꿈같던 일이었다. 


첫 번째 대면 면접은 먼저 혼자 방에서 코딩 테스트 후, 두 분의 면접관과 지원자 한 명으로 밀도 있게 한 시간정도 치러졌다.


문제는 면접관이 묻는 질문들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질문의 종류가 한국에서는 주로 자소서에 썼던 내용이었는데, 그 항목들을 미리 생각해 보고 준비할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면접 전에 알아가 본 것이라고는 이미 전화 면접 때 물어봤던 회사에 대한 정보들, 지원 동기 같은 것들이었다. 사실 그건 이미 물어봤던 질문이었는데, 가장 모르는 정보가 처음 지원해 본 회사에 대한 것이라 생각했지, 삼십 년을 데리고 산 스스로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지난 5년 동안 뉴질랜드에서 커피를 만들다 갑자기 진로를 바꾼 상황에서 지원한 포지션과 상응하도록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어려웠다. 편입하여 이곳에서 고작 1년 반 공부한 걸로 그와 관련한 프로젝트나 경험이란 것은 얕고도 얕았다.


예를 들면 갈등을 해결한 경험. 나이 먹어 들어간 대학교에서 사람들과의 갈등이랄 게 따로 뭐가 있겠는가. 머리를 쥐어짜 학교 생활 하기 전을 떠올려봤으나 이민 생활동안 갈등이라면 [을]로써 일방적으로 당하거나 피하는 게 상책인 경우 뿐이었다.


갈등은 피하는 게 상책이죠,라고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7-8년 전 대학 때 활동하며 겪은 경험을 이야기했다(정말 아득한 옛날 얘기를 해주는 기분이었다).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묻는 데에서는 말문이 막혀버리고야 말았다.


머뭇거리고 있으니(이때부터 망함을 느낌) 면접관 한 분께서 그냥 어느 경험이라도 괜찮다고 따뜻하게 말씀하신다. 그래 뭐라도 말하자. 


바리스타로 일할 때 카푸치노 위에 뿌리는 시나몬 가루에 대해, 어떻게 바꾸어서 손님들에게 좋은 반응을 받았다는 지원한 업무와는 무관한 대답을 했다. 그런데 대답을 듣던 면접관 중 한 분이, 본인도 카페 체인점에서 학생 때 일했는데 덕분에 그때가 생각난다고 경험을 말하며 무안함을 덜어주는 거 아닌가. 


그 외 실제 업무에 쓰이는 예를 들고, 면접 들어오기 전 코딩 테스트 때 있었던 질문과 연관해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정답은 몰랐다. 로직대로 뭐라도 대답해야 하니 했을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대답을 잘 못했다는 것과는 별개로 이상한 긍정회로가 돌았다. 


항상 내가 하는 영어는 알아듣기 이상한 영어고, 그래서 그룹에서 이야기하면 꼭 한 명은 의아해하는 표정인 것 같아 늘 자신감이 없었는데, 이 면접에서는 1시간 내내 이야기했는데 두 분 모두 알아듣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지그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끄덕이던 모습도 떠오른다. 이민 온 후, 첫 경험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또 한 번 봤으면 좋겠다는 꿈같은 연락을 받았다. 정말 놀랐다. 마지막 임원 면접이라고 했다. 


인자한 인상의 나이 드신 여자분과, 그보다 조금은 젊은 키 큰 남자분이 계셨다. 나이 많은 신입이 될 수 있는 과거를 흥미롭게 보아주셨다. 어떻게 바리스타가 되었는지, 왜 통계학을 선택했는지, 업무에 대한 흥미도를 알아보셨고 아직 졸업 한 학기를 앞두고 있어서 학업과 일을 어떻게 병행할 것인가 역시 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함께 최종까지 올라왔던 다른 지원자가 같은 학교 같은 과를 이전 해에 이미 졸업한 분이었다. 결국은 그분이 합격하였는데, 학교 다닐 때 조교였던 그분에게 가끔 도움을 받았던 터라, 그분이 붙을만했다고 생각했다.



임원진 분께서 탈락 발표 후 따로 LinkedIn을 하지 않는지 여쭤보셨다. 그때는 LinkedIn 계정을 만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터라 없다고 하니 너의 이름을 찾아보니 없더라. 앞으로 LinkedIn에 프로필 관리를 잘하면 좋을 것이다. 라며 본인이 속해 있는 포럼에도 가입하라고 초대해 주셨다. 그렇게 첫 LinkedIn 계정은 그때 면접 보았던 면접관과 임원분들과의 연결로 시작이 되었다.


떨어졌지만, 감사했다. 나이만 많고 경력은 없는 아시아인이었는데, 면접을 마친 후 직접적으로 조언을 주시고, 커넥션을 열어주어 큰 용기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내 영어가 이상했나,라는 의구심 없이 대화가 되었다는 경험 자체가 주는 자신감은 큰 선물이었다. 발음이 하루아침에 나아지고, 유창해졌을 리가 없으니 운이 좋아 유난히 따뜻한 면접 실무진, 임원진을 만나 감사했다.


불합격이었지만 끝까지 가 본 단 한 번의 프로세스 덕분에, 더 이상 구직 시장에서 서른에 첫 직장을 구한다는 나이와, 영어를 완벽히 구사할 줄 모른다는 약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를 낮추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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