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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May 15. 2023

상상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

나를 옭아매지 못하도록


“오늘 수업 끝나고 미술 배우기로 한 사람들은 청소 끝나는 대로 모여라.”
“네에 알겠습니다.”
그전까지는 내가 미술에 소질이 있다는 걸 나는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 5학년 담임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선생님은 미술로는 최고의 대학을 졸업하셨고, 그 대학의 대학원을 다니고 계셨던 분이었다. 그리고 우리 반 아이들 중에서 선생님께 미술을 배우고 싶은 사람은 가르쳐줄 테니 남아서 배울 수 있도록 해주셨었다. 평상시 선생님께 미술을 배우는 시간이 너무 좋아했었던 나는 손을 번쩍 들고 오후 시간 미술 수업을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반에 70명 가까이의 학생들 중에서 교실 뒷 게시판에 그림을 걸릴 수 있는 학생은 10명뿐. 오후 수업을 받기 전에는 가끔 있는 일이었으나 수업 이후에 내 그림은 거의 게시판에 게시되었더다. 
그러던 어느 날 미술수업시간으로 기억된다.
내 그림을 보고 선생님께서 한마디를 해주셨다.
평소 그림을 잘 그린다며 칭찬을 많이 해주시던 선생님께서 조금은 난감한 표정으로
“그림을 잘 그리기는 하는데 선민이는 창의력이 부족해. 상상을 더 해보도록 해.
“네? 제가요?...... 네 알겠습니다......

그날의 자세한 상황이나 장면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선생님이 나에게 해주었던 그 말만전혀 잊히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 보고 그리는 풍경화나 정물화는 잘 그렸지만 상상화는 도통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 과학 상상화 그리기를 할 때마다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나 자신을 창의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 놓은 채로 살아왔다.



창의력이 부족한 사람이라 단정 지어져 있던 내가 책을 읽고, 특히 소설책을 읽고 나서부터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느껴져 나의 성장에 만족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요즘이다.
그런 성장을 이끌어준 것이 바로 독서모임이라고 생각하기에 2~3년째 다양한 독서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어제는 그렇게도 좋아하는 독서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5월 함께 <낙원>이라는 소설을 읽었고 무척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글이라서 반갑게 펼쳤지만 글이 너무 어렵게 읽혔고, 글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읽어내기에 나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정말 겨우겨우 읽었더랬다. 그저 읽어내기만 해도 기특하다고 생각하며 모임을 참석했다.
책이 쓰이게 된 배경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고, 모임을 이끄는 리더의 배경지식을 알려주는 발제시간을 통해 다양한 역사적 배경을 듣고 리더가 작성한 질문에 대해 각자의 생각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분석해서 이야기해 주는 회원들이 있어 풍성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꼭 다시 읽어봐야겠다며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될 즈음 한 회원의 이야기를 듣는 데 갑자기 초등학교 5학년때 선생님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식민사회는 강대국의 침략을 통해 강대국의 표현대로 경제발전이라는 것을 이루기도 하겠지만 실질적인 침략으로 인해 잃어버리는 것은 그들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문화이며 그들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잃어버린다면 안 되겠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주인공이 제대로 된 어른들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풍성한 생각을 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회원이 말했던 것이다.

바로 그 부분에서 문득 내가 자라날 때가 떠올랐다. 내게 두런두런 옛날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는 어른다운 어른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았다. 사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거나 밥을 먹으며 삶의 지혜를 듣는 경험을 한 기억이 거의 없었고, 그런 경험이 없는 내가 글을 통해, 문자를 통해 고뇌하는 사람으로 자라나지 못했기에 풍성한 상상력이나 창의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지금의 나는 내가 읽을 수 있는 최대한의 글을 읽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자기 계발서든, 문학 소설이든, 시든, 에세이든, 인문사회 관련 책이든 어떤 분야도 상관없이 읽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부족하다 생각되는 많은 것을 글로, 문자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그중 특히 소설을 읽으면 상상을 좀 더 할 수 있다 생각하며 읽고 있다. 활자들 속을 거닐며 주인공도 되어보고 문자들이 전해주는 감성도 느끼고 있다. 글로 묘사되는 배경이나 풍경도 직접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아마도 어릴 적 담임선생님에게 들었던 그 말이 나를 옭아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독서모임을 하며 생각이 확장되고 어떤 방식으로 책을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배우는 요즘의 나는 책 덕분에 무척이나 즐겁다.

이렇듯 책을 통해 과거의 나를 옭아매고 있던 굴레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시간들이 무척 귀하고 또 고맙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펼친 책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만났다.    
문자 너머의 세계, 그 광대한 상상의 세상을 오직 인간만이 들어설 수 있다는 작가님의 말대로 나는 오늘도 그 세상으로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해 글을 읽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문자가 지시하는 문자 너머의 세계에는, 어떤 영상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광대한 상상이, 그 밖의 방법으로는 설명할 길 없는 심오하고도 복잡한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다.
문자는 그 광대한 세상으로 들어서는 문과 같은데, 그 문에는 오직 인간만이 들어설 수 있다.
- p 120 정지우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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