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찬란하게

파란 하늘처럼

by 선우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 하루키의 《먼 북소리》 중에서



살아보니 삶은 너무 어렵고 힘들고 지치는 일들이 대부분이며, 웃음 지을 수 있는 시간은 자신이 직접 만들지 않는 한 당연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님을 깨우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너무나 살고 싶어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날의 그 순간엔.
어떤 의사 표현도 남기지도 전하지도 않고 선택한 삶. 다른 선택이 없다고 판단된 삶.
평소 지나치듯 이해한다고 했던 그 말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이었던가. 얼마나 의미 없던 말이었던가. 얼마나 외롭게 만들었던 말이었던가. 뒤통수를 커다란 망치로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했고,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아 고개를 처박고 목놓아 울었던 순간.

그날 이후로 죽음은 언제나 우리 삶과 가까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고, 오히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달았다.
하루를 맞이하고 당연한 듯 살아내는 삶의 순간순간 찾아드는 죄책감과 원망의 마음을 잠시 놓을라치면 그 사이에 가슴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절망감이 눈물을 쏟아내게 했다. 백화점 근무 중 꼬마 녀석이 엄마를 부르며 지나는 모습을, 퇴근길에 아들과 비슷한 체격의 남학생의 뒷모습을 마주하면 그만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럴수록 마음을 다잡기 위해 딸아이를 생각했다. 나보다 더 아프지 않을까, 나보다 더 버티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아무렇지 않은 척까지는 어렵더라도, 일상을 잘 버티고 있다고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딸아이가 집에 올 시간쯤이면 엉엉 울다가도 정신을 바짝 차렸다. 한동안 서로의 눈길을 피했고, 마주해서 그날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미뤘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지낼 수 없다는 걸 딸아이와 나는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백일정도가 지났을 즈음,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마주 보고 앉아 풀어내지 못했던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엉켜있던 아쉬웠던 마음, 원망, 걱정들을 차분하게 이야기 나누며 하나씩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갔다. 둘 다 퉁퉁 부은 눈을 하고서.

4년 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나와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잃은 딸아이. 단출한 세 식구는 그렇게 둘이 되었다. 우리 둘은 서로에게 반드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었고, 서로를 위해 단단해질 수밖에 없었다. 서로에게 기대어 절대 쓰러지지 않기 위해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쓰며 그 어느 때보다 더 튼튼해진 마음으로 씩씩하게 일어섰다.

그렇게 단단해진 딸은 얼마 전에 자신의 가정을 꾸려 새댁이 되었다. 새 식구를 맞이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바로 사위의 생일이 다가왔다. 사위 첫 생일은 장모가 챙기는 거라며 호기롭게 신혼부부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러나 막상 말을 뱉고 나니 사위 생일상을 어떻게 차려야 하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런 맘을 전하니 딸아이는 뭘 긴장해. 늘 내 생일에 하던 대로 차려줘.라고 하길래 남의 집 아들 생일상은 첨이라서.라고 했더니, 이제 엄마 아들이기도 해. 란다. 글을 보는 순간 울컥. 서로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면 분명 둘 다 눈시울이 붉어졌을 텐데. 글로 주고받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아들이 무척 보고 싶은 순간이기도 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이왕 이상할 거면 하늘에서 우리를 응원해 주는 아들을 봐서라도 기막히게 살아내고 싶다.
장례식 3일 내내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이었으니 그 영험한 힘으로 내 삶도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처럼 찬란하리라 믿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