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자라고 싶어
얼마 전 기대수명에 대한 자료를 보다가 문득 멈칫했다.
2025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여성의 기대수명은 여든여섯에서 여든일곱 살 정도라고 했다. 숫자는 그저 숫자일 뿐인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그 수치가 아주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엄마의 나이와 건강 상태를 떠올려보니, 나 역시 잘 살아간다면 아흔 정도는 충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계산해 보니 내 앞에는 아직 삼십 년이 넘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삼십 년.
그 숫자를 떠올리는 순간 마음이 묘해졌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분명한 건 결코 아무렇게나 흘려보낼 수 없는 시간이라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내 앞에는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한 생애가 놓여 있는지도 몰랐다.
그 순간 자연스럽게 질문이 따라왔다.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을까.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나누며,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채우고 싶을까.
예전에는 시간이 나를 저절로 어딘가로 데려다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가 열리고, 주어진 일들을 해내다 보면 어느새 원하는 곳에 가 있게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알게 되었다. 삶은 저절로 나를 데려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직접 내 삶의 방향을 정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요즘 자주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나다워지는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과 연결될 때 가장 살아 있음을 느끼는가.
쉽게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오래 고민할수록 더 솔직해져야 하고, 그래서 더 막막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앞으로의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해야만 하는 일들로 하루를 채우기보다, 내가 의미 있다고 느끼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다. 단지 무탈하게 나이 드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단단하고 넓은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
그럴수록 건강의 의미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건강이란 그저 아프지 않은 상태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건강은, 내가 원하는 삶을 끝까지 살아낼 수 있게 해주는 힘에 가깝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고, 배우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마음이 쉽게 지쳐버린다면 삶은 금세 좁아질 수 있다. 그래서 건강은 단순히 오래 사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와 연결된 문제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건강한 노년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른다운 어른으로 남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더 채우고 무엇을 덜어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문득 하던 일을 멈추고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보게 되는 날도 있다. 시간이 많아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더 분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여러 매체와 강의, 책과 콘텐츠를 찾아보게 된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정보가 있고,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의 방향을 말한다. 그런데 막상 그 수많은 정보 앞에 서 있으면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질 때가 있다. 다들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정작 지금의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쉽게 선명해지지 않는다.
어떤 말은 자극은 주지만 오래 남지 않고, 어떤 정보는 그럴듯하지만 내 삶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지는 못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이 더 멋져 보이느냐가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안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지나온 시간 속에서 얻은 통찰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도 오래전부터 품고 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어떤 일과 연결해야 할지는 아직 선명하지 않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몰라 답답할 때가 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아마도 ‘정답’보다 ‘길잡이’에 가까울 것이다.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무엇을 더 준비해야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를 함께 짚어줄 수 있는 사람. 혼자 헤매는 시간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지만, 앞서 걸어간 사람의 조언이 있다면 조금 덜 헤매고 조금 더 멀리 갈 수 있을 테니까.
혼자 무언가를 해내는 기쁨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나는 원래 사람 속에서 힘을 얻는 쪽에 더 가깝다. 누군가와 함께 배우고, 자극을 받고, 과제를 풀어가며 조금씩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더 잘 자라는 사람이라는 것도 안다. 혼자 읽고, 생각하고, 실행하며 여기까지 온 시간도 소중하지만, 이제는 그다음 단계로 건너가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더 커진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내 방식대로 많이 애써왔다.
책을 읽고, 생각을 기록하고, 삶의 태도를 바꾸고, 스스로를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예전보다 훨씬 더 단단해졌고, 나를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되었으며,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도 전보다 분명해졌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절실하게 느끼는 것도 있다. 지금의 방식만으로는 닿기 어려운 다음 단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우연히 한 강의를 듣게 되었다.
강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볍게 흘러가지 않고 오래 마음에 남았다. 잘 만든 말이라기보다, 그 말 안에 담긴 시간과 태도가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문의를 남겼고, 짧지만 귀한 상담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확인하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단순한 동기부여가 아니라, 구조와 훈련이 있는 성장을 원하고 있다는 것.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들고, 실제로 움직이게 만들며, 끝내는 나만의 콘텐츠와 방향성을 찾도록 밀어주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런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시간도 필요하고, 에너지도 필요하고, 때로는 현실적인 부담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선뜻 뛰어들기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분명해지는 것이 있었다.
‘아, 나는 지금 이런 종류의 배움을 원하고 있구나.’
무조건 따라오라고 몰아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마다 환경과 속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는 태도 역시 내게는 큰 신뢰로 다가왔다.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을 다그치기보다, 각자의 현실과 가능성을 함께 보려는 태도. 아마 내가 원했던 배움도 바로 그런 것이었는지 모른다.
아직은 모든 것이 준비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지금, 아주 중요한 문 앞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조금 더 분명히 알게 되었고, 지금의 나에게 무엇이 더 필요한지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성장이라는 것은 늘 약간의 불편함을 동반했다.
익숙한 방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가려면 당연히 두려움도 생기고, 망설임도 따른다. 시간과 돈, 체력과 환경, 자신감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모든 망설임 속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마음이 있다면, 아마 그것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더 배우고 싶다.
더 넓어지고 싶고, 더 깊어지고 싶다.
내가 살아온 시간을 그냥 지나간 시간으로 두지 않고, 그것을 잘 정리해 나만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이야기가 누군가의 삶에 작은 용기나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어쩌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방향을 잃지 않은 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남들보다 빨리 가는 것보다, 내가 왜 그 길을 가고 싶은지 끝내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내 앞에는 아직 삼십 년이 넘는 시간이 남아 있다.
그 시간은 막연히 긴 세월이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빛깔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일 것이다. 나는 그 시간을 조금 더 의식적으로 살아보고 싶다.
더 늦기 전에, 아니 어쩌면 아직 늦지 않았기에,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나를 키워보고 싶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