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의 물고기가 목말라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난 웃는다.
그대는 알지 못하고 있다.
지금 가장 살아있는 것은 바로 그대의 집 안에 있다는 것을
그러면서 그대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전전한다!
컬커타나 티베트, 가고 싶은 어느 곳이든 가보아라
그대의 영혼이 숨어 있는 곳을 찾지 못한다면,
그대에게 이 세상은 결코 진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Kabir-
그때의 나는 물속에 있으면서도 목이 마른 그 물고기 같았다. 감사할 줄 모르고 주어진 환경에 툴툴 불만을 내뱉던 사람! 부끄럽지만, 그게 나였다. 혼자 시간을 보내지 못한 지 세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하던 작업은 속도가 참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돈은 떨어져 갔다. 세상에 만족하지 못할 점이 끌어내자면 무수히도 많았다.
필연적으로 인생은 슬픔을 가져다준다. 그게 뚜렷한 이유를 동반하지 않을 때도 많다. 별 이유 없이 내가 처한 상황이 참 불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또 불만족스러워하는 내가 불만족스러웠다. 내면에서 나는 수도 없이 싸우고 있었다. 싸울 거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브라질에 머물던 나는 어느 날 저녁 주방에 앉아 있다가 어디론가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컴퓨터를 켜고 바로 내일 오후에 출발하는 티켓을 끊었다. 볼리비아행이었다. 그래, 나에게는 당장 신선한 공기와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이 필요해! 산 한가운데 위치한 집에 홀로 앉아 있는 내가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백팩을 간단히 싸서 공항으로 향했다. 그래, 이제 뭔가가 해결될 것만 같았다. 내가 왜 불만족스러운지 조금 떨어져서 보면 이해가 될지도 몰랐다. 공항에 갈 때까지만 해도 들떠서는 콧노래를 불렀다. 친구들이 잘 다녀오라고 공항까지 태워다 주기도 했다. 나는 크게 손을 흔들며 친구들이 도로 차를 타고 멀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결국 그날 나는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황열병 예방접종 카드를 가져오지 않은 탓이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방금 공항에서 나간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까지 갔냐고 물었다. 이미 고속도로를 진입했다고 했다. 그렇냐고, 알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막막했다. 다시 돌아가야 했지만, 왠지 그러기가 싫었다. 학교를 가기 싫어 땡땡이라도 친 아이처럼, 나는 공항 한복판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그저 멍했다.
핸드폰이 울린 건 그때였다.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내 친구 제 Ze 였다. 전화를 받으니 그는 오늘 저녁 공연을 한다면서 나를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뮤지션이었다. 그가 오늘 계획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방금 전까지 존재하던 계획은 깔끔히 취소되었으므로 생각할 것도 없이 나는 그의 초대에 응하기로 했다.
제 Ze가 공연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즐길 수가 없었다. 공연은 너무 좋았고, 또 그는 행복해 보였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나는 더 즐길 수가 없었다. 세상에 불행한 사람은 마치 나뿐인 것 같았다. 나는 마치 비극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내 불행을 이해해줄 이도 없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조그만 문제를 머릿속에서 훨씬 부풀려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문제가 아주 크다는 그 생각에, 우리가 느끼는 고통도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당시의 내가 그랬다. 결국 공연이 끝날 때쯤 내 얼굴은 흙빛이 되어 있었다.
내 옆으로 온 그가 내 얼굴이 어두운 것을 발견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나는 대충 괜찮다고 둘러대었다. 그가 말했다. "너 얼굴에 다 쓰여있어." 그가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하나만 이야기하려 했다. 그러니까, 무수히 많은 이 문제들 중에 작은 문제 하나만 대충 둘러대고 말 생각이었다. 그런데 숙소의 불편함에 대한 이야기의 꼬리를 물고 다른 불평들이 내 불어난 입술 사이로 나오기 시작했다. 혼자 있지 못하는 불편함, 일의 속도가 더딘 것부터 시작해서, 작업 파트너가 게으르다고 불평하기도 하고, 끝으로 황열병 예방접종 확인서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비행기를 태워주지 않은 그 바보 같은 항공사에 대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십여분이 되는 시간 동안 내 불평불만을 듣고 있던 제 Ze가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상상이 간다. 참 황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에 대해 무어라 비판을 하는 대신 한 마디를 던졌다.
"그치만, 너 다 가졌잖아."
내가 다 가졌다고? 빈털터리에다가 히피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내가? 하하하 웃으며 그를 바라보는데, 그의 표정이 진지했다. 그래서 그의 말이 파도를 삼킨 바다처럼 내 마음에 몰아쳤다. 그의 앞에서 나는 갑자기 어떤 말을 할 수가 없이 조용해졌다. 내가, 다 가졌다고? 멍하니 생각해 보았다.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서.
분명 내가 몸을 뉘일 곳은 있었다.
먹을 밥도 있었다.
입을 옷도 있었다.
돈도 비록 적지만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이었다. 나는 다- 가지고 있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있었던 것이다. 마법처럼, 그의 한 마디에 내 불평불만은 내 마음에서 자취를 감추고, 대신 다른 감정이 고개를 내밀었다.
감사함이었다.
나는 내가 몸을 뉘일 곳이 있는 것에 대해, 먹을 밥이 있는 것에 대해, 입을 옷이 있는 것에 대해, 내가 가진 적은 돈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친구가 해준 한마디의 말에 대해 마음이 떨리는 감사함을 느꼈다. 그래서 내 삶에 감사해졌다.
"그치만, 너 다 가졌잖아." 그의 이 한 마디는 나에게 어느샌가부터 하나의 만트라가 되었다. 세상과 내 삶에 대한 불만들이 떠올라 내 삶을 초라하게 느낄 때면, 나는 그 한 마디를 주문처럼 외웠다. 그러면 그 주문과 함께 삶에 대한 감사함과 사랑이 밀려와 먼저 자리했던 불평과 불만을 밀어내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있는 자리에서 평화로워졌다.
우리는 자신이 가지지 않은 것들을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자신이 가진 것들을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사실 우리의 생각만큼 많지 않다. 그것들은 대부분 우리가 가진 것들에 속해 있다. 자신에게 물어보라, 정말 물어보라.
나는, 다- 가지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