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07
첫 유럽 기차를 탄다. 유럽은 워낙에 선로가 유럽 전역으로 연결되어 있어 기차만으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KTX, 떼제베(TGV, 프랑스의 고속철도), 또는 신칸센(新幹線, 일본의 고속철도) 같은 빠른 속도를 기대하기 어렵다. 덕분에 느긋한 기차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딜레이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 연장시간은 주로 30분 내외인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눈이 온 날에는 3-4시간 연장되기도, 아예 기차가 취소되기도 한다고...
유럽 기차 여행을 위한 편리한 승차권을 찾을 수 있었다. 유레일(Eurail, 한국어도 제공한다.)(링크)에 접속해 원하는 기간, 원하는 횟수를 제공하는 상품을 고를 수 있었다. 어떤 상품이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일지 몰랐다. 'Youth, 2nd class, 15 days within 2 months(€ 389, 한화 약 53만 원)'를 구매했다. 생각보다 상당한 가격에 망설였다. 하지만 이것이 없으면 여행을 다닐 수 없기에 큰 마음먹고 결제를 속행했다.
기차 안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영화에서처럼 기차 안에 매점이나 식당이 있기를 바랐지만 존재하지 않았다. 혹시 몰라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산 것이 다행이었다. 유럽 기차가 처음이라 안에서 먹어도 되는지 몰랐는데, 같이 탄 승객에게 물어보니 먹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덕분에 맘 편히 샌드위치와 과일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오시비엥침의 기차역을 나오니 우중충하고 부슬비가 계속 내리는 날씨였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나의 시야에 잡힌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동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현지인은 절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오시비엥침을 방문할 이유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나처럼 아우슈비츠 방문을 위해 들린 것 같았다. 나와 같은 이방인의 처지에 놓여 당장이라도 방황할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친해지고 싶었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라 운명이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겨 구태여 말을 걸지 않았다.
이날은 평일, 비수기인데도 아우슈비츠 방문자가 적지 않았다. 고등학생 나잇대 즈음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줄지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나 전면 예약제라면 큰일이기에 표 가판대부터 찾아보았다. (전면 예약제는 관광지의 경우 생각보다 흔하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고흐미술관과 안나 프랑크 기념관을 아쉽게도 둘러보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히도 7.50유로에 입장권을 살 수 있었다. 1유로만큼 국제학생 할인을 받았으며, 가이드가 포함되었다. 영어, 스페인어, 폴란드어, 독일어 등 다양한 언어권이 있었다. 영어 가이드를 선택하고 순조롭게 입장했다.
아무래도 영어 가이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비영어권 국가의 비중이 다른 언어권보다 높아 보였다. 글로벌 언어 다웠다. 가이드와 함께하는 아우슈비츠 박물관 견학을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 오시비엥침 역에서 본 동양인이 있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구나, 저 사람도 혼자서 배낭여행 중인 걸까? 속에 피어나는 여러 호기심을 삭이며 가이드를 따라 본격적인 관광을 시작했다.
아우슈비츠 기념관을 제1기념관, 비르케나우 기념관을 제2기념관이라고 부른다. 둘을 합쳐 Memorial and Museum Auschwitz-Birkenau이라고 명하고 있다. (아우슈비츠Auschwitz는 폴란드어 오시비엥침Oświęcim의 독일식 개명 명칭이다.)
제1기념관은 주로 아우슈비츠 집단수용소 생활의 비인간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빅터 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읽어 알 수 있었던 ‘유대인을 감시하는 유대인’ 즉 '카포'가 수용자들을 위협 및 탄압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기억에 남는다.
제2기념관은 제1기념관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버스를 잘못 타는 수고를 겪었는데, 같이 길을 잃은 그 동양인 아저씨와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73년생의 일본인 아저씨 유타 상과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제2기념관 내부로 들어서니 소름 돋는 광경이 펼쳐졌다. 선로가 주욱 늘어서 있고, 집단 멸살을 최종목적으로 하는 전략적, 집약적인 시설에 백수십만 명이 차례로 들어섰을 테다. 한편으로는 오싹했고, 한편으로는 벅차올랐다.
종국에는 독립을 하고 민주주의 국가로서 세계에 한 자리를 채우고 있는 폴란드가 대단해 보였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억압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점에서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호전적인 나라 옆에서 상대적 약함을 바탕으로 눈치를 보는 것, 적나라하지만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었고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으리라. 극복의 역사는 초기에 전범국을 향해 적개심을 불러일으켰겠지만 세대가 바뀌면서 화는 희석되고 민족의 정체성과 인생의 원동력으로 변모했으리라. 기성세대는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신세대는 아픈 역사를 딛고 일어나 조국이 더 성장하기를 바라며 세상에 본인들의 영향력을 끼치려고 투쟁하고 있으리라.
JTBC TV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독일 대표 ‘닉’이 말하길, 독일 학생들 대부분은 수학여행으로 아우슈비츠를 방문해 자국의 역사를 자세히 느끼고 배운다고 한다(링크)(2:13).
이 점을 보면서 독일과 일본의 처세가 굉장히 다름에 불편함을 느꼈다. 한쪽은 전범국의 과오를 인정하고 뉘우치는 반면, 다른 한쪽은 자국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본인들의 받은 피해에 집중하여 역사를 가르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1984>, 조지 오웰
독일과 일본은 서로 다른 도덕적 이념과 목적을 가지고 이를 실천하고 있었다. 본인의 나라가 악마의 탈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는 권력의 집중이 존재하는 국가라면 어디에나 존재할 것이다.
나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타국을 힐난하기보다, 자아실현을 최우선 목표로 두고 조국의 부강화를 원동력으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혐오는 혐오를 낳고 그 혐오는 여태껏 허물려고 노력해 왔던 보이지 않는 장벽을 더 조밀하고 단단하게 만들 뿐이니까.
큰 채찍과 상냥한 말솜씨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위는 미국이 조선에 대사관을 설치하기 위해 파견한 사령관이 상사에게 전해 듣는 한 마디이다. 부강국스러운 모토가 엿보이는 한 문장이다. 실제로 이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前 미합중국 대통령(임기 1901-1909년)의 외교 정책이었다.
군사적 약자 입장에서
세계에 도덕적 교리를
천명하는 것은 위험한 환상이다.
비슷한 다른 예시로, 영국 출신의 수학자이자 과학자인 ‘프리먼 다이슨 (Freeman Dyson)’의 저서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 (영제: Disturbing the Universe)>에 등장한 문장을 인용하였다. 위는 ‘에드워드 텔러 (Edward Teller, 수소폭탄의 아버지)’가 한 말로 기록되어 있다. 미국이 군사적 강력함을 가지는 것은 세계를 무대로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퍼뜨리기 위함이리라. 그것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어도어 테디 루즈벨트 (Theodore Teddy Roosevelt) 미국 전 대통령은 임기가 끝난 뒤 1910년 ‘Citizenship in a Republic’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진행한다. 연설의 한 부분으로, 미국의 부강함이 미국에 가져다주는 이점 중 하나는 바로 미국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 부강함에는 깨끗한 정부와 바람직한 시민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 주요 연설 내용이었다.
비록 세계대전 발발 전이었음에도 테디 루즈벨트 미국 전 대통령의 연설은 아직까지도 회자될 만큼 미국인에게 중요한 역사적 연설로 기억되고 있다. 연설 속 교훈은 비단 미국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만한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도 공화정에 살고 있고, 시민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가치관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은 신세대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과정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한 걸음 더 어른이 될 수 있게 만들어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기념관. 오묘한 기분의 관광을 마치고 유타 상과 뒤풀이를 약속했다. 폴란드 맥주를 마시며 서로의 이야기보따리를 풀 기대를 안은 채 숙소행 기차에 올랐다.
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07 -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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