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09
이제는 다른 목적지를 찾아야 할 때였다. 여행지를 물색하던 중, 마침 워크어웨이Workaway에서 회신이 도착했다.
“역으로 오후 8시까지 오세요. 우리 쪽 차가 있을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무서웠다. 워크어웨이는 플랫폼일 뿐 책임을 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보험이 없다는 얘기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바다 건너 외딴 나라에 홀몸으로 가서 웬 '무너진 성 다시 짓기'를 자원한다... 라, 미친 짓이었다.
워크어웨이는 호스트와 여행자(이른바 워크어웨이어Workawayer)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의 여행 앱이다. 숙식과 값진 경험을 삯으로 나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시스템이었다. 여행의 초기 목적이던 ‘돈 안 들이고 세계 배낭여행’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수단이었다. 적합한 호스트를 모색하던 중, 흥미로운 성 재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슬로바키아로 향한 것이었다.
간단한 질문이 오갔다. 특이식단이 있는지, 코로나 백신접종은 했는지 등을 물었다. 조건에 부합함을 확인받은 뒤 날아온 문자가 바로 “역 앞 8시, 차.”였던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말하지는 않았다.)
시간은 오후 8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해가 일찍 지는 동유럽 답게 오후 8시의 풍경은 마치 자정 즈음의 음산하고 고요한 분위기와 같았다. 접선장소는 브루트키(Vrútky) 역으로, 내게 충격적인 첫인상을 안겨준 동네이다.
창문엔 대개 철창이 설치되어 있었다(!). 마트, 카페, 빵집, 심지어는 대합실에까지... 대부분의 상가에 철창이 설치되어 있었다. 마치 유명 여행유튜버 '빠니보틀'의 한 영상이 떠올랐다.
위험한 곳에 가기를 마다하지 않는 빠니보틀의 여행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영상으로 '슬로바키아 집시촌 방문' 에피소드를 꼽고 싶다(링크).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 충격적인 점은, 집시촌에 존재하는 작은 마트에는 물리적인 보안을 위해 철창은 기본이고 방탄유리까지 구비해 놓았다. 도난방지라고는 하나, 위협적인 집단 도난 사건이 잦지 않은 한국에서 살다 온 내게 이런 조치는 과민반응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그 영상을 보고 나서 철창과 방탄유리는 그들에게 적절한 방어수단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그게 없었다면 약탈이나 신체적 가해는 더 높은 확률로 발생했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서 있는 브루트키 마을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나치게 이른 영업 종료 시간도 눈에 띄었다. 철창을 설치한 이유와 관련이 없진 않으리라고 멋대로 추측해 보았다. (작은 마을 특성상 가게를 오래 열어둘 필요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픽업하러 온 두 명의 건장한 사내가 투박한 오프로드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누가보아도 이방인의 모습을 한 나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겠지. 그들은 내가 바로 그 자원봉사자임을 짐작하고 먼저 손짓했다.
솔직히 말하면, 상황만 묘사하면 누가 봐도 잘못돼도 이상하지 않은 시나리오였다. 워크어웨이는 호스트와 워크어웨이어의 만남을 돕긴 하지만, 광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주선자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말이다. 혹자는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아니냐는 핀잔을 주겠지만, 때론 세상이 영화보다 잔인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짐을 싣고 차에 올라탔다. 젊고 패기 넘치는 22살답게, 기차에서 공부한 짧은 슬로바키아어로 인사를 건넸다! 활기찬 답례인사를 기대했지만, 그들은 나를 떨떠름하게 바라보았다. 눈치를 보니 나를 픽업하러 온 두 명의 사내는 영어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최악의 워크어웨이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노동력을 품으로 그리고 숙식을 삯으로 교환하는 워크어웨이 여정 특성상, 호스트와의 교감은 떼려야 뗼 수 없는 부분이다.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므로, 내가 당면한 상황은 예상보다 큰 난관이었다.
다행히도 또 다른 호스트는 영어에 충분히 능통했다. 그에게 그동안 체코와 슬로바키아에 대해 궁금했던 점에 대해 물어볼 수 있었다. 야로(Jaro)는 나의 짧은 슬로바키아어를 아낌없이 칭찬해 주며 슬로바키아와 체코의 관계에 대해 간략하고도 재미있게 설명해 주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흥미로운 역사는 나를 매료시켰다. 아버지 세대까지만 해도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하나의 국가 ‘체코슬로바키아’로 인정되어 왔으나, 각 지역의 국민투표를 통해 1993년 1월 1일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분리독립을 겪었다. 이는 특별하지만 기묘한 역사적 배경으로 다가왔다. 언어를 공유하는 두 나라가 서로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이 우리나라와 같으면서도 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북한의 언어가 90%만큼 동일하다고 하자. 이는 단어 몇 개가 다를 뿐, 일상적인 대화가 전혀 문제없을 수준이다. 현지인의 말에 따르면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70%만큼, 다른 슬라브어 국가끼리는 50%만큼을 서로 공유한다고 한다. 한자를 100% 공유하는데도 불구하고 서로 말은 완전히 다른 한중일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신기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가로등 하나 없는 도로를 지나 산길을 덜컹덜컹 오르니 정말 넓은 들판에 부서진 성 하나가 우뚝 서 있다. 그 옆에는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여관이 존재했다. 바닥 나무판자가 속절없이 삐걱대고 염소분뇨냄새가 진동했다. 청결에 예민해지지 않기로 했건만, 내 결심에 금이 가버릴 것만 같았다.
어둠이 주는 불안감. 외딴곳에 고립되어 있다는 공포감. 그 위험성들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스클라비나 성(Hrad Sklabiña)에서 부는 바람과 쨍히 비추는 달빛이 내게 안심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미 소중한 인연들과의 추억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음을 그들은 벌써 알고 있었나 보다.
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09 -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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