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적소에 메스를 대야할 때다.
음원 사이트가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이 운영 중인 '실시간 차트'가 일대 변화를 맞이했다. 개편은 지난달 27일 0시부로 적용됐다. 음원 발매 직후 한 시간 단위로 집계, 발표하던 실시간 차트를 부분 수정, 오후 12시부터 6시 사이에 발표한 음원에 한해서만 실시간으로 집계하고 차트에 반영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즉, 시스템 변경 후 자정에 발표된 음원은 13시간이 지난 후인 오후 1시에 실시간 차트에 진입할 수 있다. 물론, 기존에 출시된 음원과 오후 12시에서 6시 사이에 발매된 곡들은 계속해서 실시간 차트에 머물게 된다.
변혁의 시발점은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에 보낸 '건전한 음원 유통 질서 확립을 위한 협조 공문'이다. 0시 음원 발매가 차트를 교란시킬 수 있으니 집계 시간 조정 등 대책을 고려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 측은 음원 사업자 측에 자발적 개선안 강구를 요청했고, 여기에 대한 해법으로 실시간 차트 집계 방법의 변화가 도출된 것이다. 관련 보도가 나온 2월 15일 이후, 관계자는 물론 마니아와 대중 사이에서도 끝없이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이미 새로운 규정은 적용됐고 발매 시간대 또한 달라졌지만,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주요 쟁점들을 짚어본다.
♦︎ 실시간 차트, 무엇이 문제였나.
문체부와 음원 사이트가 팔을 걷어붙인 근본 이유는 기존 실시간 차트가 팬덤에 의해 좌지우지됐기 때문이다. 자정에서 새벽 사이에 상대적으로 음원 사이트 이용자 수가 적다는 점을 이용, 거대 아이돌 팬덤이 자정에 발매된 음원을 조직적으로 대량 구매하고 반복 스트리밍 함으로써 차트를 일시에 점령했다는 것이 이들의 말이다. 이른바 불공정한 '줄 세우기'로 인한 기존 음원의 차트 아웃으로 음악 생태계가 파괴당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이참에 아예 실시간 차트를 없애자고 아우성이다. 일부 언론 보도, 칼럼은 이러한 현상이 한국만의 일이며, 실시간 차트를 운용 중인 국가 자체가 거의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는 명백한 거짓이다. 세계 최대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스포티파이(Spotify)가 일간, 주간 차트만을 공개하고 있지만, 미국의 대표적 음원 판매처인 애플의 아이튠즈(iTunes)와 이들이 지난해 론칭한 스트리밍 서비스 애플뮤직은 실시간 차트를 두고 있다. 아이튠즈가 서비스되는 국가가 전 세계 150개국을 능가하는 만큼, 실시간 차트 역시 대부분의 국가에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메인스트림 대형 가수의 컴백으로 일어나는 차트 줄 세우기가 정말 한국에만 있는 일일까. 이 역시 그렇지 않다. 2014년 10월에 발표된 테일러 스위프트의 5집 < 1989 >, 2015년 11월 아델의 3집 < 25 >, 2016년 4월 비욘세 6집 < Lemonade > 등 역시 미국 아이튠즈 차트 줄 세우기를 달성했다. 탄탄한 팬 베이스와 고도의 대중성을 갖춘 스타라면 외국에서도 차트 점령은 당연한 결과다. 물론 다운로드 수요의 감소로 과거보다 적은 판매량으로도 아이튠즈 차트 등극이 가능해진 것은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대중 수요가 큰 스포티파이의 차트가 팬덤 수요만으로 동요하지 않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유독 한국에서 '줄 세우기'가 문제되는 이유는 현상의 지속성에 있다. 발매 직후의 차트 점령이 오래가지 않는 해외와 달리 한국의 '기현상'은 밤마다 재현된다. 이용자 수가 많은 아침에서 낮 시간대에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다가, 일반 사용자가 빠진 밤에는 팬덤 간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팬덤이 작은 주류 팝, 인디 가수의 노래는 차트를 이탈하게 되고, 혹여나 유달리 '화력'이 좋은 아이돌 음원이 오전까지 차트를 차지하고 있다면 차트의 다양성은 더욱 파괴되니 문제라고 여길 만하다. 언뜻 순위에 이성을 잃은 팬들의 무분별한 공격으로 음악계가 앓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쯤에서 조금 달리 생각해보자. 차트에 조작을 가하는 것이 아닌 이상, 차트는 음악계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것이 실시간 차트라면 더욱 그렇다. (지난 2013년과 2015년, 일부 기획사가 중국 등 어둠의 경로를 통해 집단으로 스트리밍을 하며 차트 왜곡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현재까지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으니 이에 대한 판단은 잠시 유보하기로 한다.) 차트에 다양한 음악이 공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선 그만큼 음악의 전반적 대중 수요 자체가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그 와중에 (특히 아이돌) 팬의 수요는 줄어들지 않으니 차트에서 아이돌이 부각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인기 드라마의 사운드트랙, 예능 프로그램 삽입곡이 높은 순위를 비교적 쉽게 점하는 것도, 음악 그 자체가 발휘하는 힘이 줄고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졌음을 증명한다.
♦︎ 아이돌 팬덤은 왜 차트에 집착하나.
이번 개혁은 아이돌 팬덤의 움직임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이들의 행동 배경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팬으로서 응원하는 가수의 좋은 기록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은 자연스럽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같은 음반을 여러 장 사고 콘서트 투어를 쫓아다니는 열성 팬은 대중음악의 역사와 늘 함께하지 않았던가. 문제는 유난히 심하게 경쟁을 부추기는 차트의 현 운영 방식에 있다. 단순히 차트 순위만을 공개하는 해외의 실시간 차트와 달리, 멜론과 지니 등 국내의 일부 음원 사이트는 차트의 자세한 집계 현황을 낱낱이 공개한다.
특히 시장 점유율 50%가 넘는 독보적 업계 1위 멜론은 마치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듯 차트를 운영하고 있다. 차트 상위 3곡의 현재 차트 점유율과 그래프, 24시간 누적 이용자 수를 차트 상단에 위치시키고, '경합', '지붕킥' 등의 용어를 동원해 각축 상황을 노출하는 식이다. 특히 3곡의 5분 단위 스코어를 공개하며 다가오는 순위를 예측하는 시스템은 대놓고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거대 팬덤은 좋은 순위를 점하기 위해 이를 체크하고 조직적인 스트리밍, 다운로드 작전을 세우기도 한다. 음악으로 경마하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돌 팬덤에게 컴백은 기쁜 일인 동시에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신곡을 마음껏 즐길 틈도 없이 순위에 대한 집념이 올가미로 변한 탓이다. 현재 케이팝 시장의 주 소비층인 팬덤들 사이에는 이미 이처럼 과열된 경쟁 분위기가 만연하다. 음악 자체의 완성도는 뒤로 한 채, 지붕킥이 대단한 홍보 수단이 되고 줄 세우기 자체가 하나의 프로모션 아이템이 되고 있다. 케이팝의 부흥으로 음악 시장과 저변이 확대되는 동안, 정작 음악을 즐기는 음악팬은 크게 늘지 않았다. 과연 이러한 비정상적 상황을 시스템화 한 거대 자본, 기업을 두고 팬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수 있을까. '아이돌 팬이 차트 망쳐놨다!'는 말은 '섀도복싱(shadow boxing)'인 셈이다.
♦︎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고착된 비정상을 바로잡기 위해 손봐야 할 곳은 한두 개가 아니다. 가장 먼저 사라져야 할 것은 무분별한 경쟁을 부추기는 현 시스템이다. 5분 차트, '경합'과 '지붕킥' 등을 모두 철폐해야 한다. 실시간 차트를 운영하되 깔끔하게 순위만 공개하자는 것이다. 실시간 차트 자체가 문제 되지 않음은 해외 사례에서 엿볼 수 있다. 근본 원인은 경쟁심을 자극하는 '나쁜' 요소들이다. 팬이든 일반인이든, 편한 마음으로 음악 자체를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힘을 실어야 할 곳은 또 있다. 종합 차트의 개발이다. 해외의 아이튠즈, 애플뮤직이 실시간 차트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를 주요 차트로 삼는 이는 많지 않다. 스포티파이의 일간 차트 역시 마찬가지다. 빌보드 핫 100 차트가 있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를 거쳐 공정성을 기반으로 형성된 권위를 누구나 인정하고, 이 차트의 순위만이 유의미한 기록으로 남는다. 애당초 차트의 집계 기준이 다양해 팬덤의 움직임만으로 차트가 바뀌지 않으니, 불필요한 경쟁심이 생길 여지도 없다. 현재 국내에는 이를 표방한 가온 차트가 존재하나,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시간과 자본이 소요된다 해도 음원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방송 에어플레이와 유튜브 조회 수 등 다양한 인기 지표를 반영하는 제대로 된 종합 차트를 만들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멜론 등 음원 사이트에 집중된 차트 파워를 줄이고 권위를 가져와야 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내세울 만한 공식 차트가 없어 음원 사이트의 차트를 대표 삼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다양한 음악의 공생과 대중의 청취 경험 확대를 위한 근본적 방안의 강구는 음악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오랜 숙제다.
이미 지난달 27일을 기점으로 차트 체계는 바뀌었고, 러블리즈와 태연 등 이에 발맞춰 발매 시기를 조정한 사례도 나왔다. 분명 '줄 세우기' 막겠다고 내놓은 방안이었으나 태연의 차트 점령은 막지 못했다. 시행 1주일이 채 되지 않았다지만, 차트의 다양성이 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회복되었나, 이 또한 아니다. 단순하게 실시간 차트 조금 손봐서 될 일이 아니다. 차트에서 다양한 음악을 접하지 못하고 있는 일반 소비자도, 이를 악물고 순위 높이기에 동조하던 아이돌 팬덤도, 그 팬덤마저 없으면 차트에 발도 못 붙이던 음악인도, 모두 시스템의 피해자다. 이제는 적소에 메스를 대야할 때다.
* 2017년 3월 IZM 기고 http://bit.ly/2mNXU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