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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Jan 29. 2017

흑인의 살 권리를 노래하다

미국은 가던 길과 새로운 길, 그 기로에 서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자유와 평등의 국가, 미국의 이면에는 흑인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멸시의 역사가 존재한다. 강제 이주 및 노예제로 건국 초기부터 고통을 받았던 흑인들은 노예제가 철폐된 이후에도 오랜 기간 백인들과 동등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전설적 여가수 빌리 홀리데이는 1939년'Strange fruit'에서 적나라한 비유를 통해 참혹한 현실을 드러냈다. 노예제 폐지는 명목상의 해방이었을 뿐, 실질적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짐 크로우 법'을 두고 각층의 목소리가 충돌하고, 말콤 엑스와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등장했던 격동의 1960년대 전후, 혼란스러운 흑인들을 위로한 것은 음악이었다. 샘 쿡'A change is gonna come'으로 따뜻한 격려를 건넸고, 제임스 브라운'Say it loud – I'm Black and I'm Proud'는 흥겨운 펑크(funk)로 사람들을 독려했다. 밥 말리'Redemption song', 퀸시 존스가 주도한 1980년대 인기 가수들의 대형 프로젝트 'We are the world'는 더 넓은 메시지를 함의했지만, 흑인들에게는 연대의 송가와도 같았다. 1990년대에 들어 마이클 잭슨'Black or white'로 흑백의 화합을 노래했고, 1993년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는 대규모 카드 섹션으로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Strange fruit'으로부터 70년이 흐른 지난 2009년, 미국은 건국 이래 최초로 흑인 대통령을 맞이했다. 척 베리와 리틀 리처드, 마빈 게이와 제임스 브라운을 거쳐 1980년대 마이클 잭슨에 이르자 음악계 최전선에 서는 흑인 아티스트들도 다수 등장했다. 1990년대를 전후로 힙합과 뉴 잭 스윙, 알앤비 등 흑인 음악이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고, 어셔와 비욘세, 알리시아 키스 등 걸출한 팝스타들이 연속으로 등장하며 블랙 뮤직은 최전성기를 맞았다. 불과 150여 년 전만 해도 '민스트럴 시'(우스꽝스러운 흑인 분장을 한 백인들의 엔터테인먼트 쇼)가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감개무량이며 천지개벽이다.

많은 부분에서 인종의 평등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여전히 미국을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는 흑백 갈등이다. 트레이본 마틴 살인 사건 등 2012년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미국 내 잔존하는 흑인에 대한 편견과 멸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흑인 사회는 '흑인도 살 권리가 있다'('Black lives matter')며 외치기 시작했다. 음악인들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50여 년 전 샘 쿡이 그랬듯, 오늘 날을 살아가는 뮤지션들은 음악으로 흑인들을 독려하는 동시에 끈질기게 남아있는 인종간 반목을 없애기 위한 노래를 내놓았다.




2013년 말 개봉한 영화 < 노예 12년 >은 비인간적 인종 차별이 얼마나 비극적인 역사를 만들었는지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 일깨움이 채 가시기도 전인 2014년 8월, 퍼거슨 시에서 비무장 흑인 소년이 백인 경찰 총에 숨지는 사태가 일어나자 흑인 사회의 집단 움직임은 뚜렷해졌다. 연말까지 평화 집회와 폭력이 수반된 소요가 계속되며 좀처럼 진정되지 않던 분위기에 커먼(Common)존 레전드'Glory'는 새로운 앤썸(anthem)이 됐다. 1960년대 흑인 민권 운동을 조명한 영화 < 셀마 >의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된 노래는 성가를 연상케 하는 진행과 현실을 녹여낸 가사로 뜨거운 반응을 모았다.

비슷한 시기에 디안젤로가 14년 만에 '검은 구세주'라는 뜻의 < Black Messiah >를 발표하자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거창한 음반 제목과 달리 수록곡 다수가 보편적 사랑 노래로 채워졌지만, '우린 그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원했다'라고 읊조리는 'The charade'와 인트로부터 1분 30초간을 1960, 70년대의 급진, 과격주의 흑인 운동조직 '흑표당'의 유명 연설들로 채운 '1000 deaths'가 흑인 사회를 결집시켰다. 팝의 요소를 차용해 수용 범위를 넓힌 피비알앤비(PBR&B) 등이 주류로 부상한 것과 관계없이 정통의 흑인 음악에 충실하는 완강한 스탠스를 보인 것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이듬해인 2015년 3월 발매된 켄드릭 라마< To Pimp A Butterfly >는 이 모든 것의 정점이었다. 블루스와 재즈, 펑크(funk)와 알앤비 등 흑인 음악을 총망라해 자양분 삼고, 거대한 스토리텔링 안에 흑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고통을 녹여낸 걸작에 흑인 사회는 뜨겁게 응답했다. 그는 돈과 섹스, 마약에 몰두하는 여타 래퍼와는 확연히 달랐다. '피부색으로 적이 될 수 없다'고 일갈하는'Complexion(A Zulu Love)', 뼈 아픈 노예의 역사와 상술한 트레이본 마틴 살인 사건을 각각 언급한 'Wesley's theory', 'The blacker than berry' 등 앨범의 모든 곡이 가려운 곳을 긁어냈다. '마틴 루터 킹의 환생'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 To Pimp A Butterfly >의 충격파가 한창이던 2015년 4월, 백인 경관에 의해 흑인 청년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일주일 사이에 2회 연속으로 벌어지자 흑인 사회는 분노에 휩싸였다. 사건이 벌어진 곳 중 하나인 볼티모어에서는 대규모 폭력 시위가 벌어졌고, 비욘세와 아이스 큐브(Ice Cube) 등 많은 흑인 아티스트가 경찰을 규탄하고 시위대를 지지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인종과 무관하게 지치고 상처 입은 볼티모어를 음악으로 위로한 것은 록 레전드 프린스였다. 평소 저작권에 엄격해 유튜브에 동영상 게시도 꺼리던 그는 '모두 총을 치워버리고 서로 사랑하자'는 인류애적 메시지를 담은 흥겨운 펑크(funk) 곡 'Baltimore'를 무료로 공개하며 평화와 화합을 노래했다. 




“정의가 없는 곳에는 평화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또다시 피 흘리는 날을 겪어야 하나요?
우는 것도, 사람들이 죽는 것에도 지쳤습니다.
모두 총을 치워버립시다.”
- 'Baltimore', 프린스(Prince)

지난해 2월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50회 슈퍼볼 하프타임 쇼는 콜드플레이의 몫이었으나, 정작 언론과 SNS를 달군 것은 단 3분간 무대에 오른 비욘세였다. 주체적 여성상을 강조하던 기존 기조에 흑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더한 신곡 'Formation'을 슈퍼볼 하루 전에 기습 발매하며 관심을 독차지한 그는, 음원 공개 이튿날 하프타임 쇼에서 선보인 신곡 무대로 단숨에 논란의 중심이 됐다. 검은 제복과 베레모 차림을 한 댄서들의 의상과, 주먹을 쥔 채 하늘로 팔을 뻗는 등의 안무가 1960년대 '흑표당'을 떠오르게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을 비롯, 비욘세를 향한 보수세력의 맹공이 이어졌고 급기야 SNS에서는 반(反) 비욘세 시위를 도모하는 움직임까지 생겨났다. 노래는 특정 음원 서비스 업체(TIDAL)에서만 판매되었고 뮤직비디오 역시 링크가 없으면 감상이 불가능했지만 사회적 파급력은 상당했다.




자유와 평등의 국가 미국은 정작 백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에게 온전한 자유, 평등을 허용하지 않았다. 버스의 좌석 구분은 없어졌지만 고질적인 편견에서 비롯된 멸시와 기저에 깔린 백인 우월주의는 아직 남아있다. 빠르게 바뀐 세상에 비하면 지독하게 오래 지속된 갈등이다. 70년 전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로 위안을 얻었을 세대의 손자, 손녀들이 이제는 켄드릭 라마와 비욘세의 격려를 받는다. 'Black lives matter' 슬로건이 한창 펄럭이는 지금, 미국은 가던 길과 새로운 길, 그 기로에 서있다.


* 2016년 3월 IZM 기고 http://bit.ly/2jJxEZ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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