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누리는 가장 큰 기적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1990년 2월 14일, 지구로부터 약 60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보이저 1호가 찍은 사진입니다. 탐사선은 그날 카메라를 돌려 자신이 떠나온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광활한 우주의 어둠 속에 작은 점 하나가 보였습니다. 햇빛이 만들어낸 빛줄기 속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그 희미한 점이 지구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이, 인류가 기억하는 역사 전부가 그 안에 담겨 있었습니다.
위 사진을 처음 봤을 때의 감정을 저는 지금도 딱 떨어지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슬프지도 않았고 기쁘지도 않았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가슴 깊은 곳이 조용히 가라앉는 느낌이었습니다. 우주가 이렇게 넓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 사진 앞에서는 그것이 몸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상한 감정도 밀려왔습니다. 저토록 넓고 어두운 공간에 저 작은 점이 혼자 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짠하면서도 경이로웠습니다. 그 먹먹한 감각은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그 사진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구는 광대한 우주의 무대에 놓인 아주 작은 무대라고, 그 위에서 인간이 벌인 전쟁과 권력 다툼과 영광과 비극이 모두 한 티끌 위의 소동이라고.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한마디를 보태고 싶어집니다. 작다는 것이 곧 하찮다는 뜻은 아니지 않냐고. 저 광막한 어둠 속에서 저렇게 작은 점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설명하기 어려운 기적 아니냐고.
그 사진이 찍히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또 다른 감동이 있습니다. 보이저 1호가 그 사진을 찍는 데 걸린 시간은 0.72초였습니다. 그런데 그 0.72초를 위해 탐사선은 12년을 날았습니다. 1977년 지구를 떠나 목성과 토성을 지나고, 천왕성과 해왕성 너머의 공간을 가로질러, 마침내 태양계 끝자락에서 뒤를 돌아본 것입니다. 그렇게 찍힌 사진이 전파에 실려 지구로 돌아오는 데 또 5시간 36분이 걸렸습니다. 그 긴 여정 끝에 도착한 한 장의 사진이 인류에게 던진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사실 그 사진은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이저 1호의 공식 임무는 이미 끝나 있었습니다. 목성과 토성을 탐사하고 데이터를 전송하는 것이 원래 목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칼 세이건이 NASA를 설득했습니다. 멀리 떠난 탐사선이 한 번만 뒤를 돌아보게 해 달라고. 물론 처음에는 거절당했습니다. 역광이 카메라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세이건은 포기하지 않았고, 수년간의 설득 끝에 결국 허가가 났습니다. 만약 그가 그 집요함을 잃었다면, 우리는 그 사진을 영영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과학의 역사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참 많습니다. 쓸모없어 보이는 질문을 붙들고 놓지 않는 사람들, 당장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일에 오랜 시간을 쏟는 사람들. 그리고 그 끝에서 세상을 바꾸는 무언가가 나옵니다.
우주를 오래 연구하다 보면 큰 숫자에 무뎌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입니다. 숫자를 다루면 다룰수록 그 숫자가 가리키는 것의 실제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60억 킬로미터라는 거리는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몸으로는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빛의 속도로 달려도 다섯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 지구에서 달까지의 약 1만 5천 배. 그 거리에서 돌아봤을 때 지구가 저렇게 작다면, 우주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지구는 또 얼마나 작은 것일까요. 우리 은하 안에만 수천억 개의 별이 있고, 그런 은하가 우주에 약 2조 개 있습니다. 그 숫자는 인간의 직관이 닿지 않는 영역입니다. 지구 위 모든 해변의 모래알보다 우주의 별이 더 많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으실 겁니다. 그 광대함 속에서 지구는 점 하나이고, 인간은 그 점 위의 점보다 작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작음을 알면 알수록 지금 여기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늘 아침 창으로 들어온 햇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지나치듯 나눈 짧은 인사. 그런 것들이 예전과 다르게 보입니다. 우주적인 시간과 공간의 규모 속에서 지금 이 순간 여기 살아 있다는 것이, 생각해 보면 정말 기이하고 특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허무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느낌. 멀리서 바라볼 때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는 것처럼.
그 사이 우주 탐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화성을 누비는 탐사 로버, 목성 위성 유로파의 얼음 아래 존재할지 모르는 바다, 태양계 너머 수천 개의 외계 행성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지금 이 순간에도 138억 년 전 우주의 첫 빛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멀리 보게 되었고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도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우주를 이루는 물질과 에너지의 95퍼센트는 아직도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라는 이름의 미지입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고작 5퍼센트입니다. 그 겸손함이 과학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다 안다고 느끼는 순간 질문이 멈추고, 질문이 멈추는 순간 과학도 멈추니까요.
이 책은 그 감각에서 출발합니다. 우주를 들여다보면 지구가 보인다는 것, 지구를 제대로 보면 지금 이 삶이 달리 보인다는 것. 과학이 경이로움을 설명해 줄 수는 있지만 경이로움 그 자체를 없애지는 못한다는 것. 오히려 더 깊이 알수록 더 깊이 놀라게 된다는 것. 망원경으로 먼 우주를 들여다보던 시선이 결국 지구로, 그리고 이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보이저 1호는 그 사진을 찍은 뒤 카메라를 껐습니다. 더 이상 뒤를 돌아볼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지금 보이저는 태양계를 완전히 벗어나 성간 공간을 홀로 여행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물체 중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것. 그것이 지구로 보내오는 신호는 도착하는 데 스물두 시간이 걸리고, 신호의 출력은 고작 22와트입니다. 냉장고 안 전구 하나 정도의 에너지입니다. 그 희미한 신호를 우리는 아직 받고 있습니다.
이 책이 그런 신호였으면 합니다. 광대한 우주에서 날아온, 작지만 끊기지 않는 신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바라보며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함께 되묻는 일. 그것이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