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어떻게 태어날까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복잡합니다

by 김민재

지구가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이것을 진짜로 실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 땅 위에 있었고, 우리의 부모님도 그랬고, 부모님의 부모님도 그랬습니다. 즉, 지구는 늘 여기 있었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46억 년 전으로 돌아가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가스와 먼지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름. 그것이 지구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구름이 어떻게 행성이 되었을까요?




이야기는 중력에서 시작됩니다. 가스와 먼지로 이루어진 성간 구름은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수축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서 근처에서 초신성이 폭발하는 등의 외부에서 충격이 가해지면, 그 충격파가 구름을 압축시켜 수축을 촉발하기도 합니다. 수축이 시작되면 중심부의 밀도가 올라가고 온도가 높아지면서 결국 핵융합이 시작됩니다. 별이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우리 태양도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별이 태어날 때 나머지 물질들은 그냥 사라지지 않습니다. 중심으로 몰리지 못한 가스와 먼지들은 회전하면서 별 주변에 납작한 원반 모양으로 퍼집니다. 이것을 원시행성계 원반(protoplanetary disks)이라고 부릅니다.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의 모든 행성들이 바로 이 원반 안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이 원반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로, 수백 광년 밖의 별 주변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똑같은 과정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즉, 우리 태양계의 탄생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우주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매우 평범한 과정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평범함이 오히려 경이롭습니다.




사실, 원반 안에서 행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험난합니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먼지 알갱이들이 서로 달라붙으면서 시작됩니다. 자갈이 되고, 바위가 되고, 산 크기의 덩어리가 되고, 수킬로미터 크기의 미행성체(Planetesimal)가 됩니다. 이 과정이 이미 수만 년에서 수십만 년이 걸립니다. 미행성체들이 서로 충돌하고 합쳐지면서 더 커집니다. 커질수록 중력이 세지고, 중력이 세질수록 더 많은 것을 끌어당깁니다. 눈덩이를 굴리면 점점 커지듯이, 한 번 어느 정도 크기를 넘어서면 성장이 가속됩니다. 이 단계에서 행성의 씨앗, 즉 원시 행성이 만들어지기까지 또 수백만 년이 흐릅니다.


또한, 이 과정이 언제나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달라붙는 충돌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 미행성체가 부딪힐 때 속도가 너무 빠르면 달라붙는 대신 산산이 부서집니다. 초기 태양계는 이 두 결과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혼돈의 공간이었습니다. 어떤 것들은 살아남아 자라났고, 어떤 것들은 부서져 다시 원료로 돌아갔습니다. 지구가 지금의 크기로 자라나기까지 약 4천5백만 년이 걸렸다고 추정됩니다. 46억 년의 지구 역사에서 탄생 자체에만 이미 수천만 년이 소요된 것입니다.




목성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목성은 태양계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행성입니다. 그 강력한 중력은 주변 공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는 원래 또 하나의 행성이 만들어질 수 있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성의 중력이 그 공간에 있던 미행성체들의 속도를 계속 흔들어 놓았습니다. 충돌 속도가 너무 빨라져 달라붙기보다 부서지는 일이 반복되었고, 결국 그 공간에는 행성이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수백만 개의 소행성이 떠돌고 있는 것은 행성이 되지 못한 미행성체들의 잔해입니다. 목성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 또 하나의 행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태양계의 지금 모습은 목성이라는 거대한 이웃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합니다.


지구가 현재의 크기에 가까워졌을 무렵,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약 45억 년 전, 테이아라고 불리는 화성 크기의 천체가 원시 지구와 충돌했습니다. 비스듬히, 엄청난 속도로. 충돌의 에너지가 너무나 커서 충돌체와 지구 표면 일부가 증발하면서 거대한 잔해 구름이 지구 주위를 뒤덮었습니다. 그 구름이 식고 뭉치면서 달이 되었습니다. 저도 매일 밤 하늘에 떠 있는 저 달이 사실은 그토록 폭력적인 충돌의 산물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지금도 가끔 달을 보면서 해당 사건을 떠올리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Screenshot 2026-02-21 at 22.54.09.png 지금도 가끔 달을 보면서 해당 사건을 떠올리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 Getty Images


이 거대 충돌설은 현재 달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이론인데, 달의 암석이 지구 맨틀과 조성이 매우 비슷하면서도 철이 적다는 사실이 중요한 근거입니다. 충돌 당시 지구의 핵은 이미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잔해에는 철보다 맨틀 성분이 주로 포함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달을 이루었다는 설명입니다. 물론 이 가설도 아직 완전히 검증된 것은 아닙니다. 달 탐사를 통해 얻은 암석 샘플들이 계속 분석되고 있고,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술이 발전하면서 충돌 과정에 대한 이해도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연구하는 원시행성계 원반을 떠올리면 이 이야기들이 더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하는 수백 광년 밖의 원반들 안에서는, 46억 년 전 우리 태양계가 겪었던 것과 똑같은 과정이 지금 이 순간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 원반 어딘가에서 먼지 알갱이들이 달라붙고 있을 것이고, 미행성체들이 충돌하고 있을 것이며, 어쩌면 행성의 씨앗이 지금 막 자라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수백만 년 후 그 원반에서 행성이 완성될 때, 그 행성은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도 오랫동안 알지 못했으니까요.


행성의 탄생이 이토록 긴 시간과 수많은 우연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나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충돌의 각도가 조금 달랐다면, 목성의 위치가 조금 달랐다면, 원반의 밀도가 조금 달랐다면 지금의 지구는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두고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말하기에는 그 과정이 너무 깁니다. 46억 년에 걸친 충돌과 파괴와 합체의 역사가 쌓이고 쌓여 지금 이 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결과물 위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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