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하늘과 파란 하늘은 같은 물리학의 두 끝
저는 이론 천체물리학자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자주 이용합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이유는 매우 다양합니다. 하지만 저는 모델링을 통해서 여러 가지 변수를 넣고 예상되는 관측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 자주 이용하곤 합니다. 이러한 결과 이미지도 천문학에서는 '관측'이라고 부릅니다.
아마, 컴퓨터 쟁이들은 크게 공감하실 겁니다. 저 역시도 새벽 '관측'을 하다 보면 일출을 가끔 맞이합니다.
밤새 데이터를 기다리며 관측실에 앉아 있다가, 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는 것을 보는 순간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검은 하늘이 아주 천천히 짙은 남색으로 바뀌고, 수평선 근처부터 보랏빛이 돌기 시작합니다. 그다음 어느 순간 붉은빛이 퍼지고, 태양이 올라올 무렵에는 하늘 전체가 주황과 분홍과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데이터를 들여다보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그 광경과 마주치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게 됩니다. 몇 번을 봐도 지겨워지지 않습니다. 그때마다 조금씩 다른 색이고, 조금씩 다른 느낌입니다.
일출과 반대되는 현상인 노을은 앞서 이야기한 레일리 산란으로 설명됩니다.
낮에 태양이 머리 위에 있을 때 태양빛은 대기를 비교적 짧은 경로로 통과합니다.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해가 뜨거나 질 때 태양은 지평선 근처에 있습니다. 빛이 지표면에 거의 평행하게 비스듬히 들어오기 때문에 같은 대기를 통과하더라도 경로의 길이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어집니다. 태양의 고도각이 낮을수록 빛이 통과하는 대기의 두께가 길어지는데, 지평선에 가장 가까울 때는 그 경로가 정오에 비해 약 서른 배 이상 늘어납니다.
그 긴 여정을 지나는 동안 파란빛에게는 수난이 이어집니다. 레일리 산란에 의해 파란빛은 빨간빛보다 훨씬 강하게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짧은 경로에서는 일부만 산란되어 일부가 우리 눈에 도달했지만, 경로가 길어질수록 산란될 기회가 계속 늘어납니다. 마치 체를 여러 번 거치는 것처럼, 통과하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파란빛이 점점 걸러집니다. 결국 그 긴 여정을 살아남아 우리 눈에 도달하는 빛은 산란을 훨씬 덜 받은 주황빛과 빨간빛입니다. 낮의 파란 하늘이 파란빛의 축적이라면, 저녁의 붉은 노을은 파란빛의 소진입니다.
즉, 원리는 같지만 조건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 조건의 차이가 전혀 다른 색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또한, 어찌 되었든 노을의 색은 단순한 빨간색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태양의 고도각이 낮아지면서 빛이 통과하는 경로가 점점 길어짐에 따라 색이 단계적으로 변합니다. 태양이 아직 어느 정도 높이 있을 때는 파란빛만 많이 산란되고 초록빛은 살아남아 하늘이 노란빛을 띠기 시작합니다. 더 낮아지면 초록빛도 대부분 산란되면서 주황빛이 강해집니다. 지평선에 가까워질수록 빨간빛만 남아 노을이 가장 짙은 붉은색을 띠게 됩니다. 해가 지고 나서도 한동안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은 지평선 아래로 내려간 태양빛이 높은 대기층에서 아직 산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름이 있으면 그 산란된 빛을 아래에서 받아 구름의 아랫면이 타오르는 것처럼 빨갛게 빛나기도 합니다.
노을의 색과 강도는 대기 상태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집니다. 화산이 폭발하면 이산화황과 화산재가 성층권까지 올라가 수년에 걸쳐 지구 전체를 둘러쌉니다. 대류권의 바람과 달리 성층권에서는 이 입자들이 씻겨 내려가지 않고 오랫동안 머무릅니다. 이 입자들이 추가적인 산란 매질로 작용하면서 파란빛을 더 강하게 걸러내고,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유난히 붉고 화려한 노을이 이어집니다.
1883년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화산이 폭발한 후 수년에 걸쳐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강렬한 붉은 노을이 관측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뭉크가 1893년에 그린 ‘절규’의 배경에 묘사된 핏빛 하늘이 이 화산 폭발의 영향이었을 것이라는 가설이 있습니다. 뭉크 자신도 일기에 피처럼 붉은 하늘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자연재해의 흔적이 예술 작품 안에 물리적으로 새겨져 있다는 이야기가 묘하게 느껴집니다.
1991년 피나투보 화산 폭발 이후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습니다. 성층권에 주입된 대량의 이산화황이 수년간 전 세계 노을을 물들였고, 동시에 태양빛을 부분적으로 차단하면서 지구 평균 기온을 약 0.5도 낮추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노을의 배경에 지구 기온을 낮추는 물질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물질이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화산에서 왔다는 것이 지구가 얼마나 연결된 시스템인지를 보여줍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도 노을이 유난히 강렬해 보이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아름다움의 배경에 건강을 위협하는 물질이 있다는 아이러니. 자연의 현상과 인간의 활동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아주 흔한 '노을' 하나가 이야기해 줍니다.
해가 뜨는 과정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검은 하늘이 남색으로 바뀌고, 보랏빛이 돌다가, 붉은빛을 거쳐 마침내 파란 하늘이 깨어나는 그 순서는 사실 파란빛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과정입니다. 태양이 낮은 각도에 있을 때는 파란빛이 거의 다 걸러지고 붉은빛만 남다가, 태양이 높이 올라올수록 경로가 짧아지면서 파란빛이 살아납니다. 노을과 낮 하늘이 하나의 연속적인 과정이라는 것, 붉은 하늘과 파란 하늘이 같은 물리학의 두 끝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밤새 기다린 데이터보다 그 새벽 하늘의 색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날이 있습니다. 비록 그날이 헛된 관측이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