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테크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
국내 기업에서만 계속 일을 하다 외국계 테크회사로 옮기면서 여러가지 조언들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미국인들에게는 무조건 자기 셀링을 엄청나게 해야하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사람만이 버틸수 있다는게 골자였지요.
국내 대기업과 가장 달랐던 점은 세가지 정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첫번째, 명확하게 정해진 업무가 없다.
그 누구도 이걸해라- 라고 명확한 지침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싱크 미팅(sync meeting, 관계부서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논의하는 미팅) 시 혹은 원온원(1:1 면담)을 하면서 이런거 한번 해보면 어때? 라는 의견 교류만 있을 뿐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신이 하나의 키워드를 잡고 일을 '시끄럽게'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성과를 중간중간 상사와 주요 부서장들에게 정리해서 어필해서 이런일을 내가 벌이고 있고, 이를 위해 어떤게 필요하다는 요구도 해야하고, 결과와 조직에 미친 영향은 어땠다고 셀링을 해야하는 것도 자신의 의무입니다.
두번째, 팀간 협업(cross-teams collaboration)이 필수이며, 관계부서의 도움을 가장 많이 얻어내는 사람이 승리한다.
저희 조직의 경우 부서별 역할이 매우 기능적으로 나뉘어져있었습니다.
예를들어 세일즈팀이 영업을 하기위해서는 세일즈를 기획하는 부서, 세일즈 자료를 만드는 마케팅 부서, 자료를 검토하는 법무팀, 그리고 영업에 필요한 운영을 도와주는 오퍼레이션 팀과 협업을 해야하는데요.
'협업'이라는것이 말이 좋아 협업이지 위에 열거한 부서들은 지원(support)조직으로 우리팀 뿐 아니라 다수의 팀을 지원하기 때문에, 다른팀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을 우리사업에 투자해달라고 조르고 달래고 협박하는 작업을 수도없이 많이 합니다.
지원부서들은 비즈니스의 규모에 따라서 우선순위를 매겨놓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비즈니스에는 많은 리소스를 확보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에게 지원을 해야하는 논리를 만들어 설득하고, 안되면 상부에 보고해서 위에서 찍어서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계속해야 합니다.
지원부서 리소스는 한정적이기 때문에 제로섬 게임이고- 누가 더 끌어다쓰면 누구는 더 못쓰게되는 구조- 여기에 참여하는 비즈니스 팀들의 경우, 이 과정이 어떤때는 매우 첨예하고 대립하는 양상으로 치닫기 일쑤여서 소위말하는 '쌈닭' 정신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다른 부서에 밀려 지원을 못받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마지막으로 무자비한 우선순위화입니다.
위에서 예를 들었던 지원부서의 경우, 수많은 요청사항들을 여러 부서에서 받게되는데요- 여기서 우선순위화를 통해 할걸 하고 안할걸 안하기 위해 일들을 걸러내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일도 다 못처리하고 욕은 욕대로 먹게되고, 조직원들은 번아웃이 옵니다.
따라서 이 지원부서의 사람들 또한 쌈닭이 됩니다.
딱 봐도 성공할 것 같은 비즈니스, 소위 '각'이 나오는 일들에 대해 지원을 해야 본인들도 그 공을 같이 누릴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 입장에서는 될만한 일에 대해서는 우선순위화를 하고 안될 것 같은 비즈니스에서 발을 빼기 위해 별별 방법들을 다 씁니다.
우리조직이 아닌 다른 어떤 지원부서에서 하는 것이 맞다라는 논리를 만들어 상사에게 보고하기도 하고, 같은 시간을 다른 비즈니스에 투입하는것이 비용대비 효율이 더 좋다는 것을 어필하거나, 현재 자원으로는 처리가 어렵다는 논리를 만들어 발을 아예 빼거나 추가적인 리소스를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용히 주어진 영역에서 일을 처리해나가는 것에 익숙한 사람에게 외국계 테크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과 잘 지내며 회사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쌈닭같이 그리고 득달같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해서 도움이 안될 것 같은 일은 피튀기게 피하고- 이런 정신으로 무장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