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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고 Nov 11. 2024

깜빡이 좀 켜고 들어와요

예고 없이 펑펑펑- 아무도 진지하게 해주지 않은 이야기

 

도로에서 깜빡이를 켜고 서행으로 들어오는 차들


나의 20대와 30대는 온전히 '나' 중심의 삶을 살았다.
20대 중후반에 대학교, 대학원을 마친 후에 취업을 하고 나서는 세상 걱정거리가 별로 없고 밝은 미래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젊고 건강하고 매사에 자신 있었으며, 나의 백그라운드도 꽤 괜찮은 것 처럼 느껴졌다.


세상 제일 어려운 공부를 한 것 같은 나만의 착각으로 보상심리가 작동해 이제는 인생을 좀 즐겨보자, 나를 위해서 살아보자라는 생각이었다.

직장에서는 인정받아 위로, 더 위로 올라가게 될 것이고, 그래서 권위도 재물도 생길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고 꽤 괜찮은 남자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에 성공하게 되고 그러면 나의 삶은 지금보다 더 풍족하고 풍요로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30대가 되서는 업그레이드가 한번 더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유학을 준비했고 회사와 유학준비를 병행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고 결혼할만 한 남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작은 조바심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내 자신만 '잘'챙기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20-30대를 잘 보내다가 40대 초반에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나라는 사람과 나의 인생은 거기부터 없어지고 온전히 육아와 돈벌이에 나의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집어 넣는 사람이 되었다.


육아휴직 후 복귀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후배한명이 나에게 "선배님은 꿈이 뭐세요?"라고 물었을때
나는 그제서야 더이상 나에게 꿈은 없고 전쟁같은 하루하루가 내 삶임을- 그리고 이런 전쟁이 평생 지속될 것이므로 꿈같은 것은 사치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낳은 이 아이를 스스로 자립할때까지 잘 보호하고 지키지 않으면 한 사람의 인생이 잘못 될 수 있다는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 때문에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정서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부족함 없이, 그리고 상처 없이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계속 옥죄어왔다.


물론 사람마다 편차가 있고, 성격적으로 아이와 나를 어느정도 분리가 가능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없지는 않을거라 생각하지만 내가 얘기해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같은 증상(?)을 겪는다.




여기에 덧붙여서 40대 후반이 되니 80대로 진입한 부모님과 가족의 이슈가 더해진다.

70-80대 때 암이나 중요한 수술을 요하는 병변, 혹은 치매 등 노인성 질병들을 가지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는 부모들이 얼마나 될까.  


내 자신을 챙기기는 것으 이미 물건너 갔고 아이 하나에 올인을 하고 있는데, 부모님 혹은 형제자매 이슈까지 터지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생활은 더 피폐해진다.


그러다 내 자신도 회사에서 밀려나는 40대후반-50대 초반이 되면 왠지 모르게 평생 유지가 될 것 같았던 내 소득원에도 변화가 생긴다. 퇴직 이후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이러던 와중에 나 혹은 내 배우자는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고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도 하는데, 중병이라도 걸리면 인생의 진정한 쓰나미를 맛보게된다.


육아, 부모님의 건강, 나의 재정상태, 나 혹은 내 배우자의 질병 이 중 어느 하나도 깜빡이를 켜고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이 모든 것이 예고없이 어느순간 한꺼번에 펑펑펑 나에게 다가올 수 있다.

왜 진작 아무도 이런 얘기를 진지하게 해주지 않았지?

좋은 학교를 나오고 회사에서 인정받아 승승장구하는게 꿈이던 사람들이 투자 실패로 빚더미에 앉거나 심각한 병에 걸리거나 과로사하는 일들이 왜 가까운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닐거라고 무의식적으로 거부했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는 이런 최악의 상황을 예상 하고 또 그 중 어느 정도는 미리 대비를 했어야 했던 일들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느냐고?

내 아이가 중고등학교 시기를 무탈하게 지나가게 하기위해, 유아-초등학교 시절 많은 경험을 하게끔 지원해주고 사랑과 관심을 저축-축적해놓고, 

소득이 꾸준히 들어올 때 버는 돈 보다 쓰는돈이 더 많아지는 10-20년 후 그 시기를 위해서 저축을 해놓고,

부모님이 아직 건강하다고 생각될때 부모님의 건강이 정말! 괜찮은 것인지 이것저것 검사해서 미리 큰병을 막아놓고,

나와 내 배우자의 건강도 지속적으로 체크하며 병원을 자주다니고,

원하지 않는 시기에 비자발적으로 소득이 끊길 날을 대비해 소득원의 다각화를 미리미리 준비해놓는 것


물론 내가 통제 가능한 변수들이 많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대비해놓고 이 인생의 쓰나미를 맞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거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런 당장 요원해보이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내 선배들 혹은 친구들의 일 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닥칠수 있다는 것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획이라도 세워 놓는다면 

나를 엄습해오는 뭔지 모를 불안감을 처리할 수 있는 조그마한 여유라도 생기고

당장 오늘 나의 하루가, 나의 모든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스트레스 받는데 오늘 냉삼에 소주를 먹을 것인가?"

"이번에 회사에서 받은 인센티브로 그동안 고생한 나를 위한 샤넬백을 선물하고 내 아이를 위한 몽클레어 패딩을 살 것인가?"

"주말에 부모님 집에 찾아뵐 것인가, 아니면 남편과 캠핑을 떠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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