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 1차 실패: 아무 일 없는 얼굴로 출근했습니다.

by 아가 대장군

얼려놨던 내 소중한 냉동 배아, 드디어 이 쪼그마한 아기들을 녹였다!


큰 결심 후, 시험관 1차, 동결배아 2개(2명...)를 이식을 하고 나서는, 하루하루가 전부 아주 긴 기다림이었던 것 같다. 몸에 각별히 집중하게 되면서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을 감각들이 하나하나 커졌다. 배가 약간 묵직하면 바로, 혹시...?라는 마음이 들었고, 괜히 졸리면 나 혼자 그럴듯한 이유를 붙였다. 가슴이 좀 욱신거리는 날은 기대를 했고, 아무 느낌이 없는 날은 왠지 불안했다. 이식 후 임신 결과를 확인하는 피검사까지, 그 짧은 며칠 동안 마음이 혼자 너무 멀리까지 가 있었다.


착상 관련 영상도 계속 봤다. 배아이식 후 증상, 임신 초기 변화, 며칠 차에 어떤 느낌이 있는지, 그런 것들을 밤마다 유튜브로 찾아봤다. 주차별로 태아가 어떻게 자라는지도 궁금해졌는데, 배아가 아직 내 몸 안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시기에, 나는 이미 그다음 장면들까지 혼자 온 힘을 다해 달려가서, 미리 내게 찾아올 것 같은 행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물며 산후조리원까지, 내 인근의 가능한 모든 옵션을 찾아봤다. 럭셔리부터 가성비 조리원까지. 조동(조리원 동기)이 중요한지 아닌지, 바깥 외출은 되는 곳인지, 밥은 맛있는지... 조리원 브이로그는 50개쯤 찾아본 것 같다.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는 시간들이었는데, 지금 보면 많이 짠하게 느껴진다. (아직도 산후조리원 관련 영상은 내 유튜브 알고리즘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피검도 안 했는데 조리원을 보고 있었던 사람. 결과는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마음은 먼저 거기까지 가 있었던 사람. 그때의 나는 너무 간절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들어간 시간과 돈과 몸의 고생을 생각하면, 처음이지만 한 방에 정말 잘 되면 좋겠다고, 아니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히 잘 될 것만 같았다. 나에게 불행은 닥칠 수 없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1차 이식이었는데, 배아를 네 개나 해동했다. (2개씩 얼려놓은 것을 두 세트 해동했음.) 그중에서 상태가 나은 두 개만 골라서 이식했다. 난자를 채취하고 배아로 만들어 냉동할 당시에는, 10개 동결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듣고 꽤나 많이 됐다며 기뻐했다. 이렇게 몇 개를 묶어서 얼리고 녹인다는 것을, 그리고 그중 상태를 보고 몇 개는 꼭 버려져야 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마냥 좋아했던 것 같다. 두 개의 배아, 아이가 될 가능성을 품고 있던 그 두 개는 안타깝게도 놓아주어야 했다.


나의 소중했던 1차 이식 배아 2개


그럼에도 이식된 두 개의 배아에 금세 온 마음을 쏟게 되었다. 그 순간의 내게는 가장 중요한 것들이었다. 놓아준 배아들은 그냥 어떻게든 놓아주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더 기대했다. 나에게 온 이 두 개는 꼭, 되지 않을까. 이 정도까지 왔으면, 한 번쯤은 내 편을 들어주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있었다.




결과는 비임신이었다. 착상도 안 된 것이다.

피검사 1시간 후 어플을 통해 결과를 알게 되고, 병원에서 한 번 더 전화를 주는데,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고 또 한 번 더 귀로 듣고 나서, 두 눈이 뜨거워지고, 배 안이 텅 비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가 생겼다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잡았던 걸 놓친 것도 아니었다. 무언가 들어왔지만 그것뿐, 처음부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허무했다. 실패라는 말도 과한 단어로 느껴졌다. 실패라고 하려면 적어도 시작은 있었어야 할 것 같은데, 시작도 못 해본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 병원을 나와서 한참을 걸었다. 누가 보면 그냥 평범한 직장인처럼 보였을 것이다. 가방을 메고, 외투를 입고, 다음 일정을 생각하는 얼굴로 걷는 사람. 그런데 속에서는 자꾸만 같은 말이 맴돌았다. 왜 안 됐지. 왜 아무 일도 안 일어났지. 왜 하필 내 몸에,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회사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험관을 한다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실제로 누가 눈치를 준 적은 없었다. 아마 말했어도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순간 내가 먼저 위축될 것 같았다. '이제 임신 준비하는 사람이구나, 곧 쉬게 될지도 모르겠네. 중요한 일정 맡기기 애매하겠네.' 누가 실제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들을 내 머릿속에서 계속 너무 또렷하게 만들어냈다. 사람은 종종 현실보다 상상에 먼저 질식하는 것 같다. 그래서 혼자서 끙끙 앓았다.


병원에 다녀온 날 오후에 그대로 회사에 갔다. 메일을 보내고, 회의실에 들어가고, 자료를 정리했다. 야근도 했다. 누가 무언가를 물으면 평소처럼 대답했고, 점심시간이 되면 옆자리의 조금 친하게 지내는 동료와 밥을 먹으러 갔다. 모든 게 평소 같았다. 그런 내 모습에 왠지 계속 소름이 돋았다. 내 안에서는 무언가 크게 무너졌는데, 내 일상과 밖은 너무 멀쩡했다. 사무실의 탁한 공기도 그대로였고, 업무 스케줄도 그대로, 회의 자료는 여전히 수정할 부분이 많았다.


꽤나 여러 사람들이 한 번씩 지나가며 물었다. 얼굴이 조금 안 좋은 게 티가 났나 보다. “요즘 피곤해 보이세요.”, "일이 많으시죠?" 나는 티 안 나게 억지로 웃으며 메마른 문장만 반복했다. “조금 바빠서요.” 사실이었지만, 내가 어떤 종류의 피로를 견디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을 뿐이다. 어쩌면 조금 더 티가 났을 수는 있겠다. 동료와 점심식사 후 커피 한잔을 사 들고 사무실로 복귀하며 걸어가는 길에, 자주 손에 힘이 빠져 커피를 계속 패딩 소매에 여러 번 쏟았다. 동료들은 내가 자꾸만 커피를 쏟아서 패딩을 안타까워했지만, 나는 내가 너무 안타까웠다. 화장실에서 패딩 소매를 헹궈낼 때마다 눈물이 났다.


1차 실패가 더 무서웠던 건, 단지 이번에 안 됐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남은 배아들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직 여섯 개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여섯 개가 전혀 든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 3일 배아였고, 아주 좋은 등급이라고 할 만한 배아도 없었다. 그나마 좋은 배아들 4개나 1차에 모두 소진해 버렸다... 정말 그나마 나은 애기들이었는데도, 착상이 되지 않았다. 그럼 남은 애들은 어떡하지. 다음은 될까. 다음도 안 되면 어떻게 하지. 난자 채취를 어떻게 또 하지? 이 질문들은 답이 없는데도 자꾸만 머릿속으로 돌아왔다. 한 번 실패하고 나니 숫자의 의미가 달라 보였다. 이식 전에는 열 개면 괜찮은 것 같았다. 한 번 실패하고 나니까 여섯 개는 너무 적게 느껴졌다. 같은 숫자인데, 내 마음에서만 값이 바뀌었다.


그래도 회사는 계속 다녀야 했다. 나는 출근했고, 회의도 많이 했고, 자료를 정리하고, 내 장갑차를 사줬으면 하는 고객과 소고기를 먹으며 웃고 떠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음 2차 이식 날짜를 기다렸다. 그때의 나는 하루하루 안에 너무 다른 시간을 동시에 살고 있었다. 오전에는 장갑차 관련 자료를 읽고, 점심에는 유럽에 있는 협력업체와 화상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다음 주 병원 예약 날짜를 확인했다. 회사에서는 아무 일 없는 얼굴로 앉아 있었지만, 속으로는 다음 이식까지 며칠 남았는지 세고 있었다. 시험관은 병원에서만 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하루 종일 시험관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회의하다가도 하고, 메일을 보내다가도, 점심 먹다가도,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시험관을 한다. 몸만 필요한 게 아니라 표정까지, 괜찮은 척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다 시험관이었다.




1차 실패 뒤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기대를 크게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게 됐다. 몸의 작은 변화에 바로 이름을 붙이지 않게 됐다. 검색도 덜 하려고 애썼다. 그렇다고 마음을 접거나 미리 걱정해서도 안 됐다. 다음이 있으니까,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아서는 안되니까. 어쨌든 사람은 다음이 있으면 또 버티는 것 같다. 이번엔 안 됐지만, 다음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생각 하나로 다시 병원 예약을 하고, 다시 날짜를 계산하고, 다시 일상으로 들어간다. 나도 그랬다.


그래도 다시 출근하고 다음 배아를 다시 기다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