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성공, 그리고 치아가 괴사 했다!

원하던 일을 시작한 뒤에야 두려움이 선명해졌다.

by 아가 대장군

결국 이직에 성공했다. 오래 붙들고 있던 자기소개서와 면접 답변이 진짜 결과가 됐고, 꿈 많았던 공무원은 결국 방산 업체로 떠났다. 내가 멀리서 보며 멋있게 생각하던 세계. 국방부 장관, 무기 수출, 협상, 해외 고객, 사업 개발, 발표, 미팅. 듣기만 해도 가슴이 조금 두근거리는 단어들이 현실로 다가왔다.


처음에 솔직히 너무 좋았다. 이제 진짜 현실 세계로 가는구나 싶었다. 공무원으로 일했을 때는, 왠지 누가 잘 만들어 놓은 어떤 가상의 공간에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그때도 비교적 자유롭고 창의적인 업무를 맡았었지만, 기본적으로는 '하면 안 되는' 그리고 '무조건 해야 하는' 정해진 규정들이 항상 나를 둘러싸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공무원 명함 대신 회사 명함을 받았을 때, 나는 괜히 혼자서 자주 꺼내봤다. 색깔과 종이 재질까지 괜히 더 괜찮아 보였다. 회사 빌딩 외관도, 사원증을 찍고 들어가는 로비 스피드게이트도 왠지 전보다 다 멋져 보였다. 민간의 냄새가 싫지 않았다. (사람은 생각보다 얄팍한 데서도 동기부여가 된다.)




하지만 처음의 이 마냥 설레고 좋은 감정은 아주 짧았다. 업체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훨씬 거칠었다. 누가 대놓고 불친절했다는 뜻은 아니다. 회사를 가득 채운 공기가 그랬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컸고, 문장은 짧고, 결론은 항상 빠르게 내려졌다. 대화와 회의 중 뭔가를 모르면 물어보기 전에 이미 한 번 뒤처진 분위기였다. 다들 바빴고, 다들 날카로웠고, 모두 가끔씩 자리에서 혼잣말로 욕을 하곤 했다. 사람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재래식 무기, 무장, 파워팩, 현수장치, 대전차미사일, 생존성, 살상능력, 상황 인식장치, 고무궤도, 날개안정분리철갑탄..."같은 말을 입에 올렸다.

30mm 탄 종류 (출처: Northrop Grumman)


나는 그전에 무기를 다루는 중앙정부에 있었지만, 생각보다 방산 용어에 대해 깊게 알지 못했다. 이 사실이 꽤 충격적이었다. 사실, 정부 쪽에서 보던 시야와 업체에서 보는 시야는 완전히 달랐다. 나는 구조와 절차, 협력과 정책에는 익숙했지만, 이쪽은 달랐다. 여기서는 장갑차와 유도탄을 “다른 나라와의 국방•방산 협력을 위한 매개체”가 아니라 “팔아야 하는 제품”으로 봤다. 사용자가 왜 이 플랫폼을 사야 하는지, 경쟁사보다 무엇이 우위인지, 정비 효율성과 총 수명주기비용은 어떤지, 포탑 링 직경이 왜 중요한지, STANAG 4569(NATO 표준 방호 규격) 레벨이 실전에서 어떤 의미인지. 이런 것들이 중요했다.


그래서 이직 후 갑자기 굉장히 많이 겸손해졌다. 겸손이 아니라 거의 무력감에 가까운 느낌을 한동안 받았던 것 같다. 아침이 달라졌다. 원래 자주 지난밤 업로드된 웹툰을 보면서 출근을 했었는데, 매일 아침 장갑차 용어와 회의용 영어 표현을 외웠다. 학생처럼 계속 외우고 복습했다.


IFV(Infantry Fighting Vehicle, 보병전투장갑차)와 APC(Armored Personnel Carrier, 병력수송장갑차)를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입으로 설명하려고 하면 말이 꼬였다. Amphibious capability(수상 도하 능력), Combat Weight(전투중량), Cruising Range(항속거리)... 단어는 줄줄 나오는데, 정작 그걸 살아 있는 문장으로 만들려면 뇌가 멈췄다. 그래서 출근길에 계속 영어 약어를 보고, 점심 먹고 다시 보고, 퇴근하면서 또 봤다. 집에서는 밀덕 유튜브 채널을 탐색하고, 구독과 좋아요를 눌렀다.

출처: 나무위키




영어는 더 심했다. 한때 나는 영어(외국어)를 꽤 편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독일에서도 살았어서 외국인과 외국어로 말하는 데 거부감이 없고, 전 직장에서 내내 국제협력 업무를 했으니까. 그런데 막상 업체에 들어와 실무 영어를 다시 하려니 입이 안 열렸다. 머릿속에는 내용들이 있는데 혀가 배신하는 느낌이었다. 영어가 뇌 안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회의 준비하다가 혼자 중얼거린 적도 있다. “아 망했다...” 자신감 없는 기분이 자주 느껴졌지만, 그건 자신감의 문제 같은 게 아니었고, 생존의 문제였던 것 같다. 나는 여기서 빨리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굳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나는 여자였다. 이 사실은 굳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계속 느껴졌다. 회의실에 들어가면 낮은 목소리와 큰 체격들, 짙은 담배향이 먼저 공간의 10분의 9를 차지했다. 항상 알 수 없는 압박감과 긴장감이 느껴졌다. 남자들 사이의 계층 구조, 날카로운 매출과 수익 분석, 장비 얘기, 형님 아우 하는 분위기, 오래 쌓인 네트워크, 우르르 몰려가는 담배 타임... 나는 그 안에 새로 들어온 사람이었고, 거기다 여자였고, 거기다 정부 기관 출신이었다. 이 세 가지가 겹치면 사람은 괜히 더 똑똑해 보여야 할 것 같고, 더 강해 보여야 할 것 같고, 절대 허술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그 기분을 아주 자주 느꼈다. 회의실에서는 조금 더 또렷하게 말하려 애썼고(처음에는 매번 뭔 말을 할 때마다 염소처럼 덜덜 떨리는 걸 꾹꾹 누르려고 무진장 애썼다.), 아는 척은 하지 않되 너무 모르는 티도 내지 않으려 했다. 정말 피곤한 균형이 내내 필요했다. 너무 세게 말하면 무례해 보일 수 있고, 너무 부드럽게 말하면 존재감이 사라질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남자 어른들이 군 경험과 오랜 경력들을 바탕으로 똑같은 말을 한 번 더 정리해서 말하면 “좋은 포인트네요”가 되고, 내가 처음부터 말하면 그냥 회의 공기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은 순간도 있었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서 그냥 속으로만 생각했다. 아, 또 시작이네. 회의마다 너무 피곤했다. 못할까 봐, 기대를 못 맞출까 봐 무서웠다. 괜히 데려왔다는 생각을 들게 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더 오래 남아 있었다. 야근은 금방 일상이 됐다. 자료를 다시 보고, 장갑차와 대드론 체계 사진을 띄워놓고 뭐가 어디에 달려있는지 숨은 그림 찾기를 하고, 기술 제안서 문장을 고치고, 작전요구성능서를 읽고, 해외 고객 질문에 답을 준비하고, 경쟁사 자료를 뒤지고, 연구원님들을 붙잡고, 다시 영어 표현을 다듬었다.




그러다 해외 출장을 갔다. 출장은 밖에서 볼 때는 멋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가장 빨리 닳는 방식 중 하나다. 이코노미석을 타고 18시간을 날아가서 1박 3일간 유럽에 머물다 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낮에는 회의, 저녁에는 비즈니스 만찬, 밤에는 협력업체 사람들과 어색한 미소를 유지한 채 파티 비슷한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실제로 칵테일파티도 많은데, 이런 장소에서 함께 즐기되 절대 취하면 안 된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파티에서 만은 Relax 하고 싶어 하는 고객을 붙잡고 슬쩍슬쩍 업무 정보도 캐내야 한다. 대체로 매우 싫어한다.) 웃으면서 와인을 들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내일 발표 순서와 보고 포인트를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오면 끝이 아니다. 자정이 넘어서 노트북을 열고 보고서를 쓴다. 누구를 만났고, 어떤 얘기가 나왔고, 상대 반응은 어땠고, 다음 액션은 무엇인지. 형식은 늘 간결해야 하고, 내용은 빠짐없어야 한다. 완성되면 검토를 받고 한국 본사에 실시간으로 보고도 해야 한다. 새벽 3시쯤 되면 호텔 조명이 너무 차갑게 느껴진다. 그 시간에 머리를 감을 힘도 없어서 대충 묶고, 눈화장을 대충 지우고 침대에 누우면 생각이 든다. 내가 진짜 지금 무기를 팔고 있구나. 이 문장은 가끔 멋있었고, 자주 너무 힘들고, 가끔 무서웠다.


나는 원하던 세계에 들어와 있었다. 해외에서 협상하고, 수출을 논의하고, 장갑차를 설명하고,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그걸 멀리서 볼 때는 거의 영화 같았는데, 막상 그 안에 들어오니 영화보다 숙취와 피로와 긴장성 위염 쪽에 가까웠다.




그래도 좋았다. 정말로, 그래도 좋았다. 그 세계는 사람을 갈아 넣는 방식이 세련되지 않았지만, 동시에 엄청나게 매혹적이었다. 내 명함 한 장이 외국 장관님, 대사님, 고위 관료책상 위에 올라가 있고, 내가 정리한 문장이 제안서에 들어가고, 내가 준비한 답변이 실제 사업의 흐름에 영향을 준다는 것. 이런 감각은 중독성이 있었다.

(살상무기 판매 자체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따로 논의할 만한 주제이지만, 나는 정부에 속해있을 때부터 방산업계라는 업종과 무기 획득, 수출 같은 직무가 평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매우 중요한 일이라 믿으며 이 분야에서 진심을 다해 일하고 있음을 미리 말씀드린다.)


그리고 아주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신이 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귀여웠던 것 같다.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갑자기 반포 래미안 원베일리 거실에 서 있는 것도 아니고, 무기 판매 대금의 몇 퍼센트를 월급에 더 얹어서 떼 주는 것도 아닌데(그냥 월급쟁이다.), 그때는 진짜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금보다 나은 동네, 더 안전한 길, 밤에 집에 들어갈 때 주변을 덜 의식해도 되는 삶. 인도 없는 길 가장자리를 오토바이 피해 걷지 않아도 되는 삶. 그게 갑자기 아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 덜 불쾌한 퇴근길, 조금 더 단정한 아침 풍경, 그런 걸 위해서 어렵게 선택한 길. 나로서는(남들이 보기에도)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을 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진짜로 잘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더 무리했다.

강남 풍경


그러다 어느 날 치통이 왔다. 치아 색깔도 좀 탁해졌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가 하나 괴사했다고 한다. 몸이 먼저 고장 나고 있었다. (사람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가 다 빠진다는 말이 진짜였다.) 영구치 옆에 있는 앞니가 갑자기 하나 없어졌다. 그런데 치과를 다녀와서도 나는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이 하나가 죽어가고 있는데도 장갑차 제안서 표현을 붙잡고 있어야 했다. 이놈의 회사. (결국 임플란트도 실패했다.)


사람 몸은 왜 이렇게 정확한 방식으로 신호를 보내는지 모르겠다. 너 지금 너무 무리하고 있다고. 그런데도 멈추지 못했다. 재밌었고, 힘들었고, 무서웠고, 자극적이었다. 나는 그 세계에 깔려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동시에 그 세계 안에서 더 커지고 여기를 내가 언젠가는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제일 문제였다. 사람은 원하던 걸 얻으면 행복해질 줄 아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원하던 걸 얻은 뒤에는 거기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꿈은 나를 문 앞까지는 데려다주었지만, 그 안에 들어간 다음부터는 보호 장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나는 매일 그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매일매일 지쳐갔다. 거의 10개월 동안 그랬다.


적응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했다. 버텼고, 당황했고, 외웠고, 틀렸고, 다시 버텼다. 많이 울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이대로 가면 커리어도, 몸도, 가정도 전부 반쯤 부서진 상태로 끌고 가게 될 것 같았다. 나는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는 겨우 겨우 살아남고만 있었다.




그래서 사실, 이직 후 1년이 다 된 시점에 와서 다시 임신을 생각했다. 커리어의 경로가 이제는 정리되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커리어는 끝이 없었고, 이 속도는 내가 멈추지 않으면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삶은 자리를 잡고 나면 임신을 준비하게 해주는 구조가 아니었다. 그냥 계속 달리게 해 놓고, 네가 알아서 틈을 찾으라고 한다.

그 틈을, 나는 더 늦기 전에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얼려놓은 내 10개의 자신감, 냉동 배아들을 드디어 만나기로 결심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