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인 Jul 18. 2019

엄마는 요리를 포기했다

나는 집밥이 그립지 않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 중 하나가 ‘집밥이 그리워’이다. 집밥이라는 것은 대체 뭔가. 뭐 얼마나 좋으면 그립기까지 한 것인가. 내가 먹은 집밥은 대체로 엄마 지순이 한 요리의 실패작이었다. 지순의 밥을 한 번이라도 먹어봤으면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 김민희의 말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먹는 거요? 귀찮아요.’


지금도 다이어트 자극 명언이라고 떠도는 말이다. 지순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먹는 걸 귀찮아하고, 식욕도 없다. 입이 짧고 음식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 유명한 고깃집을 가도 시큰둥하며 제일 싫어하는 식사는 뷔페. 좋아하는 음식은 김밥. 이유는 먹기 편해서. 뷔페에서 김밥을 집어 먹는 미련한 사람, 그게 바로 엄마 지순이다. 그럼에도 지순은 매일 아빠의 아침밥과 저녁밥을 차렸다. 우리 가족은 지순의 설익은 밥을 먹으며 출근을 하고, 대학을 가고, 독립에 성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식구가 다 모인 식탁에서 지순이 문득 자신이 끓인 김치찌개를 먹으며 입을 열었다.


“김치찌개가……정말 맛이 없지 않니?”


차마 말을 하지 못해서 김치만 건져 먹던 아빠와 나는 잘못을 들킨 사람들처럼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언니는 연신 기침을 했다. 지순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난 요리에 흥미 없어.”


지순은 그 이후 요리를 포기했다. 지순은 음식을 만드는 시간을 음식을 사 오는 시간으로 대체했다. 동네 시장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기 시작했고 아빠가 좋아하는 갈비탕을, 도가니탕을 사 와 냄비에 끓였다. (불가피하게 요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대부분은 재료를 부치거나 굽는 게 전부였다.) 아빠는 지순이 사온 갈비탕 국물을 남김없이 해치웠다.

    

어렸을 때 나는 음식 '맛있게' 잘해주는 엄마가 부러웠다. 친구가 우리 엄마가 만든 갈비찜 진짜 맛있는데, 우리 엄마는 삼계탕 진짜 잘해,라고 말할 때 나는 지순이 뭘 잘했는지 곰곰이 떠올렸다. 지순은 파무침을 잘했다. 파를 간장소스 같은 것에 무치는 것……그런 것도 요리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떠올려보면 지순은 계속 뭔가를 시도했다. 지순이 노트에 요리레시피를 적고,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고, 내가 지순의 어깨너머 요리 과정을 훔쳐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나도 갈비찜과 삼계탕을 먹었다. 맛을 생생히 기억해낼 수는 없는 오묘한 맛이었지만, 어쨌든 음식의 모양새는 갖추고 있었다.

    

요리를 계속 실패하는 엄마가 있다는 건, 의외의 사실을 알려주기도 한다. 우리 집엔 명절이 되면 식자재 선물이 자주 오는 편이다. 아빠의 회사 거래처 직원들에게서 선물이 오는 데, 돈 주고 사기엔 비싼 전복, 게, 문어 같은 해산물부터 한우세트까지 다양했다. 그럴 때마다 지순의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이 보였다. 이것들을 대체 다 어떻게 요리하란 말이냐. 결국 식재료가 든 선물세트들은 친척들의 몫이 되곤 했다. 나는 그게 너무 아까웠다.

     

나는 모든 선물세트가 남들에게 넘어가기 전에, 팔을 걷어붙였다. 유튜브를 보며 전복을 손질해 버터에 굽고, 따로 제거한 내장으로 전복죽을 끓이고, 게껍질을 분리해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을 담갔다. 나한테 요리는 즐거움이자 창작의 영역이었다. 왜 진작 안 하고 지순에게 바라기만 했지? 나는 내가 요리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요리 못하는 엄마’라는 것이 아기 싫어하는 엄마처럼 이상하게 생각되던 시절이 있었다. (둘 다 전혀 이상한 게 아닌데) 그리고 그게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정말 지순처럼 먹는 것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 매일 사인분의 몫을 요리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고역스러운 일일까. 매일 저녁, 눈치 없이 ‘엄마, 엄마 요리는 맛이 왜 이래? 나 이거 해줘, 이렇게 더 해줘.’ 칭얼거렸던 어린 내가 부끄러웠다.

     

대학에 입학하고 자취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 인분의 삶조차 거뜬히 해결하지 못하고 매번 미끄러지는 나를 보며 지순이 떠올랐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만 매일 요리를 하는 것은 별개구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음식이 있을 때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을 뿐이지.     


밥통에 밥이 있는데도 반찬 하는 것이 귀찮아서 자취방 앞에 있는 밥버거를 사는 나를 보며, 밥 먹는 거조차 그렇게 귀찮아하는 지순은 대체 이십 년 동안 어떻게 가족의 밥을 해왔을까, 생각했다.

     

지순이 ‘집밥’ 하기를 포기함으로, 우리 집에는 나른한 평화가 찾아왔다. 아빠는 간이 잘 밴 반찬과 탕을 먹을 수 있고 나는 내 식대로 나의 요리를 한다. 지순은 김밥천국에서 잘 말아놓은 김밥을 먹고, 밥하는 시간에 조용히 책을 읽고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한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주말에 시간을 맞춰 함께 외식을 한다.

     

나는 여전히 '엄마의' 집밥이 그립지 않다. 집밥을 떠올리면 힘겹게 뭔가를 만들어내고 실패하는 지순의 얼굴이 자꾸만 어른거리기 때문이겠지. (정말이다! 맛이 없어서가 다는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경치료를 하다가 눈물이 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