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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Jul 12. 2024

마음의 파도타기

#4 감정의 복잡성, 심리학으로 살피기, 한(恨)

동료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후,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폭풍을 이해하려 애썼다. 심리학자로서 꽤 오랜 기간 감정을 연구해 왔지만, 이렇게 강렬하고 복잡한 감정을 직접 경험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가슴 한구석의 무거움이었다. 마치 누군가 큰 돌을 올려놓은 것처럼 숨이 막혔다. 내 마음을 짓누르는 이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찰스 다윈의 저서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The Expression of the Emotions in Man and Animals)에 따르면, 감정은 우리의 생존을 돕는 도구라 했다. 우리가 누군가의 부재를 슬퍼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앞으로 더 소중히 여기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이는 우리의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고, 집단의 결속력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이론 이다. 나 역시 이 경험을 통해, 이 이론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하루는 동료와 함께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문득 울컥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연구가 떠올랐다. 바로 '감정이 우리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배고픔이라는 느낌이 음식을 섭취하도록 만들듯이, 슬픔도 우리가 감정적으로 균형을 맞추도록 돕는다. 동료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은 그가 내 삶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를 깨닫게 하고, 그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도록 만들었다. 사회심리학자 데이나 듀린의 연구에 따르면, 감정은 우리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원활하게 하는 '사회적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함께 슬픔을 나누고 표현함으로써 다른 이들의 위로를 받고, 기쁨을 나눔으로써 유대감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여러 이론들은 각기 다른 관점에서 감정의 본질을 설명한다. 윌리엄 제임스와 칼 랑게는 신체 반응이 감정을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동료의 부고를 들었을 때, 가슴이 먼저 아프고, 그다음 슬픔을 인식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월터 캐논과 필립 바드는 역시 같은 선상에서 몸과 마음을 설명했지만, 일어나는 시간차에 대해 시선은 조금 다르다. 감정과 신체 반응이 동시에 일어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동료의 부고를 들은 순간, 충격과 함께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던 이 순간은 조금 더 윌터 캐논과 필립 바드의 이론에 부합할 듯하다.


감정은 정말로 복잡하다. 동료의 죽음을 맞이한 나는 슬픔, 분노, 그리고 죄책감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했다. 슬픔은 동료를 잃었다는 상실감에서 비롯되었다. 매일 함께했던 그가 이제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는 현실은 깊은 슬픔을 불러일으켰다. 동시에 나는 분노를 느꼈다. 왜 그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떠나야만 했는가? 그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나를 화나게 했다. 더 나아가, 그를 충분히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내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을까? 그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더 가까이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이런 생각들은 나를 깊은 자책감에 빠지게 했다.


이 세 가지 감정은 단순히 각기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 슬픔이 깊어질수록 분노가 커졌고, 분노가 증폭될수록 죄책감이 강해졌다. 마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복잡한 감정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단순히 한 가지 접근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심리학적, 생물학적, 그리고 사회문화적 요소들이 모두 통합된 접근이 필요하다.


뇌과학은 이러한 감정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신 뇌 영상 기술인 fMRI(기능적 자기 공명영상)와 PET(양전자 방출 단층촬영) 덕분에 우리는 이제 감정과 관련된 뇌의 활동을 직접 눈으로 관찰할 수 있다. 예전에는 감정이 뇌에서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추측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감정이 일어날 때 뇌의 특정 부위가 어떻게 활성화되는지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fMRI는 뇌의 혈류 변화를 측정하여, 특정 감정이 발생할 때 뇌의 어떤 부위가 활발하게 활동하는지를 보여준다. PET 스캔은 뇌의 대사 활동을 측정하여, 감정이 일어날 때 뇌가 어떻게 에너지를 소비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기술들을 통해 우리는 감정이 단순히 심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신경과학적으로도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편도체는 감정 처리, 특히 공포와 불안 같은 부정적 감정의 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동료를 떠올릴 때마다 편도체가 활성화되는 것 같았다. 마치 내 뇌 속 깊은 곳에서 작은 경보음이 울리는 듯한 느낌이었달까. 조셉 르두의 연구를 비롯한 여러 뇌 영상 연구들은 편도체의 이런 역할을 잘 보여준다. 편도체는 감정적 자극, 특히 위협적인 자극을 빠르게 처리하여 우리 몸이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해 준다. 동료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은 내 편도체에 강력한 '위협 신호'로 각인된 것 같았다.


흥미로운 부분은 편도체가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만 처리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긍정적인 감정에도 반응한다. 동료와의 즐거웠던 기억들을 떠올릴 때도 편도체가 활성화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는 편도체가 감정의 강도나 중요성을 평가하는 데에도 관여한다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 할 부분은, 편도체와 기억의 관계다. 편도체는 감정적으로 중요한 경험들을 더 강하게 기억하도록 돕는다. 그래서인지 동료와 관련된 기억들은 유난히 선명하고 생생했다.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느껴졌달까. 하지만 이런 편도체의 과도한 활성화가 항상 좋은 건 아니다. PTSD 환자들의 경우, 편도체가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해서 사소한 자극에도 강한 불안이나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나 역시 한동안은 병원 복도를 걸을 때마다 동료와 마주칠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혔었다.


다행히 우리 뇌에는 편도체의 활동을 조절하는 장치가 있다. 바로 전전두엽이다. 전전두엽은 이성적 판단과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영역으로, 편도체의 과도한 반응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차 동료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 상실감을 조금씩 다스릴 수 있게 되었는데, 아마도 내 전전두엽이 열심히 일한 덕분일 거다.


감정은 생물학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문화적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문화심리학자들의 연구는 감정의 경험과 표현이 문화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준다. 폴 에크만의 연구는 기쁨, 슬픔, 분노, 공포, 혐오, 놀람의 6가지 기본 감정이 문화를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인식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문화에 따라 매우 다르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마츠모토의 연구에 따르면,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감정 표현이 억제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감정 표현이 더 자유로인 편이다. 이렇게 각 문화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한 규범과 기대가 다르게 한다.


언어 또한 감정 경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언어학자 안나 비즈딕의 연구는 각 문화마다 고유한 감정 어휘가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독일어의 'Schadenfreude'(타인의 불행을 보고 느끼는 기쁨)나 일본어의 'amae'(타인에게 의존하고 싶은 욕구) 같은 감정은 다른 언어로 정확히 번역하기 어렵다.


한국에는 '한(恨)'이라는 감정 어휘를 통해 아끼는 이의 죽음에 대한 깊은 슬픔과 억울함은 표현하곤 한다. '한'은 단순한 슬픔을 넘어 오랜 시간 가슴속에 쌓인 복잡한 감정을 함축하고 있다. 이 단어는 그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닌,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 깊이 남아있는 응어리를 의미한다.


'한'이라는 감정은 주로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며, 이는 좌절감과 함께 깊은 억울함을 동반한다. 동료의 죽음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단순히 그를 잃은 슬픔만이 아니라, 그 죽음이 불가피했을까라는 무력감과 불공평함에 대한 분노가 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으니, 이 단어야 말로 모든 감정을 안아갈 수 있는 유일한 단어 아닐까?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학문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선다. 그것은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 더 깊이 공감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동료의 죽음이라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나는 감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층적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여러분도 자신의 감정에 귀 기울여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속에서 여러분은 자신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이며,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풍요롭고 의미 있는 삶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이제, 감정 조절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감정을 어떻게 다루고, 조절하며,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감정 지능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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