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심리학자의 시선
묻지마 범죄, 정확히는 이상동기 범죄(異常動機犯罪)입니다. 이는 뚜렷하지 않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동기를 가지고 불특정 다수를 향해 벌이는 폭력적 범죄를 말합니다. 2022년 1월 경찰은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가 자칫 범죄의 동기가 전혀 없이 무차별적인 폭력을 일으키는 개인적 성향이 문제라는 인식을 줄 수 있어 범죄의 동기와 원인을 오해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상동기 범죄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글에서는 언론에서도 아직 사용이 되고 있고 일반인들에게는 더 익숙한 묻지마 범죄 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겠습니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묻지마 흉기사건들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많은 이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안겼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은 단순히 뉴스에서 보는 범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묻지마 범죄의 심리적 배경: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묻지마 범죄의 가해자들 중 많은 이들은 조현병, 우울증, 불안장애 등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질환들은 단순한 우울감이나 불안과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특히 조현병 같은 경우, 환자의 현실 인식이 크게 왜곡됩니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종종 환각을 경험하거나, 현실과 환상을 혼동하며, 망상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이런 상태는 스스로의 감정을 제대로 통제하기 어렵게 만들며, 이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최근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의 가해자도 조현병을 앓고 있었으며, 그의 폭력적인 행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현병의 증상 중 하나가 극단적인 사고와 행동이기 때문에, 이 환자는 자신의 상상 속 적이나 상황에 맞서 싸우는 것으로 느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보다 더 복잡합니다.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편견이 이러한 범죄를 더욱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뉴스에서 자극적인 사건을 단편적으로만 접하게 되는 사람들은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범죄자와 연관 짓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단편적인 보도는 많은 이들에게 정신질환이 범죄와 직결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줍니다. 실제로는 대부분의 정신질환 환자들이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정신질환자들이 폭력의 피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편견은 환자들이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만듭니다.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거부하거나, 치료를 받는 것을 주저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들은 자신의 상태가 악화될 때까지 도움을 받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극단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사회적 고립감: 현대 사회의 어두운 면
현대 사회는 개인주의와 디지털화의 물결 속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사람들 간의 대면 접촉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 고립감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웃과의 소소한 교류나 커뮤니티 활동이 자연스러운 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이 디지털 화면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만 소통하고,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기회는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고립감은 개인의 심리적 웰빙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고립감은 심리적 불안과 우울감을 악화시키며, 이는 개인의 전반적인 정서적 안정감을 해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사람이 혼자라고 느끼거나, 사회에서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할 때, 자아존중감은 급격히 떨어지고,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자아존중감의 상실은 더 큰 문제를 초래합니다. 개인이 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무시당한다고 느끼게 되면, 부정적 감정이 쌓여 내면의 분노와 좌절감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극단적인 감정이 쌓이다 보면, 결국 폭력적인 행동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깊은 불만을 품고 있으며, 이는 그들이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 중 하나입니다.
허나 현대 사회는 이런 고립감을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적 유대감을 증진하고, 사람들 간의 실제적 교류를 장려하는 정책과 프로그램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우울감과 분노: 사회적 불만의 폭발
지속적인 우울감과 사회에 대한 깊은 불만은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복잡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울증은 단순히 기분이 나쁘고 슬픈 상태를 넘어서, 감정 조절을 어렵게 만들며 개인의 사고와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자신을 처지나 사회적 상황에서 무력하게 느끼며, 이로 인해 내면의 감정이 극단적으로 표출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은 감정을 조절하기 어렵게 만들며, 이로 인해 내면의 분노와 좌절감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올 수 있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자주 깊은 절망감과 무력감을 경험하고, 일상생활에서의 작은 자극이나 스트레스에도 극단적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사소한 문제로 느껴졌던 일들이 우울증이 심화되면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으로 다가오며, 이는 결국 폭력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불평등이나 개인적인 좌절감으로 인해 불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만은 단순히 개인의 감정을 넘어, 사회 구조와 관련된 문제로 연결되기 쉽습니다. 특히 사회적 불평등과 불공정은 사람들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주며, 이는 자아존중감의 저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이나 재능이 공정하게 평가받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자신이 사회에서 무시당한다고 생각할 때, 그들의 불만은 커지고, 이러한 감정이 극단적인 행동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사회적 불평등과 불공정은 이러한 불만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불평등한 기회와 자원의 배분은 사람들 사이에 경쟁과 갈등을 일으키며, 이는 사회적 불만과 불신을 증대시킵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려고 할 때, 시스템의 불공정함을 목격하면 그들의 좌절감은 심화됩니다. 이는 자칫 사회에 대한 불신과 분노로 이어져, 극단적인 행동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종종 자신이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깊은 불만과 좌절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사회적 불공정과 자신에 대한 불만이 결합되면서, 결국 폭력적인 방식으로 그들의 감정을 표현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울증과 사회적 불만이 결합되어 극단적인 행동으로 표출될 가능성은 실제로 매우 높습니다.
사회적 요인: 문제를 확대시키는 요소들
언론의 자극적 보도: 문제를 악화시키는 주범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는 묻지마 범죄를 더욱 부추기고, 심각한 사회적 영향을 미칩니다. 최근 신림역 칼부림 사건에서는 피의자가 범행 전 ‘홍콩 묻지마 살인’을 검색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이는 언론 보도가 범죄를 모방하도록 유도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자극적인 언론 보도는 범죄를 단순히 보도하는 것을 넘어서, 범죄를 사회적 관심의 중심에 놓이게 만듭니다. 범죄의 세부 사항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범죄를 자극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이 현상은 심리학에서 '베르테르 효과'라고 불리는 현상과 유사합니다. '베르테르 효과'는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이 미디어에 의해 자극받고, 그 보도가 사람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쳐 유사한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범죄 보도에서의 베르테르 효과는 범죄가 대대적으로 보도될 때 유사한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메커니즘을 보여줍니다.
자극적인 보도는 또한 사회적 공포와 불안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범죄가 지나치게 부각되면, 사람들은 사회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강한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공포는 사람들을 더욱 방어적으로 만들며, 사회적 긴장을 높이고,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강화합니다. 그러나 이 두려움이 단순히 사회적 불안을 초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또 다른 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범죄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느낄 때, 이는 심리적 스트레스와 사회적 긴장을 증가시키며, 이로 인해 또 다른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자극적인 보도는 범죄를 미화하거나, 범죄의 세부 사항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새로운 범죄를 자극하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언론의 보도 방식에 대한 책임 있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범죄를 보도할 때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표현을 피하고,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보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범죄 예방을 위한 정보 제공에 초점을 맞추고, 범죄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접근 방식일 것입니다.
사회적 안전망의 부족: 문제의 악화
정신건강 서비스와 복지 제도의 부족은 현재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부족한 자원에 그치지 않고, 정신건강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며, 사회적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정신건강 지원 체계는 대부분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즉, 응급 상황이나 급성 위기에는 즉각적인 개입이 이루어지지만, 장기적인 치료와 지속적인 관리에는 충분히 신경을 쓰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예를 들어, 정신질환 환자가 급성 상태로 병원을 방문하면 응급처치는 받을 수 있지만, 퇴원 후에는 지속적인 치료 계획이나 장기적인 관리가 부족하여 상태가 다시 악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상황은 환자가 다시 위기 상황에 처하게 만들며, 이를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정신건강 전문인력의 부족 또한 큰 문제입니다. 정신과 의사, 심리상담사, 정신건강 사회복지사 등의 전문가가 부족하여, 각 지역에서 충분한 치료와 상담을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특히, 대도시와 지방 간의 불균형이 두드러집니다. 대도시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자원과 전문인력이 있지만, 지방과 소규모 지역에서는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을 기회가 제한적입니다. 이로 인해 지방 거주자들은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경제적 취약계층에 속하는 많은 사람들은 필요한 정신건강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들은 의료비와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증상이 심각해지더라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이들이 거주하는 환경이 열악하거나 복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 필요한 지원을 받기 더욱 어려워집니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이나 무주택자들은 정신건강 치료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부족하고, 이러한 경제적 부담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정신건강 서비스와 복지 제도의 부족은 단순히 개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 안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정신건강 문제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증상이 악화되고 사회적 기능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이는 범죄의 위험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신건강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적절한 치료와 지원을 받지 못하면, 스트레스와 불안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폭력적인 행동이나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커집니다.
현재 우리가 마주한 사회적 불안과 범죄 문제는 그 자체로 많은 어려움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앞으로의 사회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임상심리학자로서, 저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바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심리적 고통과 사회적 소외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종종 자신을 이해받지 못하거나 사회에서 소외된 느낌을 받으며, 이러한 감정이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를 단순히 범죄로만 한정 짓지 않고, 그 이면에 있는 개인의 심리적 고통과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포용적이고 따뜻해질 수 있다면,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작은 노력들이 모여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먼저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지원과 이해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들이 겪는 고통을 단순히 문제로 보기보다는, 함께 해결해 나갈 기회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사회적 연대와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입니다. 경제적 불안정이나 주거 문제와 같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공감과 지원의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언론과 미디어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범죄를 보도할 때 자극적인 접근보다, 예방과 해결의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신건강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지원 방법을 공유함으로써, 사회적 편견을 줄이고 이해를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 존중과 이해입니다. 서로의 차이와 아픔을 이해하고, 함께 나아가려는 노력을 통해, 보다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길이 때로는 어렵고 길어 보일 수 있지만, 우리는 함께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공감과 이해, 그리고 작은 노력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서로를 돕고 지지하며 함께 나아가는 그날을 위해, 모두 함께 노력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이 우리 사회를 더욱 밝고 희망적인 미래로 인도할 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