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dited ver)
만 두 살의 아이가 인간의 본능을 넘어서 인간의 자아를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개인의 의식 보다는 자신이 둘러싼 환경과 가르침에 순응하길 넘어서 자신의 고집,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대답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나이가 혹은 그 만큼의 시간을 지내온 작은 한 자아가 되자 아이는 울고, 웃고, 짜증도 내고, 사랑을 보여주기도 시작한다. 인간의 성장.
아이는 고작 두 살의 성장이지만 이제 사십이 되는 나에게는 내 지난 사십년의, 혹은 여자로, 엄마로, 사람으로서의 성장을 다시 되돌아 보게 하는 것이 육아의 미학이 아닌가.
셋째, 딸을 낳기 전 아들 둘만 키웠을 때는 아들들을 내가 원하는 혹은 내가 원해왔던 남성으로 키우기 위해 주력했다면 그래서 마치 사감학교의 선생처럼 아이들을 대했다면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면서 그게 좀 더 심해졌다면) 딸을 낳고서 생긴 해안은 내게 여자로서 내 딸 아이가 어떤 삶을 살길 원하는지, 어떤 것을 느끼고 어떤 것이 자기를 위한 것인지를 제대로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딸 아이를 낳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땐 이 아이는 무엇보다 내가 가지지 못했던 혹은 받을 수 없었던 '사랑받는 것이 그리고 사랑을 주는 것이 편안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엄마로서의 가장 큰 바램이었는데 이제 아이가 자아가 점점 생기면서 내게 보여주는 '개인성'을 보며 이 아이를 위한 나의 바램보다 아이가 자신 스스로 가지게 될 '생각과 본능'에 그리고 그것을 잘 이끌어 주는 부모가 좀 더 현명한 부모의 철학인 것 같다.
내가 걸어온 길을 내 딸에게 오롯이 설명할 길은 없다. 그리고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그녀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이해해 달라고 혹은 알아나 달라고 말하거나 고집하고 싶지도 않다.
그녀가 내가 느낀 고통과 아픔, 트라우마를 겪지 않고 온실 속 화초처럼 곱게 아름답게 성장해 그렇게만 살기를 원하는 것은 바람이긴 하지만 모를 일이다.
습작노트를 뒤지다 지금 쓰고 있는 상상하는 여자의 마지막 글로, 책 속에 마지막 페이지에 이 글을 넣어야지 하고 썼던 것이 2016년. 나를 위해 쓴 글이었지만 딸 아이가 생긴 엄마로 내 딸 아이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글이라, 메세지라, 내 인생을 통틀어 얻은 값진 교훈이라 기쁘게 행복하게 이 글을 올려본다.
I think everything had to happen in order for me to get to know 'who I really am today'.
- 내 인생에 일어난 모든 일,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은 오늘의 내가 진짜 누구인지, 무엇인지 알기 위해 거쳐온 시간이며 과정일 뿐임을 안다.
그리고 나의 딸도
아들들도
이 마음으로 가장 크게
제 달란트를 다해
꽉 찬 삶을 살아낼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엄마’가 되기를.
‘여자’로 ‘사람‘으로 살기를.
그리고
그간 제 글을 읽어준 고마운 당신들도.
Be every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