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는 여자의 정체성, 그 마지막 이야기 (Real Epilogue)
드라마, 영화로 유명한 "Sex and the city(섹스 앤 더 시티)"를 처음 본 건 아마 고등학교 다닐때였으니 2000년대 초반.
공부하기 싫어 주말 밤 늦게 채널을 돌리다 파편을 보듯 조금씩 보던 쇼를 필리핀 대학을 다니며 영어공부를 한다고 조금씩 다시 보았고 2007년 캐나다에 와 '블락버스터'라는 DVD 대여점에서 시즌을 몽땅 빌려 시즌 1부터 6까지 끊기지 않고 다 보았다.
작가가 되겠다고 정진하던 그 때, 꿈과 패션, 트렌드, 도시, 연애, 관계, 친구 등등의 드라마 속 주인공인 캐리 브래드쇼(사라 제시카 파커)는 워너비 아이돌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내가 프리다 칼로, 마돈나, 신사임당 대신 현실에서 선택한 유일한 아이돌이었다.
아무도 오고 가지 않는 시골에서 돈도 한 푼도 없이 그녀가 신던 마놀로 블라닉 슈즈를 상상하고 펜디 바게뜨 백을 들고 도시 어딘가를 누비며 끝도 없이 연애를 하고 글을 쓰는 그녀가 나의 미래라 믿던 시절.
그리고 그 소망이 그저 망망대해 위 작은 고무보트를 타고 있던 내게 언젠간 섬에 다다를 것이란 희망을 주었기에 열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칼라풀한 그녀의 이야기.
그러다 맞은 나이 사십.
올해는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옛날에 좋아하던 영화, 드라마들을 많이 다시 보았다.
좋아하는 대 배우들의 옛날 영화들, 이를테면 알 파치노, 키아누 리브스, 스칼렛 요한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그리고 좀 시간이 지났지만 훌륭한 레전드로 남은 시리즈들, 이를테면 반지의 제왕 시리즈, 왕좌의 게임, 섹스 앤 더 시티, 빅 뱅 이론 시트콤 등등을 집에서 빨래하면서, 설거지 하면서, 밥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새로 나온 영화나 드라마 대신 다시 본 예전 드라마, 영화 들을 다시 보았고 그러면서 새삼 예전엔 보지 못한 것들, 느끼지 못한 것들, 생각해 보지도 못한 것들이 많이 생겼다는 걸 느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많이 바뀐걸까? 어떻게 예전엔 이런 생각을 못했지?'
특히 섹스 앤 더 시티를 마흔에 다시 보니..
그렇게 멋져 보이고 아이돌로 삼고 싶을만큼 쿨해 보이던 캐리 브래드쇼라는 인물에게 나를 삽입시켜 상상해 낼 수 없다, 혹은 하고 싶지 않다란 생각이 들었다. 마흔의 나는 오히려 그녀의 친구인 샬롯에게 훨씬 더 공감대를 느낄 수 있고 주인공인 캐리보다 미란다와 사만다가 캐리보다 솔직히 더 나은 친구, 인간처럼 보여 조금 충격적이기도 했다.
(콕 찝어 말하자면) 캐리의 멋져 보이던 연애가 다소 폭력적이고 자기 자해로 보기 충분하기도 하고 또 자기 성찰의 여유도 끝도 없이 계속 이루어지는 것(마치 끊임없이 반복되는 인생 레슨처럼.. 웁스,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또 드라마 상 제법 좋은 친구관계를 이루고 있는 그녀와 나머지 친구들과의 관계가 마치 캐리를 중심으로 한 상하관계처럼 보이는 것,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끊임없이 위해 주는 친구들에게 조금은 Toxic하게 (어쩔땐 많이) 행동하는 것들이 많이 보여 솔직히 조금 부정적으로 보일 때가 많이 생긴 것을 보고 내가 달라진 걸까.. 변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 이런 정의를 내기로 했다.
지나치게 캐리에게 감정이입해 세상을 보던 이십대의 나는 그녀보다 그녀의 친구 샬롯의 인생이 더 괜찮다고 생각하며 어쩌면 샬롯의 인생과 가장 비슷하게 살고 있는 사십대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내 안에 캐리가, 혹은 미란다가, 혹은 사만다가 다 사라진건 아니다. 뭐랄까.
'I'm evolved.'
난 진화했어.
(포켓몬도 아니고.. ㅋㅋ)
스포츠를 봐도 그 스포츠마다 룰이 있고 목표가 있고
식물도, 동물도, 시간에도, 자연에도, 사람에게도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규율이 주어져 있어 그것에 맞춰 사는 것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그리고 읽고 있을 당신에게도 주어져 있다면..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삶이 우리가 이뤄야 할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주어진 끝도 없는 레슨이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살아온 삶은 나에게 앞으로의 삶을 가이드할 레슨이 틀림없다.
실패라고 생각한 과거의 흔적에 오늘의 성공의 자양분이 있고
가슴 아픈 추억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강한 심장을 있게 한 연습인 것.
가끔 내가 맞고 지나온 삶의 모든 시련과 고난이 오늘과 내일의 나를 준비하기 위한 레슨이었나 싶은 요즘.
늘 글을 써 왔지만 가장 나다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 가장 자신있게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상상하는 여자'를 쓰면서부터가 맞다.
'나'에 대한 글을 써야지, '내 이야기'를 해야지, 막연한 생각에 이면지 뒷면에, 포스트 잇 작은 공간에 문장 하나 둘 씩, 알바를 하면서 손님 없을 때 주문지 뒷 면에 쓰던 아이들을 공책에 정리해 2016년부터 이 곳 '브런치'를 통해 발행하기 시작했고
그 이야기들을 채워가며 막연하게 상상은 해 보았지만 십년(상상하는 여자의 총 집필기간)의 기간동안 생각보다 훨씬,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커지고 단단해져 있는 나를 보고 있는 내가 대견하다.
돌이켜보니 '상상하는 여자'는 나의 이야기이지도 했지만 상상하는 것들을 이뤄내는 꿈을 꾸는 여자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좀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유년을 보내고 자라느라 쉽게 잘 표현해내지 못했던 '진짜 나의 정체성'을 돌아보게 한 이야기이기도 했고, 전엔 상상도 해 보지도 못한 것들을 상상할 수 있게 된 더 커진 무대에 서게 된 오늘의 나를 스스로 단련해가며 위로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뜨거운 샤워를 마치고 수증기가 걷힌 거울 속 마침내 보이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를 있는 그대로 직시해 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I’m white and I’m black
https://youtu.be/DVDCNmdi7QI?si=6cAMRw9dVQSMmLZ3
I'm every woman, it's all in me
Anything you want done, baby, I'll do it naturally
I'm every woman, it's all in me
I can read your thoughts right now, every one from A to Z
Oh oh oh
Oh oh oh
I can cast a spell
With secrets you can't tell
Mix a special brew
Put fire inside of you
But anytime you feel danger or fear
Instantly I will appear
'Cause
I'm every woman, it's all in me
Anything you want done, baby, I'll do it naturally
Oh oh oh
Oh oh oh
I can sense your needs
Like rain on to the seeds
I can make a rhyme
Of confusion in your mind
And when it comes down to some good old fashioned love
That's what I've got plenty of
'Cause
I'm every woman, it's all in me
Anything you want done, baby, I'll do it naturally
I'm every woman, it's all in me
I can read your thoughts right now, every one from A to Z
Oh oh oh
Oh oh oh
I ain't braggin' cause I'm the one
You just ask me, and it shall be done
And don't bother to compare
'Cause I've got it
Oh oh oh
Oh oh oh
Oh oh oh
Ooooh
I'm every woman, I'm every woman
I'm every woman, I'm every woman
I'm every woman, I'm every woman
I'm every woman, I'm every woman
I'm every woman, I'm every woman
I'm every woman, I'm every woman
I'm every woman, I'm every woman
I'm every woman, I'm every woman
I'm every woman, I'm every woman
사십이 되어도 여전히 무언가를 상상하고 있는 지금,
삶은 제법 아름답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것들을 상상 하시라고.
무엇보다 '나를 위한 멋진 상상', 많이 하시라고.
그래서, 그렇게 그 길 위에서 '진짜 나'를 찾고
나라는 비싼 원석으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상태가 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시라고 꼭 얘기해드리고 싶다.
- 브런치에 지난 9년동안 '상상하는 여자'를 구독해 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곳에서 다 발행하지 않은 몇가지 나머지 에세이들은 '상상하는 여자'를 책으로 묶어 그 속에 실도록 할께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작가 정민지, 루나 드림.
10.24.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