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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찌 Apr 05. 2018

인간은 어리석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작년 이맘때 논문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위장병이 몇 달째 지속되었다. 병원에는 너무도 가기 싫어 버티다가 커피를 끊고 한 달 정도를 죽만 먹었다. 몇 달쯤 지나니 어느 순간 위장병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나는 밥을 열심히 먹고 커피를 마구 마셔 댔다.


한국에서 회-회덮밥-오징어 + 대게를 삼일 연속으로 먹고 탈이 나서 급성 위경련으로 일주일을 고생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속이 별로 안 좋다. 분명 작년 이맘때 위염 때문에 고생한 것이 너무 무서워 다짐하기를 다시는 음식을 빨리 먹지 않고 커피는 하루에 최대 두 잔까지만 마시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얼마나 어리석은지  한국 가기 전부터 룰루랄라 많이 먹고 겨울이라 우울하다며 음식으로 기분전환을 하고 다시 커피를 다섯여섯 잔씩 마시다가 또 탈이 난 것이다. 




작년 겨울 이직을 하나 마나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있었다. 혁신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고 일하면서 더 배울 수 있다는 희망보단 무엇인가 내가 여기서 더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있나 하는 생각이 전체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좋은 점이라고는 자유스러운 직장 분위기와 무난한 동료들 그리고 아무도 일 열심히 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옮기려고 생각을 해도 또 어딜 가서 이만한 직장동료를 찾겠어하는 마음과 나만 보고 있는 내담자들 속에서 짐보따리를 쌌다 풀었다만 반복했었다. 그러다가 보스와의 새해 면담이 있고 나는 나의 불만들을 솔직하게 털어놓게 되었다. 우리 보스는 내가 하고 싶은 방향의 프로젝트를 귀담아듣고 내게 기획서를 써오라고 지시했다. 그러면 자기가 본 기관의 교육담당자에게 기획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를 하겠다고 하였다. 더 즐거운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는 희망감에 들떴고 오늘 내 기획서가 넘어갔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 주 이십 시간이 아닌  삼십 시간을 일해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직장생활에서 약간의 도전을 한 것에 대한 뿌듯함에 잠시나마 취해있었다. 퇴근해서 기분 좋게 창고에서 자전거를 꺼내서 수리를 하던 중 전화 한 통이 왔다.


“안녕하세요 프라우 신, 저기 ㅇㅇㅇ 청소년 기관인데 미술치료사 지원하셨죠? 경력이 마음에 드는데 면담을 했으면 좋겠는데요.”

나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싶어, “네? 어디시라고요? 죄송해요 제가 지원한 지가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납니다만... “


아 석 달 전에 지원한 연봉 착한 그 자리! 갑작스러운 전화에 어쩔 줄을 모르다가 그냥 이렇게 대답해버렸다. “죄송한데 지금 제가 연락을 기다리는 데가 있어서 그 연락 오는 것 보고 다시 전화드려도 될까요? 이미 그러면 벌써 다른 치료사를 뽑으셨으려나?”


무슨 개 뚱딴지 소린지. 그런데 그냥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집 앞 벤치에 한 시간을 앉아 생각했다.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거긴 연봉 킹왕짱이잖아.  복지 도 좋고 풀타임 잡에 그것도 밝고 산뜻한 아동 청소년들과의 일을 하게 될 텐데’ 왜 전화를 거만하게 받았지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자전거를 다시 주차하고 해질 녘 동네 한 바퀴를 돌아 꽃집에 들어가 화분을 하나 샀다. 그리고 꽃집을 나서면서 옛날 생각이 났다. 

7년 전 한국에서 그 봉급 좋고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이 가능하던 기관에서도 혁신!! 이라며 주먹 불끈 쥐고 뛰쳐나오지 않았던가. 다들 그 봉급 포기한다고 미쳤다고 그랬지. 왜 거기를 그만두냐고 다들 물었지. 

돈을 많이 줘도 그 일을 일주일 내내 했을 때 과연 내가 행복했었던가? 돈 없어 궁핍한 스트레스보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 스트레스가 더 크지 않았던가. 왜 그 좋은 한국 직장을 때려치우고 유학을 오게 되었는지 순간 깜빡 잊어버렸던 것이다. 어리석어 똑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할 뻔했다. 이내 다시 마음을 고쳐 먹고 내가 쓴 기획서가 교육 담당자에게 마음에 쏙 들어 조속히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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