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생, 주입식 교육, 가부장적인 제도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길러진 30대 여성이 베를린에 왔다.
나는 대체로 말 잘 듣는 학생이었고, 공부를 특출 나게 잘하진 않았지만 바른생활을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장녀로서 크게 부족함 없이 살았고, 인생에서 불합리함을 경험해보지도 않았다. 내 인생은 평범했고 원하는 것이 크지 않았기에 크게 욕망을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할 일도 없었다.
학교에서나 직장생활을 하면서나 내 밥그릇은 잘 챙겨 왔고, 내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할 일도 크게 없었다.
그런 내가 30이 넘어서 외국 생활에 내몰린다는 것은 이제껏 쌓아놓았던 것 없이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과 같았다.
독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독일 오기 전까지 돈 참 잘 벌었는데... 지금 계산해 보면 미술치료사로 독일에 있는 치료사보다 수입이 더 좋았을 거야. 직업적으로 괜찮았어. 강의도 좀 나가고. 치료사로서 입지도 괜찮아서 내담자들이 나를 만나고 싶어 했어. 그래서 번아웃이 왔잖아..." 이런 식으로 과거의 영광을 추억 삼아 늘어놓기도 했다. 아무래도 독일에 오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최고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씁쓸함과 자격지심에 지껄이는 말이었을 터이다.
외국인이다 보니, 독일어를 모국어로 하고 독일 시스템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있는 독일인들에 비해 직장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서툴거나 놓치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외국인이라서, 말을 잘 못해서 괜히 자신감이 떨어져 외향적이던 성격도 점점 내향적으로 바뀌기도 했다.
또한, 한국에서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간접적으로 잘 포장해 상대방이 상처받거나 오해하지 않도록 소통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독일의 의사소통 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루는 집에서 된장찌개를 끓였다. 갑자기 같이 사는 독일인 안야가 부엌문을 벌컥 열더니 "이거 무슨 냄새야! 너 뭘 먹는 거야! 정말 역한 냄새가 나잖아." 나는 너무 당황해서 온몸이 굳어졌다. 그 당시 나는 '어떻게 대뜸 그따위로 나한테 소리를 지를 수가 있지? 교양 있게 물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하며 민망하기도 부끄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또 다른 스위스 친구 아드리안과 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익숙한 심리적으로 접근하는 대화방식을 통해, 청소를 하지 않고 집을 엉망으로 만드는 친구를 설득할 셈이었다. 맛있는 브런치까지 준비해 친구의 기분을 상하지 않도록 이야기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야, 네가 이리 돌려 저리 돌려 심리적으로 접근해 덕지덕지 미사여구를 붙여서 하는 이야기는 결국 청소하라는 거잖아. 근데 난 지금 청소할 정신적 육체적 여유가 없고, 나는 불편하지 않으니 청소 못 하겠어. 네가 불편하면 네가 하면 되겠다." 단전에서 분노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중독센터 시간제 미술치료사 자리에 지원했다. 면접을 보는 상관은 "학력이 너무 좋고 경력이 많네요. 그래서 뽑고 싶은데 우리는 돈을 많이 못 줘요."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나는 제대로 독일어도 못하는 외국인에게 면접의 기회를 준 것만 해도 어디냐 싶어 독일 직장생활의 경험도 해볼 겸 시급과 상관없이 뽑아주기만 해도 어디냐는 생각이었다. 책임자가 그룹치료 한 세션당 얼마를 받게 된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아니 아니 이건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외국인이고 독일어를 잘 못해서 사실 내담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100% 알아들을 수도 없어. 그리고 졸업하지도 않았잖아. 외국인에게 기회를 주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금액을 들어보니 이곳 중독센터에서 정당한 금액을 주지 않아도 외국인이 일을 할 것이라는 생각에 나를 불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세션당 ㅇㅇ 유로는 제 치료사 경력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적은 것 같습니다. 저는 ㅇㅇ 유로까지 받고 싶습니다."라고 말해버렸다. 그렇게 면접이 끝났다. 함부르크에서 면접을 보고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 왜 나는 더 높은 금액을 불렀지? 외국인을 뽑아주지도 않을 것 같은데...'라며 후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되풀이되었다. 그런데 웬걸, 집에 도착하자 음성메시지가 도착했다.
"전화를 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아 메시지 남깁니다. 다음 달부터 출근해 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연락 다시 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그때부터 무엇인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되거나, 무엇인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항상 내 생각을 서슴없이 하게 되었다. 누가 내 이야기를 하든 말든, 눈치 없이 행동하는 것처럼 느껴져도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은 해야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더욱 건강해질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