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에 떠난 칠레 워킹홀리데이 20. 살사
요즘처럼 무더웠던 어느 초여름, 언제인지도 가물가물하지만 초등학생이었던 난 티브이에서 우연히 아르헨티나 탱고 공연에 눈을 떼지 못하고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 있었다. 그게 왜 아직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생의 첫 남미의 잔상은 "열정, 살아있음 그리고 붉음"이었다. 그렇게 20여 년이 흘러 이 곳 남미에 내 두 발을 딛게 되다니. 세상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칠레에 온 뒤 계획했던 것들이 나름 잘 자리를 잡아가면서, 빨리 일상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한인 민박 매니저 일을 보며 숙식을 해결하고, 주인 누나의 배려 속에 곧바로 어학원 오후 수업을 들으며 학원을 다닌 덕에, 내가 좋아하는 '예상 가능한' 루틴을 갖게 된 것이다.
나름 부지런히 짠 칠레에서의 내 시간표는 이랬다.
아침에 일어나 민박집 일을 도와드리며 점심을 먹고 학원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난 뒤로는 학원에서 남아 자습을 하거나(월-목 22시까지 독일어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빈 공간에서 자습할 수 있다), 혹은 화, 목요일마다 Catolica 대학 앞 넓은 광장에서 진행되는 살사 클래스에 간다.
남미에 와서 남미 춤을 배워보는 게 꿈이었고, 대부분 현지인이거나 인근 대학 유학생들이기에 친구 사귀기도 쉽다. 우연찮게 알게 된 현지인 친구는 이것저것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어보는 나에게, 1000페소짜리 살사 교실이 있다며 나를 꼬드겼다. 막상 또 닥쳐오니 다른 건 자신 있지만(?) 춤만큼은 자신 없다며 내빼는 나에게 칠레인 친구는 네가 좋아하는 '경험 삼아' 한 번 가보라고 했고, 우리나라처럼 선입금인 수업이 아니기에 부담 없이 오케이를 했다. 그렇게 간 거리의 살사 교실에 바쁜 친구는 뒤로하고 나만 매주.. 그곳을 갔더랬다(하지만 아시아인이 나 밖에 없기도 하고 친구도 없이 예상대로 무척이나 뻘쭘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 곳은 지구 반대편 아닌가?)
나 역시 초보이기에 많이 걱정했지만..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이 따로? 있다. 레벨 별로 둥글게 서서 남녀 남녀 순서로 자리를 잡는다. 그럼 원 중앙에서 선생님이 한 동작씩 가르쳐 주고, cambio! 를 외치면 파트너를 바꿔 다음 동작을 익힌다. 오예..!!
실내에서 진행되는 그런 살사 수업이 아니기에 그렇게 intensive 하진 않지만, 오히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여러 현지인들을 만나며 어색하지 않게(춤이라는 매개로) 정말 즐겁게 살사를 꽤나 오래 배웠더랬다. 물론 처음에는 고장 난 것처럼 느껴지는 내 몸뚱이 때문에 파트너의 발을 밟으며 얼굴을 붉히기 일쑤였으나, 다들 개의치 않아하며 그렇게나 웃어댔다(좋아하나 싶어 나중엔 좀 더 세게 밟았다)
몇 번 가다 보니 익숙한 얼굴들과도 친해져 먼저 챙겨주고, 그 먼 곳에서 혼자 왔냐며 밥 한 끼를 약속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멋지게 거리 공연을 할 내 몸뚱이를 고대하며!
*참여방법 : 아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오는 공지 혹은 매주 화, 목 7시 반에 카톨리카 대학 공터에서 열린다. 그냥 가서 춤추고 즐기다 내고 싶으면 1,000페소 이상씩 선생님 박스에 넣으면 끝
https://www.facebook.com/groups/146838812091667/?fref=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