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에 떠난 칠레 워킹홀리데이8. 어학
20살 언저리쯤이었나, 우연히 알게 된 미국인 친구가 어설프게 알려준 스페인어 몇 단어가 무척이나 흥미롭게 느껴졌다. '맥주, 맛있다, 목이 말라요' 따위의 기본 단어들이었지만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몽환적인 사운드를 내게 하는 스페인어는 그때부터 나에게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달까.
2012년, 나는 우연인 듯 운명처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났고, 꿈결 같았던 하루하루에 더욱 꿈처럼 느껴지는 한 사건이 있었다. 늘 부지런하게 살아온 나는 그곳에서 부지런함에 환멸감을 느껴(?) 누구보다 느리게 숙소에서 나와 세월아 네월아 걷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한 작은 마을을 지나게 되었는데, 초입에서 만난 백발의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아무 생각 없이 BUENOS DIAS!(좋은 아침!)을 외쳤다(순례길을 걷다 보면 모르는 사람에게도 인사가 기계처럼 나오는 마법을 겪게 된다) 당시 행복함에 젖어 공기마저 달콤하던 내 기분이 눈길로 전해졌는지,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나를 붙잡고 30분 간을 스페인어로 열심히, 아주 열심히 말씀하셨다. 근데 이상하게 알아듣지 못하지만 다 알 것 같은 느낌이었고(필시 어디서 이렇게 잘생긴 청년이 이 작은 마을을 지나고 있느냐, 낯선 곳에서 힘들진 않느냐, 걷느라 목은 마르지 않느냐, 나도 전성기 때 걸어봐서 아는데 쉬운 길은 아니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길이다, 무사히 잘 걷길 바란다..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곧장 스페인어 책을 사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다음번에 그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면, 반드시 스페인어로 내 이야기를 들려드리겠노라고 다짐하며.
칠레로 떠나온 가장 큰 이유가 스페인어 습득과 남미 일주였다.
고로 생각했던 가장 멋진 일은 '스페인어를 멋지게 구사하며 호구가 되지 않고 여유롭게 남미 일주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칠레는 스페인어를 배우기에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다.’(심지어 칠레 사람들도 인정하는 부분) 첫 번째는 말이 근본적으로 빠르고 S나 D 발음을 스쳐 지나가듯 먹으며, CHILENISMO라 불리는 칠레 슬랭, 단어나 표현들이 많다고 했다(이는 같은 스페인어라 해도 칠레에서만 통용되는 방언 같은 것들)
이처럼 칠레 어가 같은 스페인어라 해도 독특한 특징이 많고, 또 칠레 물가 자체도 여타 멕시코나 콜롬비아, 페루 등에 비해 비싸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남미 다른 국가에서 스페인어를 배운다는 것. 그래서 오히려 학원비와 생활비가 적게 들고 비교적 정확한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멕시코-콜롬비아-페루 등 선택지를 가지고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냥 스페인어를 배우러 만 가는 게 아닌 생활비를 벌어야 하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칠레에서 적응해서 일을 구하자라는 계획에 곧바로 칠레행을 택했다.
칠레 스페인어(español de Chile/castellano de Chile,
영어로 Chilean Spanish)는 다른 스페인어과 서로 잘 통하나, 발음,
문법, 대명사 용법, 어휘 등에서 독특한 특징이 있다. 다른 스페인어
사용자들에 따르면 칠레 스페인어는 발음이 매우 빨라서,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알아듣기 힘들다고 한다. - 위키백과에서 -
워홀을 오기 전 시원스쿨 인강과 과외 1달 여 정도로 문법과 단어 위주로 공부를 해왔는데, 역시나 현지인들의 긴 말을 알아듣거나 묻는 말에 대답하기는 정말 어려웠다. (칠레 워홀을 오는 분들 중 많은 수가 스페인어 전공자 거나, 델레 경험이 있는 분들임을 여기 와서 알게 됨. 또르륵. 나 역시 학교 교양수업, 틈틈이 했던 독학도 했지만 말을 떼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웠던 것이다..) 남미에서 스페인어를 배워보고 싶었던 건 꿈 중에 하나였고, 정말 지금이 아니면 평생 꿈으로만 간직할 것 같아 떠났다. 그게 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워킹홀리데이로 칠레를 가게 되면, 최대한 회화 위주로, 혹은 문법이라도 2,3번은 미리 공부를 하고 오기를 당부드린다. 혹 학원을 다니더라도 어느 정도 문법을 아는 상태로 모르는 상태는 차이가 많이 난다.
그래서 처음 계획했던 대로 2달 목표를 잡고 현지에 있는 어학원에 등록하기로 했다.
미리 몇 군데 서치 해 놓은 곳의 홈페이지와 메일, 전화로 문의를 했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위주로 큰 학원 몇 군데를 추려봤다.
<칠레 산티아고 주요 스페인어학원>
*Geothe https://www.goethe.de/ins/cl/es/ueb/ser/spk.html
*Tandem http://www.tandemsantiago.cl/spanish-courses-chile/prices/
*Ecela https://ecelaspanish.com/dates-prices/
*Bellavista http://www.escuelabellavista.cl/courses.php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수강료. 남미에서 가장 잘 사는 칠레에서 가장 물가가 비싸기로 소문난 산티아고는, 거품도 많이 끼어있어 서울의 생활비와 맞먹는다. 이런 곳에서 경제적 수입 없이 한정된 시간 안에 스페인어를 습득해야 하므로 최대한 가성비가 좋은 곳을 택해야 하는 법.
괴테 어학원이 가장 잘 되어 있어 한국 사람들이 애용한다는 소문을 들어서 비싸겠거니, 되도록이면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가격 면에서 너무 차이가 났고 심지어 방문까지 해봤더니 시설도 좋네.. 좋아.. 그 외에도,
1. 오후 수업
수업 시간이 오전이 아닌 오후 시간이어야 했다.
한인 민박집에서 머물며 아침저녁으로 소일거리를 도와드리며 매니저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는데
괴테를 제외하고는 전부 오전 아침 반만 운영 중이었다(괴테는 오전 반이 없었다)
2. 주 단위가 아닌 월 단위 등록
괴테를 제외한 다른 학원들은 주 단위로 등록을 하는데 그럼 반 학생들과 선생님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진도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학습 환경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3. 방문 당시 레벨 테스트 가능
1시간 정도 시간 동안(더 하거나 덜 해도 상관없다) 토익 스페인어 버전(델레 일 듯) 문제를 풀게 한다. 그 자리에서 채점해 레벨을 알려주는데 A1, A2, B1, B2, C1, C2 6개 레벨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결정타.. 수업비가 상대적으로 싸면 학원 등록비라는 명목으로 장난치는 곳이 많았다(어떤 곳은 보증금까지 넣어놨더라) 하지만 괴테는 깔끔하게 수업비만 납부하면 되므로 가장 한국식이라는 괴테 어학원으로 결정, 등록 상담한 날 곧바로 레벨테스트를 보고 학기를 시작하며 B반에 배정되었다. 그렇게 2달 간의 생존 스페인어 배우기가 시작되었다. (수업 방식 등 자세한 후기는 다음 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