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에서의 마케팅 구직활동 중간 리뷰
스웨덴에 오고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소복한 눈이 내려앉은 깊은 어둠을 한낮에도 보던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계절은 하루 4시간을 제외하곤 온종일 눈부신 대낮이 지속되는 여름이다. 현재 나는 한국에서의 2.5년 디지털 마케팅/퍼포먼스 마케팅 경력을 가지고 무작정 워홀 비자로 스웨덴으로 왔으며, 이곳에서의 이직을 희망하고 있다. 쉽지 않았으며, 여전히 현재 진형형이다.
[서울에 있던 과거의 '나'와 그리고 현재.]
거만한 소리이지만 (그리고 실제로 거만했다.) 한국에서는 굳이 내가 먼저 손을 뻗지 않아도 유수의 기업 HR 팀에서 먼저 관심을 보내는 경우가 더 많았다. 누구나 알만한 대학 졸업장, 영어실력 그리고 꽤나 업계에서 알만한 기업. 그러나 홈 어드밴티지가 사라진 낯선 땅에선 내 모든 것이 +가 아닌 -를 겨우 면한, ground zero 부터 시작이다. Unfortunately-로 시작하는 거절 레터를 수도 없이 받았고 어느 기업에선 내가 레주메를 보낸 지 30분 만에 바로 거절 레터를 보내서 엉엉 울며 잠에 든 적도 있다. 월요일 아침엔 특히 메일함 열기가 가장 두려웠다. 바로 직전 주간에 보낸 모든 기업에서 거절 메일이 왔으므로.
[지원 포지션 및 승률]
그렇게 3월 중순부터 여태까지 지원한 기업은 총 40+개 가량이다. 나름 추리고 추려서, "Performance marketing", "Digital marketing", "Attribution"(업계 사람만 알만한 특수용어!) 키워드가 포함된 포지션을 모두 링크드인에서 키워드 알림을 걸어놓고, 영어로 된 JD인 경우에 모두 지원했다. 스웨덴어를 요구하는 곳은 지원하지 않았다. 한국어를 요구하는 직종이지만 개인적으로 하고 싶지 않은 포지션이나 접점이 없는 포지션은 아예 지원하지 않았다.
지원한 기업 중에 면접을 보겠다고 연락을 준 기업은 4군데이고, 한 군데는 직업학교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면접을 진행했다.(대략적으로 승률 10%를 웃도는 수치다.) 세 군데는 모두 1차, 2차 면접에서 떨어졌으며 그중 현재 면접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기업은 2군데이다.
[지원한 기업 및 제출 서류, 면접 프로세스]
지원한 기업은 겁도 없게 Google Stockholm, King, Spotify 부터 작은 미디어 에이전시, 스타트업에도 여러 번 지원했는데 막상 서류에 관심이 있다며 연락을 준 곳은 겨우 5군데로 수렴했다. 처참한 수치를 보니, 정말 내 홈그라운드에서 받던 이익과 모국어 구사 능력을 제외한 발가벗은 '나'를 보게 되었다.
링크드인에서 지원하게 되면 거의 모두 TeamTailor라는 애플리케이션 관리 플랫폼으로 랜딩 하여 그곳에서 CV, Coverletter 를 기입하게 되어있다. Coverletter를 기입하지 않은 적은 거의 없다. 30분 만에 거절 레터를 보낸 그 기업이 바로 커버레터를 실수로 빠뜨린 기업이었다.
경험했던 면접 절차는 여타 한국의 외국계 기업과 비슷했다. HR 매니저 면접 -> 상사 면접 -> 매니저 면접 -> 최종 C레벨 면접이 가장 흔히 보이는 조합이고, 면접관의 가능 여부에 따라 2번과 3번 순서가 뒤바뀌기도 한다. 스웨덴에서 발견한 독특한 점은 한국처럼 인적성 검사를 보는 곳이 꽤나 많다는 것이다. (Klarna, IKEA 등) 다만 난이도의 경우 수리에 강한 한국인 특성상 어렵지는 않지만 운이 나쁠 경우에 떨어질 수도 있으므로 미리 인터넷을 통해서 Aptitude / Cognitive test를 검색하여 연습문제를 풀어가는 것을 매우 추천한다. 이전에 SSAT나 HMAT를 준비했다면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원하기에 좋은 시즌과 타이밍]
지원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즌은 3월-5월, 그리고 8월 말-10월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3월부터 5월에는 풀타임 학생으로 Berghs School에 다니느라 소홀했지만 좋은 회사의 공고가 다양하게 뜨는 것을 목격했다.
가장 지원 공고가 적게 나는 시즌은 6월 셋째 주부터 7월 셋째 주 사이 기간이었다. 거의 온 도시가 마비 상태일 정도로 모든 샵과 레스토랑이 8월 초까지 휴가를 간다. 남아있는 인력이 별로 없으니 답도 느리고, 지원하기에 원활한 계절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이런 사내 상황과는 별개로, 이직 준비고 뭐고 뛰쳐나오고 싶을 만큼 24도를 웃도는 상쾌하고 밝은 여름 날씨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지원 후 보통 긍정적인 답변은 바로 다음날에 연락이 왔으며, 그렇지 않은 곳은 무응답인 극소수를 제외하곤 모두 1~2주일 내로 거절 의사를 밝힌 메일을 받았다. (이제 그 레퍼토리를 술술 외울 지경이다.)
[무엇이 현지에서 먹혔을까? 그리고 안 먹혔는가?]
잘한 점은,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내용 면에선 간결한 최신 버전 레주메를 구비한 것. 그전까지는 워드로 작성한 텍스트로 빽빽한 1장짜리 레주메를 고수해왔다. 나름 이 버전 레주메에 대한 자신도 있어서 해당 버전으로 한국에선 여럿 후배를 외국계 문턱에 올려준 경험도 있었다. 그렇지만 텍스트로 가득 찬 외국인의 고군분투한 삶엔 생각보다 큰 관심이 없는 듯했다. ux 디자이너들이 할 법한 형식의, 컬러풀한 레주메로 내용을 간결하게 하고 나서야 승률이 매우 높아졌다. 굳이 이런 것 까지 해야 하나? 했지만 해야 했다. 이유는 모른다.
잘하지 못한 점은, 너무나 소극적인 방법(링크드인 오픈 포지션 지원)으로만 지원했던 것. 링크드인에 열린 오픈 포지션이 아니고서도 가고 싶은 기업에 적극적으로 콜드 메일링을 한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취업하는 경우를 보았다. 물론 기회는 타이밍이 맞아야 하지만, 단순한 지원자의 기업에 대한 '관심'과 '태도'에도 좌우되기도 한다는 것. 이와 연결되는 교훈이지만, 면접 자리에서 굳이 나라는 사람에 대한 강한 어필보다 해당 기업에 대한 질문을 정성스럽게, 많이 준비해 가는 것이 튀지 않는 사람을 선호하는 스웨덴 성향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