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3년간 나는 내가 바라보고 있는 시장의 사람들만 만나느라 스타트업계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의도적인 피함에 가까웠다. 솔직히 말하면, 사업은 내가 하는 것이고 물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는 것도 알고 있지만, 지금은 스타트업의 대중적인 네트워킹에 집중할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한 이유도 컸다.
그러던 중 최근 오랜만에 스타트업 종사자와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받았다.
왜 뷰티패스 당시 사업이 망했을 때 도망치거나 청산하거나 폐업 처리를 하지 않고, 기어코 굳이 굳이 어떻게든 다시 해보려고 했는지. 왜 결국 회사를 인수시키면서라도 조금이라도 투자자들의 원금을 보존하려고 노력했는지.
벌써 나에겐 6년 전 일이다. 당시 20~21살이었던 나는 그때 실패 직후 뭔가 모를 책임감을 느꼈다.
나는 프라이머 13기 배치로 투자를 받았고, 이후에도 여러 번 엔젤 투자를 통해 자금을 유상증자했다. 그리고 늘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사업을 잘해서 투자를 받은 것이 아니라, 스타트업 생태계 선배님들께서 청소년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으셨고, 그 기회의 수혜를 내가 받았을 뿐이라는 점을.
그래서 아이템이 실패했을 때 실패했다며 뻔뻔하게 행동할 수 없었다. 내가 그렇게 행동하는 순간, 청소년 창업가 또는 10대 창업가들, 더 나아가 20대 초반의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이 나로 인해 만들어진 이미지 때문에 투자를 못 받는 일도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모르는 후배, 어쩌면 아직 존재하지 않던 후배를 생각했던 마음 때문에,
나는 너무 힘겹고 외로운 창업의 몸부림을 걸어왔다.
최근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들이 창업을 통해 큰 투자를 받거나, 투자회사에서 파트너가 되는 이례적인 일들을 보고 있다. 젊은 친구들이 다른 젊은 친구들보다 유능하거나 감각이 있어 투자를 잘 받고, 성과도 잘 내고, 또는 투자회사에서 파트너 직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은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과 책임을 중요시 여기는 자세를 조금 더 갖는다면 더욱 멋지게 성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히 아주 조금 한 발자국 먼저 걸어간 선배로서 드는 아쉬움이랄까.
왜냐하면 그 친구들의 행보와 자세가 앞으로 올라올 후배들의 기회를 더 만들 수도,
더 빼앗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대웅제약 관계사에 회사를 팀인재 형태로 인수시키고, 락인 기간에 퇴사를 결정했을 때, 안그래도 됐지만 매년 인수금을 분할해서라도 돌려주는 결정을 했던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내 결정에 따른 책임 의지와 자세를 보여주는 것, 실패든 무엇이든 아름답게 마무리하고자 하는 나의 의지가 결국 나 자신에게도 더 좋은 기회를 만들고, 내 주변 젊은 동료들에게도 더 좋은 기회를 만드는 생태계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좋은 기회를 받은 젊은 친구들이라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친구들이라면 나는 조금은 겸손하게, 그리고 조금 더 묵묵히 한자리에서 나아가길 바란다.
보통 똑똑한 친구들이 빨리 망하는 이유, 또는 늦게 성공하거나 아예 성공을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결국 똑똑해서 너무 많은 기회가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멍청하거나 스스로 멍청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 외에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이 길에서 꼭 성공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부러워하지 않고 남의 떡을 맛있게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본인이 가야 할 길을 걸어간다.
그러다 결국 잭팟을 터뜨리는 것을 보면 된다.
요즘 들어 본인을 너무 믿고, 선배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네트워킹을 하면서 선배를 무시하는 후배들을 종종 본다. 선배가 기껏 만나 도와줬는데 돌아서서 주변에 “꼰대”라느니 “이래서 나이 많은 사람이랑 일하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또 어떤 후배는 선배에게 만나달라 해놓고, 정작 그 선배에 대한 인터뷰 기사나 영상조차 찾아보지 않고, 선배가 만든 제품도 써보지 않은 채 무작정 만나는 경우도 많았다.
글이 너무 진지해져서 우스갯 소리 잠깐 하자면, 문득 든 생각은 이렇다.
“내가 20대 초반에 덜 그렇게 행동했기에, 그래서 많은 귀인 같은 선배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일까?ㅋㅋ"
그래도 여전히 몇몇 후배들은 피드백을 주면 더 잘할 것이 뻔히 보이는 친구들이 있다. 경청하고, 본인의 자세가 수정될 수 있을 것 같은 후배들에게는 나는 선배들을 만날 때 어떻게 행동하면 좋은지 조금은 직설적이더라도 정확하게 조언해주곤 했다.
나는 그 친구들을 싫어하거나 아쉽게 평가하지 않는다.
단지 나보다 더 잘되길 바라는 마음, 나의 어릴 때보다 덜 욕먹길 바라는 마음이다.
20살, 21살까지는 어리다. 정말 너무 어리다.
실수할 수도 있고, 경영을 잘 못할 수도 있고, 본인을 브랜딩하느라 힘쓸 수도 있다. 까와 빠가 동시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또한 괜찮다.
그 나이대에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더 잘되길 바라는 것이 결국 대한민국 경제가 살아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럴려면 —
나를 포함한 선배들, 더 나아가 더 높은 길을 걸으신 위대한 선배님들까지,
우리가 이들을 포용하기 위해 더욱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생각해보면, 나만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다.
내 주변 동료들과 후배들을 위한 건강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생각하며 행동해야 한다.
그 생태계가 단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책임이라는 마음가짐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만들 것이다.
이십대 초반의 창업가들 모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