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보며

아무도 없이 홀로 요트를 타고

40분을 알아서 바다를 항해해 해변을 찾아가야 한다라.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포,

잘 가고 있는지도 모를 불안 속에서

바람마저 매섭게 불었다.


광활한 바다 위에 서니,

마치 새로운 행성에 도착한 듯했다.

기대에 부풀어 출항했는데,

이내 낯선 세상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외계 생명체들의 호흡 위로

내가 떠 있는 것 같았다.


파도는 살아 있는 듯 숨을 쉬었고,

그 거대한 호흡들 위에서 나는 오프로드를 타듯

몸의 균형을 잡아야 했다.

어쩌면 디스코팡팡 위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엔 그것이 짜릿했다.

그러나 그 짜릿함은 30분이 지나자 곧 두려움으로 변했다.

도로 위의 자동차처럼

단단한 바닥도, 신호등도, 방향표지도 없었다.

바람이 방향을 바꾸면 요트는 그 즉시 흔들렸고,

파도가 조금만 높아져도 금세 기울었다.

손에 쥔 핸들은 내 의지를 상징하는 것 같았지만,

그립 너머로 전해지는 건 통제 불가능함이었다.


바다란 단순히 물이 아니라,

거대한 존재의 호흡처럼 보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숨결은

내 안의 두려움을 강렬히 비춰주는 거울 같았다.


아무리 강해보이려 해도,

그 앞에서는 너무 미약했다.

마치 신이 인간에게

“너는 졸라 작다”라고 속삭이는 공간 같았다.


요트를 몰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이건 사업의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더 크게 보면 인생 그 자체였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해도

세상이라는 바람이 반대로 불 때가 있다.

직진하고 싶지만,

오히려 왼쪽으로 꺾어야 할 때가 있다.

그게 바로 인생이었다.

의지와 상황의 밀당 속에서 균형을 잡는 일.


시간이 흐르자 바다의 색이 변했다.

햇빛이 사라지고,

수면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이상한 공포가 밀려왔다.


내가 떠 있는 건지,

바다에 삼켜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멎고,

나와 바다의 숨소리만 남았다.


그 순간, 죽음이라는 단어가 스쳤다.

그리고 곧, 삶이라는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하나님은 왜 바다를 이렇게 깊게 만드셨을까.

인간이 두려움을 통해

신의 크기를 느끼게 하시려는 건 아닐까.

그 깊이 속에서 나는 오히려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한참을 흔들리며 항해하다

멀리서 해변이 보였다.

40분만 가면 천국처럼 아름답다는 곳.

그저 그 말을 믿고 떠났는데,

정말로 도착했다.


아이들이 웃으며 물장구를 치고,

햇살은 금빛으로 물 위를 덮었다.

내가 지나온 모든 흔들림과 두려움이

그 한 장면 안에서 의미를 찾았다.


인생도 그렇다.

때로는 외계의 바다처럼 낯설고,

파도처럼 예측할 수 없고,

디스코팡팡처럼 정신없이 흔들린다.

하지만 결국엔 닿는다.

믿음으로, 감각으로, 그리고 견딤으로.


삶은 조종이 아니라 항해다.

핸들을 붙잡은 손보다 더 중요한 건,

보이지 않는 바람을 느끼는 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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