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로 인해 변화된 기업의 형태

AI가 바꾼 건 개발 속도가 아니다. 회사의 존재 방식 자체다. 우리는 그동안 회사를 사람의 규모로 정의해왔다. 몇 평의 사무실을 쓰는지, 몇 명이 앉아 있는지, 조직도가 얼마나 복잡한지, 채용 공고가 얼마나 자주 뜨는지 같은 것들.


그건 단지 겉멋이 아니라, 과거에는 실제로 ‘생산 역량’이 인력과 물리적 공간에 강하게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있다.


생산성은 더 이상 사무실의 평수나 팀원의 머릿수에 비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규모는 관성(이 되고, 관성은 시장에서의 반응속도를 떨어뜨리는 비용이 된다. AI는 노동을 대체한다기보다, 조직을 규정하던 상식(=인력·공간·시간)의 물리적 제약을 해체해버렸다.


그래서 이제 “큰 회사”라는 말이 점점 모호해지고, 반대로 “작은 팀이 큰 매출을 내는 것”이 이례가 아니라 새로운 표준이 된다.


예전에는 ‘힙하고 큰 오피스’와 ‘많은 직원 수’가 일종의 신뢰 자본이었다. 미래를 선점하려면 먼저 사람을 모아야 했고, 사람을 모으려면 돈이 필요했고, 돈을 끌어오려면 더 큰 서사가 필요했다.


즉, 투자–채용–확장–성장이라는 기계가 돌아가는 구조였다. 그런데 AI 시대에는 이 기계가 필수 장비가 아니다. 이제는 10명 이하의 분산 팀이 국가를 이동하며 운영되고, 개발·디자인·마케팅·CS까지 도구화된 워크플로우로 압축된다.


특히 중요한 건, “재택근무라서 편하다” 같은 생활 방식이 아니라, 생산성이 ‘개인 단위’로 재귀적으로 증폭되는 구조가 생겼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 만든 산출물이 AI를 통해 다시 확장되고, 그 확장된 산출물이 다시 배포·판매·운영을 자동화하며 더 큰 산출을 만든다.


이때 직원 1인당 매출 10억은 ‘미친 KPI’가 아니라, 제품이 글로벌로 팔리는 순간 가능한 숫자가 된다. 과거의 10억은 영업망·물류·조직 확장이 필요했지만, 지금의 10억은 분배 비용이 급격히 하락한 덕분에 성립한다. 제품이 디지털이고, 과금이 반복적이며, 운영이 자동화된다면, 인력은 성장의 연료가 아니라 성장의 브레이크가 될 수 있다.


그 결과 회사는 더 이상 단일 서비스 회사로 고정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가장 강력한 형태는 스튜디오 모델이다. 하나의 브랜드 아래 여러 제품을 실험적으로 런칭하고, 유망한 것만 강화하며, 나머지는 조용히 접는다. 조직은 커지기보다 포트폴리오화된다.


예전에는 멀티 프로덕트를 하면 집중력이 분산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지금은 반대로 단일 제품에 모든 운명을 걸면 리스크가 커진다. AI는 ‘만드는 비용’을 낮췄고, 그 순간 전략의 중심은 “무엇을 만들까”에서 “무엇을 살아남게 할까”로 이동한다. 빠르게 만들고 빠르게 학습하고 빠르게 정리하는 능력, 즉 실행의 유동성이 경쟁력이다. 이때 회사는 팀의 규모가 아니라 실험 속도와 유통 역량, 그리고 가격 구조로 정의된다.


그래서 투자에 대한 인식도 바뀐다. 투자가 나쁜 게 아니라, 이제 투자는 필수 연료가 아니라 선택적 가속장치가 된다. 더 중요한 건, 유니콘 가치가 되어도 적자라면 인정받기 어려워진 현실이다. 시장은 점점 더 성장률보다 생존 가능성을 묻고, GMV보다 현금흐름의 질을 본다. 적자 성장의 서사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건 특정한 구조(네트워크 효과, 플랫폼 락인, 시장 독점 가능성)가 있을 때만 설득력을 가진다.


그 외 대부분의 스타트업에게 가치평가는 현실을 가리는 필터가 되기 쉽다. 매각할 게 아니라면, 결국 남는 건 이익이 나는 기계뿐이다. 그러니까 핵심은 투자를 받느냐가 아니라 투자를 받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느냐다. 반복매출(특히 연간 구독)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돈이 들어와서가 아니다. 반복매출은 회사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만들고, 예측 가능성은 곧 운영의 안정성과 장기 전략의 정밀도를 만든다. 이것이야말로 기업이 작아도 강해지는 조건이다.


결국 AI 시대의 스타트업에서 승부처는 너무 명확해진다. 생산은 쉬워졌고, 차별은 생산에 있지 않다. 이제 관건은 “잘 알리는 능력”과 “잘 파는 능력”, 그리고 그 위에 “어떤 비즈니스 모델을 접합할지”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기술적 완성도보다 중요한 건 유통과 과금의 설계다. 대부분은 제품을 만들다가 끝난다.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 모였는데 돈이 안 붙는다. 돈이 붙었는데 유지가 안 된다. 여기서 살아남는 회사는 극소수인데, 그들은 ‘기능’이 아니라 ‘구조’를 만든다. 가격은 단지 숫자가 아니라 포지셔닝이고, 과금은 단지 결제가 아니라 행동을 설계하는 장치다. 그리고 브랜딩은 예쁜 디자인이 아니라, 시장의 머릿속에서 특정한 문장으로 기억되는 능력이다. AI는 이 모든 걸 더 잔인하게 만든다. 남들보다 “더 잘 만든” 정도로는 생존이 안 된다. 남들보다 “더 잘 팔리는 구조”를 가진 쪽이 승리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회사를 ‘규모’로 말하지 않는다. 나는 회사를 현금흐름의 구조, 외화 수익의 가능성, 반복매출의 안정성, 실험의 유동성, 그리고 유통 채널의 지배력으로 평가한다. 멋있어 보이는 회사보다, 스스로를 먹여 살리는 회사가 더 무섭다. 많은 직원이 있는 회사보다, 적은 인원으로도 제품을 연쇄적으로 런칭하고 수익을 축적하는 회사가 더 미래적이다. AI 시대의 “힙함”은 사무실이 아니라 구조에서 나온다. 소수의 팀이 어디서든 작동하고, 글로벌로 팔리며, 현금이 흐르고, 그 현금으로 다음 실험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때—그게 이제 우리가 말해야 할 새로운 ‘스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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