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대학생이 되면 우리 집에 며칠 묵게 하세요.

4년 전 회사에 투자해주셨던 한 이사님과 오랜만에 커피를 마셨다.


오랜만에 마주 앉은 자리에서 이사님은 내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셨다.


“민준 대표는 돈을 왜 벌고 싶어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솔직하게 답했다.


“자기증명이에요. 고등학교까지 자퇴하고 이 업을 사랑하던 소년이, 결국은 증명했다는 사실을 남기고 싶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이사님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씀하셨다.


“최소한 저한테는 이미 증명했어요.”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사님은 말씀을 이어가셨다.


“도전하던 때도 봤고, 잘 나가서 호기로웠던 때도 봤고, 다시 힘들어졌을 때도 봤어요. 수없이 도망칠 수 있었을 텐데, 도망치고 싶었을 텐데, 책임지고 회사를 살려냈잖아요. 그리고 지금 다시 성장 궤도로 올라가는 모습까지 옆에서 지켜봤어요. 민준 대표는 이미 증명했어요.”


그 말은 이상하게도 깊숙이 박혔다. 나는 돈으로, 숫자로, 외부의 평가로 증명하려고만 했는데, 이미 누군가의 기준에서는 증명이 끝나 있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그리고 이사님은 웃으며 덧붙이셨다.


“나중에 자식 낳아서 아들이 대학생이 되면 우리 집에 며칠 묵게 하세요. 내가 밥도 사주고 옆에 데리고 다니면서 너네 아버지가 어릴 때 얼마나 간절했고 집요했는지 다 말해줄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묘하게 벅차올랐다. 내가 결혼을 하고, 자식이 대학생이 되는 장면을 진지하게 상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미 그 시간을 전제로 나를 믿고 있었다.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생각했다.


세상에는 “더 크게 벌어라, 더 공격적으로 가라, 독하게 밀어붙여라”라고 말하는 투자자도 있다. 하지만 내 곁에는 “정도(正道)로 가라, 선하게 가라, 나는 네가 어떻게 살 것인지를 더 중요하게 본다”라고 말해주는 주주가 있었다.


이사님은 회수할 돈의 규모보다,

내 삶의 방향을 먼저 걱정해주는 사람이었다.


오늘도 행복에 겨운 깨달음을 얻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도, 나를 사람으로 바라봐주는 투자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정말 큰 복이다. 작은 복이 아니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내가 정말 증명해야 할 것은 ‘얼마를 벌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벌었는가’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벅차오르는 저녁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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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님과의 인연은 길지 않았다. 4년 전, 회사가 생존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거리던 시절, 단 한 번 30분 남짓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그분은 필요한 액수만큼을 개인 자격으로 투자해주셨다.


기관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투자한다는 것은 훨씬 어려운 결정이라는 사실을 나는 나중에야 실감했다. 개인이 순수하게 쓸 수 있는 돈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금까지 고려하면 최소 투자금의 두 배 가까운 현금을 벌어야 한다. 결국 내가 받은 투자금의 두 배만큼은 불려내야 그분에게 원금 이상의 의미를 돌려드릴 수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 책임감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마음의 무게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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