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s A에 머물러있는 스타트업에 4년을 있으며, 중간 점검
이 글은 내가 4년간 몸고 있는, Series A를 벗어나지 못한 한 테크 스타트업에서의 경험을 돌아보며 적어보는 기록이다. 특정 회사를 평가하거나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글은 아니다. 다만 사업팀의 일원으로서 그 안에 있었던 내가, 어떤 판단의 한계에 부딪혔는지, 그리고 그 한계가 왜 반복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구조적으로 정리해보고 싶었다.
내가 조직에서 겪은 문제를 단순히 “망했다”거나 “성공하지 못했다”고 정의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우리는 분명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고, 여러 PoC와 협업 논의도 이어가고 있었다. 외부에서 보기에 가능성이 없었던 회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4년동안 지속적인 성장 곡선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그것이 매출과 투자로서 입증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어떤 착각에서 벗어나야 이를 유의미한 성장 곡선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딥테크 스타트업은 비딥테크 스타트업과 비교하여 유독 많은 ‘환시’를 경험한다.
고객이 뭘 원하는지 몰라도 우리가 가진 기술이 수요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환시인데, 이런 환시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팀들은 그 레벨에 갇히게 된다.
*여기에서 딥테크 스타트업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기술적 해자'가 있는 팀들을 모두 딥테크 스타트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결국, 같은 실패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써 내려가는 글이다.
딥테크 스타트업이 왜 환시를 겪게 되는지, 어떤 접근 방식을 경계해야하는지 - 누군가는 본인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라며 쓰는 글이기도 하다. 일반 스타트업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은 있겠지만, 딥테크 스타트업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이번 글보다는 '프로덕트의 관점', 'HR의 관점'을 읽어보시는 것을 권장한다. (참고로 아직 작성 중이다)
딥테크 기업들 중에는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기술이 정말로 유니크하지 않거나, 이미 해당 기술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결되고 있던 문제이거나, 혹은 굳이 시장이 돈을 내고 해결할 필요가 없는 문제인 경우도 적지 않다. 설령 기술적으로 의미 있는 돌파구를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사업적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간극을 인지하지 못할 때, 기술 만능주의는 점점 더 강해진다.
이러한 시야 왜곡은 몇 가지 전형적인 오류로 나타난다.
딥테크 스타트업이 가장 먼저 빠지는 오류는, 시장을 ‘계몽의 대상’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시장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고객이 기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대부분은 하나의 사실을 가리기 위한 표현에 가깝다. 고객이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영역은, 시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업이 나서서 문제의식을 ‘계몽’해야만 존재하는 시장이 있다면, 그 시장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존재한다고 믿고 싶을 뿐, 실제로는 돈과 시간, 우선순위를 투자할 만큼의 긴급성과 합의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다.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수록, 기업은 시장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과 대화하게 된다.
또 하나의 착각은 시장이 가만히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시장은 규제, 기술 트렌드, 이해관계자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바뀐다. 어떤 시장에 2025년에 진입하지 못했다고 해서, 2026년에도 반드시 실패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그 사이 더 적합한 담당자가 등장하거나, 고객의 방향성이 바뀌거나, 기업을 둘러싼 규제등의 환경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시장은 생각보다 훨씬 냉정하다. 시장, 고객을 나의 편의를 봐주고, 나를 기다려주는 이해심 많은 친구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B2B에서 레퍼런스 없는 기업이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장기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초기 PoC만으로 의미 있는 수익화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낙관적인 판단이다.
레퍼런스 역시 단순한 “예시”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명확한 성과 지표가 있어야 하고, 유지보수나 반복 수익으로 이어질 구조가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얻은 인사이트가 제품화로 다시 반영되어야 한다. 이런 흐름이 만들어질 때에야 비로소 PoC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많은 딥테크 기업들은 “우리 기술이 개쩐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이 때 우리 기술이 '할머니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같이 객관성을 잃진 않았는지,
조기축구에서 제일 잘하는데, 프리미어 리그에 나가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진 않은지 냉정히 살펴봐야한다.
보통 기술적 해자가 기술에 있는 기업들은, 해당 기술적 해자인 기술을 중심으로 두고 경쟁사와 비교하고 싶어지는 심리가 생기는 것 같다. 그렇게 경쟁사를 비교할 때도, 같은 이름의 기술을 쓰는 기업들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 기술은 시장에서 멀어진 채 고립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시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단 하나가 아니다. 어떤 고객에게는 전혀 다른 접근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즉, 기술이 아니라 제품, 심지어는 규범이나 문화 같은 것이 해결책이 될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딥테크 기업들이 이 점을 까먹고, 기술 경쟁에 매달린다.
물론 기술 경쟁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 정해지고, 그 안에서 기술을 고도화해나가는 팀이라면, 기술적으로 앞서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을 입증해줄 수 있다. 지금 치열한 모델 경쟁이 대표적인 좋은 사례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또 다른 함정에 빠지는 기업들이 많은데, '주관적으로 기술적 우위를 판단하는 것'이다.
기술적 인지도, 기술적 인정은 냉정한 외부의 지표를 기반으로 해야한다. 우리가 개쩌는 기술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업계의 반응이 미미하다면, 혹은 냉소적이라면 그 반응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판단은 냉정히 외부가 해야하며, 이 판단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한다. 적어도 채택율이 낮은 학회에 억셉되어야 말이된다. 훌륭한 논문이 나왔는데, 외부가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이는 홍보 역량의 부족이 아님을 깨달아야한다.
기술이 제대로 빛을 발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많을수록 위험하다. 하지만 이런 조건을 붙인다면, 그 조건이 충족되기 전까지는 미래를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꿈꾸는 미래는 대강 이런 식이다. "전국 교통 시스템이 모두 통합되고, 도로 시스템이 재정비되면 우리가 가진 자율주행 기술이 빛을 보는 시기가 올거야."
멋진 미래이지만, 대충봐도 1-2년 안에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심지어 기업 내부에서 통제할 수 있는 변수들도 아니다.
물론 이런 미래가 도래했을 때 우리 기술을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미래를 꿈꾸는 것은 합리적이다. 하지만, 이런 미래를 무한정 기다리다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가능한 범위를 찾고, 그 안에서 돈을 벌어야한다. 물론 큰 미래를 주도하기 위한 노력들을 놓쳐선 안된다.
딥테크 기업들이 이런 오류에 유독 쉽게 빠지는 이유는, 딥테크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특정한 '기술'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앞서 말한 것처럼 해당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한 가지로 귀속되지 않는다. 또 기술이 적용될 수 있는 영역 역시 다양하기 때문에, 기업에선 선택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A시장도, B시장도 불분명한데, 이런 불분명함에 기대는 것보단 기술에 기대는 것이 심리적으로 안전해보이기 때문이다.
딥테크 기업이 빠지는 '함정'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나오는 이유이다.
딥테크 기업도 결국, 사업체이기 때문에 시장 관점에서 기술을 고민해야한다. 나의 시야 역시도 기술에 갇혀있는 것이 아닐까? 항상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