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처럼, 삶을 연주한다는 것
"큰 바다를 우아하게 헤엄치는 고래를 상상하며 연주해 봐."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날이었다. 나의 첫 플루트 선생님, 테레사. 그녀는 내게 음악의 본질을 처음으로 일깨워 주었다. 음악이란 완벽한 연주를 위한 기교의 집합이 아니라, 마음속 감성과 상상력이 만들어낸 메시지를 세상에 흘려보내는 일임을. 항상 밝은 에너지로 가득하던 그녀는, 어린 나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음정과 박자에 얽매이지 말고, 네 상상력에 몸을 맡겨."
고작 여덟 살이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 '고래 곡'의 제목도, 작곡가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그 당시에도 내가 연주하는 곡의 제목과 작곡가를 몰랐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다만, '연주하는 동안 고래를 떠올려야 해'라는 그 감정만이 아직도 마음에 선명히 남아있다.
나는 한국에서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첫 피아노 선생님은 무서웠다는 점 외에는 별 다른 기억이 없다. 음 하나만 틀려도 손바닥에 가벼운 벌이 내려졌고, 매주 다가오는 레슨 날은 어린 나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악보에 선생님이 그려준 빈 동그라미 열 개를 채우기 위해, 몰래 한 번 연습하고 두 번 연습한 척도 해봤다. 탄탄한 기본기를 강조하며 끊임없이 같은 구절을 수십 번 반복하며 지나갔던 시간들. 이제야 웃으며 고백할 수 있지만, 그 시절의 음악은 나에게 그저 의무였고 두려움뿐이었다.
여덟 살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서툰 영어, 내성적인 성격. 그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테레사를 만난 후,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음악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있었다.
나와 음악의 관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음악은 더 이상 또 하나의 학원과 과제가 아닌, 내 마음속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소통 방식이었다. 나의 감정을 투영하는 창이자, 내가 직접 만든 언어였다.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잔뜩 받고 온 날이면, 나는 집에 오자마자 미친 듯이 몇 시간이고 쏟아내듯 연주를 했다. 그토록 말수가 적던 나는, 무대 위에만 서면 그 누구보다 말수가 많았고, 수백 명의 관객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큰소리로 들려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제야 고백하자면, 나는 연주가로서 단 한 번도 완벽한 연주를 한 적이 없다. 수많은 무대에서 늘 크고 작은 실수가 있었고, 손가락이 꼬이기도 했으며, 중요한 무대에서 삑사리를 낸 적도 많았다.
그래도 나는 항상 나 자신의 연주에 나름 만족했다. 실수가 있었을지언정, 내가 전하고자 한 감정은 언제나 분명했고, 그 의도가 음악을 통해 관객에게 흘러갔다는 점이 당당했기 때문이다.
음악가로서의 임무는, 결국 나와 작곡가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것이다. 만약 내 연주가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진동을 일으켰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테레사의 예술 철학은 내 삶의 방향성, 그리고 살아가는 방식에도 스며들었다. 나는 어떤 일을 완벽하게 정석대로 해내는 것보다, 나만의 방식으로 찾아 나서길 좋아하게 되었다. 다른 이들이 '원래 이런 거야'라고 말할 때, 나는 '그렇지만 이럴 수도 있지 않아?'라고 되묻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세상은 결국 인간과 또 다른 인간들이 살아가는 공간일 뿐이고, 감정과 공감을 나눌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나는 나의 임무를 다했다고 믿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음과 리듬의 완벽함 보다는 그 너머의 의도와 감정을 쫒는다. 음악에서처럼, 삶 속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