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의 스트레스 해소법 (61)
킬러의 스트레스 해소법 (61)
킬러 ‘언니’가 누구를 죽이는 직업을 선택하고 나서 실패한 적은 딱 한번 있었다.
오래전 일인데, 그때도 오늘처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망을 해야만 했었다.
지금도 손바닥 바로 밑에는 그때 입은 커다란 흉터가 마치 문신처럼 붙어있다.
보면 볼수록,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때 그 피할 수 없는 기억이 붉게 올라왔다.
생애 가장 치명적인 치욕을 언니에게 준 그 얼굴….
절대 잊지 못했다.
그리고… 그자가 한 한마디…
“꺼져… 이… 게이 XX야!”
자신을 향해했던 이 말은 한동안 밤마다 악몽으로 되살아나 언니를 괴롭혔다.
그날 이후 ‘게이’라는 단어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언니를 괴롭히는 기억이 되어 끊임없이 자신을 조롱했다.
몸서리치게 선명한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은퇴를 선언한 헌책방 소속 킬러에게 일본 야쿠자가 현상금을 걸었었다.
야쿠자 두목이 자신의 아들이 서울에서 청부 살해를 당한 것에 앙심을 품고 킬러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지만, 결국 아무도 돈을 챙기지는 못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 당시 활동했던 킬러의 반이 은퇴한 킬러에게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언니 자신도 거액에 눈이 멀어 욕심을 부렸다가 킬러의 자비로 간신히 살았었다.
그날… 그곳에서의… 기억을 살려보면….
그자가 지나가는 컨테이너 옆에 몸을 숨겨 기다렸다.
짧은 호흡조차 안 하며, 혹시 모를 그림자라도 드러날까 봐 마음을 졸이며 그자가 걸어오는 보폭 리듬에 맞추어…
하나 둘 셋….
틀림없이 석양에 비친 그의 목이 보였다고 생각했고 끝이다 생각하며 찔렀는데…
그와 반대로 언니의 손이 이쁘게 갈라졌었다.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호흡도 없고 기척도 없이 잘려 나간 손목을 잡고 무릎을 꿇고 자비라는 이름에 희망을 걸었었다.
그 은퇴한 킬러는 전직 특수부대 출신에 북파 공작원이었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놀랄만한 사실은 그 킬러는 여자였고, 더 놀랄만한 사실은 그 당시 그녀는 임신 중이었다.
언니는 거울에 비친 망가진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잊히지 않은 치욕적인 굴욕이 새삼 떠올랐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옛날의 첫 실패는 상대가 너무 강해서 당했지 별다른 실수는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되었으며, 어디가 문제였을까?
다시 뒤집어서 생각해 보니 타깃은 언니가 오는 길에 퇴로를 막아 포위를 시도했었다.
하지만 포위를 무시하고 정문이 열리는 것을 본 순간 빠른 스피드로 타깃에게 접근했었고
거의 끝낼 수 있는 거리까지 갔었는데, 몸을 사리지 않는 덩치한테 예상 못한 일격을 당했다.
제대로 턱을 맞았으면 아마도 그 자리에서 뻗을 만큼 강력하고 간결한 한방이었다.
그리고 엽총의 장전 소리가 들렸었다.
본능적으로 피해야만 했고 안 죽고 살아온 것도 행운이었다.
완벽한 실패였다.
그들은 애초가 언니가 올 줄 알고 준비를 철저히 했으며, 반대로 언니는 준비 과정부터 너무 서둘렀다.
어디에서 정보가 샜을까 생각을 해보니 헌책방을 미행했던 놈과 연관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재수 없는 꼬마와 한 건물에 사는 그놈도 이제는 반드시 죽여야 하는 놈이 되었다.
그래도 최고의 킬러라는 자신이 이렇게 처참하게 실패를 했다는 것에 창피하고 속상했다.
업계에서 소문은 빨리 돌아다닐 것이고, 헌책방이 다시 영업을 한 다면,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 것은 뻔한 사실이었다.
거울을 보니 빗맞은 주먹에 한쪽 뺨이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고 손을 넣어 확인해 보니 볼 안쪽 살이 찢어져 쭈르르 피가 나고 있었다.
밍밍한 것을 삼키니까 비릿한 맛이 진동했다.
빰에 맞은 충격이 눈에 전이되어 맑고 예쁜 언니의 눈은 실핏줄이 터져 검은 물이 동체를 삼켜버려 마치 악마 같은 괴물의 눈이 되어버렸다.
언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이 꼴을 가지고는 당분간 네일숍을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 속상했고 짜증이 났다.
짜증도 짜증이지만 우선 상처가 심한 종아리의 2차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빨리 치료를 해야만 했다.
흐르는 피로 인해 파편은 보이지 않았고 수술용 겸자로 한참을 헤집은 다음에야 간신히 작은 조각 하나를 제거했다.
언니는 아픔을 참고 소독을 한 뒤 스킨 스테이플러를 마치 목공처럼 찍어 눌렀다.
상처의 응급처치를 마친 언니는 따뜻한 재스민 차를 마시며, 이 치욕적인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니 머리와 몸이 감당이 안되었다.
너무 화가 나서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스트레스는 풀고 가야만 했다.
숙여진 고개를 천천히 든 언니는 결심했다.
‘내일이 오기 전에 다 죽여야겠다.‘
헌책방을 문 닫게 한 흥신소 그놈…
재수 없는 괴기한 아이
그리고 그 아이의 엄마
다 한 건물에 사는 ‘다 찾는 세상’의 양현모와 그 윗집에 사는 성해주 그리고 해주의 엄마 오숙희를 말하는 것이었다.
언니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트레스 해소라고 하기에 늦은 밤 취객 죽이는 것도 아니고…
예사롭지 않은 건물에 사는 세 명을 하룻밤에 동시는 죽이는 것은 이성이 아닌 의아함만 남은 바보 같은 결심이었다.
그것도 하필 타깃 제거에 실패하고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굳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지금 거기를 갈 필요는 없었다.
신중했던 언니는 어디에도 없었고 언니가 언니답지 않게 또 서두르고 있었다.
곧이어 마스크와 야구 모자에 선글라스를 끼고 절뚝거리는 언니가 집을 나왔다.
언니는 오늘 두 번째 실수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