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초현실주의적인 접근인거네?'
학교에 들어가서 내가 처음 받은 크리틱이었다. 이제와서 고백해보자면 그 때의 나는 예술사에 무지한 상태였고 그 탓에 교수가 준 크리틱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보면 그녀는 정말 예리한 눈을 가진 좋은 교수였다. (교수라고 해서 모든 작업들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한번에 어떤 학생의 작업의 핵심을 알아보려면 학생에 대한 엄청난 애정과 미술에 대한 관점이 편협하지 않아야한다. 작가로서의 자신과 교수로서의 자신은 달라야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못한 교수들도 생각보다 엄청 많다.)
아쉽게도 그녀는 한 학기 후 교수직을 관두게 되었지만 나는 종종 그녀가 해준 크리틱들을 떠올린다.
나는 그 당시 주로 콜라주와 올가닉한 오브제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잡지에 쓰이는 몸의 이미지를 잘라서 다시 재배치하는 작업을 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작업들이었다.
지금보면 초현실주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데 특히 Karel Teige(1900 – 1951) 콜라주 작업들을 보면 진짜 신기할정도다. (사실 그는 1920-30년대 체코의 아방가르드 평론가로서 알려져 있어 나는 최근에서야 그의 작업들을 알게되었다.)
재밌는 점은 나는 종종 쓰던 시들과 콜라주들을 한 데 모아서 포에트리콜라주 북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그도 1964년에 Paul Eluard와 협업하여 콜라주시집을 냈다.
그는 평론을 쓰고 잡지를 편집하고 그래픽 디자인에 콜라주도 만들고 연극 극본도 쓰고 퍼포먼스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과학적이고 실리적인 접근을 하는 것을 선호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작업들도 다른 초현실주의자들(예를 들어, Hans Bellmer나 Man Ray)에 비해 덜 disturbing하고 안전 거리가 확보된 느낌이랄까. (초현실주의 남성작가들 특유의 성적인 투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런 듯) 정말 도구로서만 사용한 느낌이다.
(딴 길로 잠깐 세자면 특히 나는 그가 한 그래픽 디자인과 타이포그라피를 좋아하는데 항상 그의 작업에서는 균형감이 드러난다. )
이 밖에도 콜라주를 주요 매체로 활용한 초현실주의 아티스트들을 살펴보자면 Eileen Agar (1904–1991)가 있다. 그녀는 내가 학교 도서관에 주문까지해서 책을 받아 봤을 정도로 너무 좋아한다. 특히 아래의 마린 콜라주는 나의 최애 작업이다.
콜라주하면 또 Max Ernst (1891 – 1976)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데 그는 19세기 이미지들을 자르고 새로운 이미지로 조합해 콜라주 소설집(이름은 소설이나 글으로 된 형식은 아니고 이미지의 연속으로 되어있다)을 내기도 했다.
콜라주 소설 'Une semaine de bonté' 에서 가장 무난한(?) 콜라주 피스를 가져와보았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검색해보면 아시겠지만 이미지가 굉장히 자극적입니다.)
사실 초현실주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Andre Breton의 소설 Nadja와 Hans Bellmer, Man Ray 그리고 Dali의 몇몇 작업들을 보면 너무나 명백하게도 아픈 것에 대한 광적인 애호가 튀어나와 마냥 그것을 예술사의 한 면으로 차가운 눈으로 보기 어렵다. (케이팝을 자세히 들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로서)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서는 검열을 거치지 않은 날 것에 대한 폭발적인 자극이 매력적인 것 또한 사실이다. 어찌보면 그것이 우리의 본질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당시 병적인 증상으로 낙인된 것들을 재평가해 poetic-aesthetic을 만들었다. 그들의 미학은 Breton 의 Nadja에서 정확하게 묘사된다.
"Beauty will be CONVULSIVE or it will not be at all."
그들은 주로 자동화기법이라는 오토메이션 기법을 통해 (검열을 거치치않고 나오는 대로 생산해내는) 작업을 했는데 기존의 이미지를 오려내 새로운 컨텍스트를 창조하는 콜라주가 그들의 매체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