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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즈 Jul 28. 2022

엄마와의 흔한 하루

빵, 좋아하세요?


“바쁘니? 빵가져가.”


여느 때처럼 남편은 출근하고 두 아이도 등교를 했다. 가정주부인 나는 집에 남아 조용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응? 갑자기 웬 빵?”


우리집 근처, 인근에서 인기 있는 수제 빵집에 오셨다고 했다. 친정엄마네에게서는 버스로 30분쯤, 거리가 좀 되지만 몇 번 다녀가셨다고 얘기하신 적 있다. 정작 나는 가본 적이 없는 가게이면서, 어 거기 알지, 근처에 왔으면 전화하지 그랬어, 라고 대꾸했다. 빵 이외에도 커피도 팔고 규모가 커서 카페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그 가게에서 지인을 만나고 돌아가려던 엄마는 빵을 한 바구니 샀다고 말했다. 많이 샀다며, 나눠 주고 가려고 전화하신 거였다.


 빵 안 먹어도 되는데… 그냥 전화하시면 되지…

갑작스러운 전화에 혼자 궁시렁 거리며 집을 나섰다. 서둘러 차를 끌고 몇 분만에 가게 앞에 도착했다. 엄마는 길가에 서서 두툼한 봉지를 들고 계셨다. 그 앞에 비상등을 켜고 잠시 멈춰서 차창을 내리고 타세요, 라고 말했는데 봉지만 손에 올리며 받으라고, 건네주고 그냥 가겠다고 답하셨다. 나는 순간 얼굴이 벌게져서 얼른 타시라고 외쳤다. 마지못해 차에 올라탄 엄마는 저 앞 정류장에서 내려달라 말했다. 정말 빵만 건네주면 된다고-

순간 그 말이 내 속을 헤집었다.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어휴, 내가 빵에 환장한 사람도 아니고, 이거 주고 그냥 간다고?? 아니면 우리가, 물건 거래하는 사이야? 여기까지 오신 김에 집에 가서 차도 마시고 애들 오면 얼굴도 보고 가셔야지.”


 기억을 더듬어보면 내가 빵에 환장하던 시기가 있긴 했다. 초등학생 시절 집에 사다   봉지가 있으면 어느새  손에 들려있었고 그러다 혼자서  어 치우곤 했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보며 ‘빵순이라고 놀리듯 혹은 타박하듯 불렀다.

언젠가 엄마는, 거실에서 손에 식빵을 봉지째 들고 먹으며 오물거리는 나를 보고는 약간의 심호흡을 하신 후 말했다.

‘너 그렇게 밀가루 자꾸 먹으면 살찌고 피부 녹는다!'

순간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어린 마음에 꽤 무시무시하게 들린 얘기였다. 지금 같으면 뭘 그렇게까지 말하냐, 그냥 그만 먹으라고 하면 되잖아, 라며 받아쳤을 것이다. 그러나 12살의 나는 아무 대답도 못 하고 가만히 빵 봉지만 내려두었다. 이후 엄마의 그 말이 영향이 있던 건지 예언이 된 건지 모르겠지만, 점차 빵에 대한 애호를 덜어내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밀가루를 많이 먹으면 속이 좀 불편하고 신경이 쓰였다. 그 말은 경각심을 심어주는데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어느덧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난 지 십수 년이 흘렀다. 그렇지만 엄마에게 나는 여전히 12살 ‘빵순이’인걸까? 문득 가게에서 종류별로 골고루 빵을 담았을 엄마의 모습이 그려졌다.

 어린 딸에게 빵보다 밥을 챙겨주며 건강히 키우려 한 엄마와 다 자란 자식에게 좋아하는 간식을 챙겨주고 싶었던 엄마-

두 가지 모습은 다른 듯해도 결국 같은 마음에서 나온 것일 테다. 그러고 보니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흔한 게 베이커리 카페인데 굳이 우리집 근처까지 오신 것마저 결국 같은 마음에서 비롯된 걸까?


 사는 게 바쁘다, 애들 챙겨야 한다며 발길이 뜸해진 무뚝뚝한 자식 얼굴을 보기 위해 빵을 핑계 삼아 한아름담은 마음을 무겁게 건네받는다.

 가끔은 빵처럼 살아봐야겠다. 빵 같은 딸로, 퉁명스러움은 덜어내고 달콤하고 부드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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