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참으면 편안해질 거야
돌잔치 끝에 아들은 심한 코감기를 앓게 됐다.
출산준비로 사둔 25만 원이 넘는 코빼기 기계를 적절히 사용할 타이밍이 드디어 온 것이다.
아기들은 코를 스스로 풀지 못하니 기계로 콧물을 흡입해야 한다.
정식 명칭은 콧물흡입기다.
이 기계는 무지막지하게 커서 평소에는 큰 통에 보관해야 한다. 다들 이 기계 보관이 마땅치않았는지 인터넷에는 이 기계가 딱 들어맞는 통 정보가 나와있다. 다이소에서 파는 가루세제통이다.
다이소 가루세제통에 기계를 넣어두고 1년 만에 제대로 사용해 봤다.
사실 이 기계의 거대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집도 좁은데 이런 코빼기 기계까지 지고 살아야 하나 하는 마음에 처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도 휴대용으로 가볍게 뺄 수 있는 콧물흡입기를 살걸.
눈앞에 보일 때마다 거슬려 치워버리고 싶었다.
아들은 코가 막혀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입으로 숨을 쉬니 숨소리가 거칠고 줄줄 흐르는 코가 불편해 보였다.
얼굴은 코로 범벅이 되어 반딱해졌다.
새벽녘 아들이 잠에서 깬 순간. 이때다 싶어서 나는
새벽에 아이를 둘러업고 거실로 나갔다.
기계를 통에서 꺼내 전원 플러그를 꽂고 버튼을 누른다. 소리는 진공청소기처럼 우잉우잉 소리를 내는 게 무척이나 공포스럽다.
아들은 온몸으로 싫다는 표현을 했지만 무시하고 한 손으로 아기를 내 몸에 끼고 한 손으로는 아기 코를 향해 실리콘 노즈팁을 쑤셔 넣었다.
말도 못 하게 맑은 코와 누런 코가 나오기 시작한다.
남편은 자고 있다. 깨워서 같이 할까 했지만 남편은 이런 일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아기를 제압하며 무자비하게 코에 팁을 넣는 이런 야만적인 행위를 못할 사람인 걸 나는 안다.
그런 행위는 내가 후다닥 해버리는 게 더 낫다.
아들은 이내 편안해지고 다시 잠을 청했다.
한 이틀을 그렇게 씨름하고 나니 신기하게 3일째 되는 오늘, 처음으로 아들이 반항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본인도 코를 빼면 시원했는지 순순히 코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정말 다행이다.
조금은 야만적이고 강압적인 행위를 덜 하게 됐다.
조금 크면 스스로 노즐을 코에 대고 버튼을 누르고 한다던데 그날을 기대해 봐야겠다.
콧물을 흡입하면 플라스틱통 안에 콧물이 고이는데 그 콧물을 확인할 때의 묘한 쾌감이 있다.
이만큼의 코가 들어있었다니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콧물은 빼도 또 금세 차오른다.
병원에서는 속에 코가 아주 많이 차있으니 며칠 더 두고 봐야 한단다.
무지막지하게 크고 너무 비싼 게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지금은 콧물흡입기가 아주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가야 빨리 나아라~